'어벤져스'의 헐크와 '삼국지연의'의 장비, 토르와 관우(위부터) |
최근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어벤져스'(감독 조스 웨던). 마블코믹스의 슈퍼 영웅들이 총 집합한 완성형 슈퍼히어로물답게 한마디로 '가공스럽다'. 지난 2007년 '트랜스포머'가 처음 국내에 공개됐을 때 그 느낌이랄까. 오는 26일 국내에 개봉하면 또 한 번 관객은 시원한 '눈 맛'을 경험하게 될 것 같다.
눈길을 끄는 것은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의 캐릭터와 역할, 구성 및 전투 모습이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 중국 후한 말부터 위촉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삼국지연의'와, 외계인까지 나오는 21세기 SF 블록버스터 액션과 비교는 비약에 어불성설이지만, 두 작품이 몇몇 부분에서 묘하게 싱크로되는 것 또한 맞다.
우선 '어벤져스'를 알기 위한 기초학습부터.
만화 '어벤져스' |
'어벤져스'는 잘 알려진 대로 1963년 미국 마블코믹스에서 출간된 동명 코믹 그래픽북을 원작으로 했다. '복수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어벤저스'(The Avengers)가 마블코믹스에서 처음 선보인 것은 1963년 9월. 'The Avengers #1..Earth's Mightiest Heroes'라는 제목으로 처음에는 격월로, 1964년 7월 '#7'부터는 매월 발간됐다.
원년 어벤져스 멤버는 앤트(행크 핌 박사), 와스프(재닛 반 다인), 토르, 아이언맨(토니 스타크), 헐크 등 5명. 그러다 #4에서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캡틴 아메리카가 얼음에 갇힌 채 발견되는 것으로 처음 등장했다.
'어벤져스'는 이처럼 슈퍼히어로 한 명으로는 도저히 상대를 못할 엄청난 파워와 마법의 악당들을 협동해서 물리친다는 기본 설정에서 출발했다.
영화로 보면, 어벤져스 멤버들은 2008년 4월 '아이언맨'(아이언맨의 탄생. 이하 국내 개봉일 기준), 2008년 6월 '인크레더블 헐크'(헐크의 부활), 2010년 4월 '아이언맨2'(아이언맨의 귀환), 2011년 4월 '토르: 천둥의 신'(토르의 탄생), 2011년 7월 '퍼스트 어벤져'(캡틴 아메리카의 탄생)를 통해 국내 관객과 만났다.
그리고 각 영화들은 다른 슈퍼히어로의 존재를 영화 곳곳에서 슬쩍슬쩍 암시해 팬들을 열광케 했다.
예를 들어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느닷없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등장해 아이언맨의 존재를 암시했고, '아이언맨'에서는 거의 영화 막판에 닉 퓨리 국장(사무엘 L. 잭슨)이 나와 어벤져스의 존재를 대놓고 폭로했다. 또한 '아이언맨2'에서는 캡틴 아메리카가 사용하는 난공불락의 초강력 비브라늄 방패와 토르의 절대무적 망치 묠니르가 등장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5편의 영화속 주인공들을 한 데 모으고 그 배경의 세계관과 설정까지 그대로 가져온 게 이번 최종판 '어벤져스'다. 세계 최강 군수업체를 이끌다 본인이 내킬 때 아이언맨으로 변신하는 CEO 토니 스타크 역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외계에서 싸우다 지구로 쫓겨온 천둥의 신 토르 역은 크리스 헴스워스, 토르의 이복동생이자 이번 '어벤져스'가 있게 한 단초를 제공한 로키 역은 톰 히들스턴이 맡았다.
또한 얌전한 과학자로 잘 지내다 화가 나면(이게 영화 막판 반전이 있다!) 녹색괴물 헐크로 변신하는 브루스 배너 박사는 마크 러팔로, 가진 건 애국심밖에 없는 허약한 병사에서 '슈퍼 솔저 프로그램'으로 초강력 히어로가 된 캡틴 아메리카는 크리스 에반스, 스파이 겸 전문암살요원 블랙 위도우는 스칼렛 요한슨, 최고의 명사수 호크 아이는 제레미 레너가 맡았다. 아, 국제평화유지기구 '쉴드'의 총책임자 닉 퓨리 국장 역의 사무엘 L. 잭슨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어벤져스를 모은 게 바로 이 닉 퓨리 국장이니까.
어쨌든 '어벤져스'와 '삼국지연의' 캐릭터를 본격 분석해볼 차례.
'어벤져스' 슈퍼히어로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캡틴아메리카, 블랙위도우, 호크아이, 짐 퓨리, 아이언맨 |
영화 '어벤져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역시 헐크다. 이복 형 토르에 대한 개인적 복수심과 열등심, 그리고 지구 정복 및 절대 파워를 원한 로키가 외계의 무시무시한 군대를 이끌어 들임으로써 시작된 '어벤져스'. 이 혼돈과 절대 열세의 싸움에서 가장 맹활약한 슈퍼 히어로는 녹색 괴물 헐크였다.
지난 2011년 1월 발매된 '마블 어벤져스 캐릭터 가이드'(Marvel-The Avengers the Ultimate Character Guide)에 따르면 헐크는 익히 알려진 대로 브루스 배너 박사가 감마선 폭탄 실험에서 대량의 감마선에 노출된 후, 화가 날수록 더욱 강한 힘을 갖게 된 녹색 괴물이다. 어벤져스 창단 멤버였지만 다른 멤버들과 마음이 맞지 않아 팀을 떠나게 됐다.
어찌 됐든 헐크는 '인크레더블'이라는 말 그대로 가공할 파워를 가졌다. 2.13미터 키에 521kg에 달하는 몸무게(이것보다 더 크고 무거워질 수가 있다)가 전하는 펀치력은 우주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웬만한 상처는 곧바로 아물어버리기까지 한다. 가이드북의 파워랭크에 따르면 힘 7, 방어력 7, 지능 6, 전투력 4, 민첩성 3(이상 7점 만점). 하지만 이번 '어벤져스'에서만 놓고 보면 헐크의 힘은 70점을 줘도 모자란다.
이러한 '힘'의 헐크로는 '삼국지연의'의 익덕 장비가 제격이다. 기억나시는가. '삼국지연의'에서 침 꼴깍 삼키며 지켜봤던 장비의 장판교 전투를. 위나라 10만 대군에 맞서 혈혈단신 장팔사모 휘두르며 "내가 바로 장비다!"라는 외침 한 마디로 적군을 꼼짝 못하게 한 그 '장판교의 금강역사'. 위나라 병사에게 장비는 곧 감히 넘지 못할 '절대 힘'이었던 것이다. 묘하게도 영화 '어벤져스'에서도 헐크의 고함 한 방으로 사건 하나가 해결되는 장면까지 나온다.
다음은 토르. 힘으로만 보면 헐크에 약간 밀리는 정도인데다 '절대 파괴할 수 없다'는 망치 묠니르에, 천둥 번개까지 마음먹은 대로 조종하는 천둥의 신이 바로 토르다. 외계 아스가르드에서는 아버지 오딘의 큰 아들이자 이복동생 토르의 형이기도 했다. 묠니르를 사용해 날거나 다른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으며, 묠니르는 마징가Z의 '무쇠팔'처럼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재주까지 갖췄다. 가이드북 상으로는 힘 7, 방어력 6, 마법력 6, 전투력 4, 민첩성 4.
'천둥의 신' 토르 캐릭터를 '삼국지연의'에서 찾자면 단연 운장 관우다. 무엇보다 관우가 중국 민간신앙에서 지금도 '신격화해' 숭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도교에서는 전쟁의 신 '관성제군'으로까지 신격화했다. 그의 그 유명한 청룡언월도는 토르의 묠니르라 할 만하다. 청룡언월도는 무게가 82근(40kg)이나 나가 웬만한 장수들은 들지도 못했고, 묠니르 역시 웬만한 히어로는 땅에 떨어진 이 망치를 들어 올릴 수조차 없었다. 토르의 키가 6피트6인치(1.98미터), 관우의 키가 9척(207cm)인 점도 닮았다면 닮았다.
그러면 아이언맨은? 백만장자 사업가 토니 스타크는 베트남에서 심장 부근에 파편이 박혀 위험한 상태였지만, 첫번째 아이언맨 슈트를 완성해 도망쳤다. 보통의 인간이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게끔 해준 이 아이언맨 슈트는 초월적 힘, 속력, 게다가 비행능력까지 제공한다. 손바닥에선 리펄스 빔과 일렉트론 빔까지 나온다. 한마디로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여포의 적토마(훗날 주인은 관우)인 셈이다. 의붓아버지 동탁이 선물한 명마 중의 명마 적토마. 오죽했으면 '마중적토 인중여포'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여포는 이 적토마를 타고 적진을 날듯이 돌아다녔다. 여자 좋아하는 성격까지 아이언맨과 여포는 닮았다.
캡틴 아메리카는 '삼국지연의'의 유비를 빼닮았다. 사실 캡틴 아메리카는 지금까지 등장한 슈퍼히어로 중에서 가작 약하다. 가이드북 파워랭크를 봐도 힘 3, 방어력 3, 지능 3, 민첩성 2에 불과하다. 이것도 그나마 비브라늄으로 만들어져 어느 무기도 파괴할 수 없다는 방패 덕분이다. 다만 전투력은 6으로 높다. 이 전투력은 투철한 애국심, 장교로서 책임감과 리더십에 따른 것이다.
특히 이번 '어벤져스'에서는 온갖 외계 군대들이 물밀듯이 쳐들어왔을 때 그야말로 '캡틴'답게 각 슈퍼히어로들을 진두지휘했다. 그 까칠한 아이언맨도, 인간이 아닌 신 토르도, 심지어 녹색괴물 헐크도 이 캡틴 아메리카의 명령은 '들었다'. 이는 바로 '삼국지연의'에서 관우와 장비, 조운, 제갈량을 이끌며 촉을 세운 익덕 유비라 할 만하다. 유비 역시 개인의 힘과 방어력은 여느 군웅에 비할 바 못됐지만 특유의 지력과 책임감, 리더십, 용병술로 중국의 천하를 3분할한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위장과 술책, 야욕과 이간질로 이번 '어벤져스'를 있게 한 안티 히어로 로키는 여러모로 위나라의 조조다. 물론 촉 정통주의론에 입각한 '삼국지연의' 시각에서 묘사한 조조다. 위 입장에서 그린 일본만화 '창천항로'의 조조는 오히려 캡틴 아메리카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어쨌든 일단 파워랭킹으로만 보면 로키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마법력 6, 방어력 6, 힘 5, 지능 5, 전투력 3, 민첩성 3. '창천항로'의 조조 역시 리더십이면 리더십, 전투력이면 전투력 등 그 시대 흔치않았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천하제패를 노린 야심 또한 로키만큼 크고 대단했다.
이밖에 '최종병기 활'로 이리저리 혈혈단신 맹활약한 호크 아이는 유비 아들을 품에 안고 '헌창 조자룡 쓰듯 한' 그 주인공 조운, 미모의 스파이에 특급 전투력까지 겸비한 블랙 위도우는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시킨 절세 미녀 초선을 연상시킨다. 한쪽 눈에 안대를 찬 짐 퓨리 국장은 외모로만 보면 전투 도중 눈에 화살이 박히자 그 화살을 뽑아 눈알을 삼켰다는 위의 장수 하후돈 아닐까.
'어벤져스'에서 삼고초려, 도원결의, 적벽대전이 나온다고?
'어벤져스' 스틸 모음 |
이번엔 '어벤져스'의 설정 몇 가지를 '삼국지연의'와 비교해보는 순서.
우선 영화 '어벤져스'에선 악의 화신이라 할 로키 세력과 지구 슈퍼히어로들의 처절한 육박전을 예상한 짐 퓨리 국장에 의해 곳곳에 숨어있던 슈퍼히어로를 규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도에서 평범한 의사로 지내던 브루스 배너 박사를 '설득'하러 간 이는 블랙 위도우였는데, 이 '가기 싫다'는 배너 박스를 '대의명분'을 들어 '꼬시는' 블랙 위도우는 초야에 있던 제갈량을 모시기 위해 초막을 세 번이나 찾아간 유비의 고사 '삼고초려'와 닮았다. 삼고초려 후 유비의 책사로 들어간 제갈량의 맹활약과, 블랙 위도우의 설득 이후 국제평화유지기구 쉴드에 합류한 헐크의 활약상은 정말 많이 닮았다.
'삼국지연의'로는 삼고초려 훨씬 전에 유비, 관우, 장비의 그 유명한 도원결의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 영화 '어벤져스'에서는? 이 개성 강하고, 툭하면 서로 헐뜯고 주먹다툼까지 하는 슈퍼 히어로들이 그나마 딱 한 번 의기투합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포일러 때문에 구체적으로 쓸 수는 없지만, 서로 힘을 보태 외계의 적들과 맞서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피어오르는 그 멋진 장면. 이는 바로 복숭아밭에서 '대의'를 위해 의형제 결의를 맺은 유비 관우 장비의 모습과 대동소이했다. 그리고 그 시절 복숭아밭은 '어벤져스'의 거대 공중유영모함 헬리캐리어에 다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조조의 100만 대군과 유비와 손권의 10만 동맹군이 양자강 적벽에서 맞붙었던 세기의 전투 적벽대전을 빼놓을 수 없다. 미남 장수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은 수전에 강한 오나라와, 바람의 방향까지 예측했던 제갈량의 진두지휘 아래 관우 장비 조운이 일심동체처럼 활약한 촉나라, 그리고 강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양자강을 가득 메운 조조 휘하 물량공세의 위나라가 벌인 2대1 태그매치가 바로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었다.
'어벤져스'에서는 아마 관객 대부분이 기가 눌릴 정도로 압도당할 영화 막판 대규모 전투신이 이 '삼국지연의'와 '창천항로'의 적벽대전과 비슷하다. 인해전술 저리가라 할 정도로 끝없는 물량을 퍼붓는 외계 군대의 가공할 침략과, 이에 맞서 각자의 전투력과 장기를 120% 활용해 맹활약한 슈퍼히어로 아이언맨, 헐크, 토르, 호크아이, 블랙위도우,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의 수비적 공세. 이들이 서로 맞부딪힌 그 휘황하고 찬란한 블록버스터 전투신이 바로 '어벤져스'와 '삼국지연의'의 클라이막스이니까.
조조군을 상대로 반간계와 고육계를 연이어 펼친 '삼국지연의'의 연환계는 이 '어벤져스'에서도 유사하게 펼쳐졌다. 측면비행을 못하는 외계 비행체들의 최대 약점은 수전에 약한 조조군의 약점이기도 했으며, 영화 막판 적진에 진입한 아이언맨의 맹활약은, 적벽대전 막판 혈혈단신 적진에 위장항복으로 진입한 황개의 활약이기도 했다. 결국 불로써 조조군을 몰살시킨 점도 '어벤져스'의 그것(스포일러라 생략)과 빼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