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균 기자 |
이제 첫 상업영화를 하는, 이제 첫 카메라 앞에 선 여배우가 이토록 주목받았던 적이 있었을까? 60~7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 시절, 오디션을 통해 발굴돼 신인이 첫 영화에 주인공이 되던 시절은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과거다.
김고은은 그랬던 과거를 되돌렸다. '은교' 오디션을 통해 타이틀롤을 거머쥐었다. 첫 상업영화에 주인공이다. 하지만 행운아라고 하기엔 '은교'는 녹록치 않았다. 박범신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은교'는 교과서에 시가 실린 70대 노시인이 여고생 은교를 욕망하고 그런 스승이 못마땅한 30대 제자가 여고생을 탐닉한다는 내용.
강렬한 욕망이 부딪히는 영화이기에 김고은으로선 큰 모험이었다. 더욱이 여배우라면 두렵기 짝이 없는 파격노출이 예고돼 있었다. 김고은은 모험을 했다. 그 모험은 성공했다. 활자로 된 은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은교' 전까진 알려진 것이 없던 김고은이 이제 '김고은교'라 불린다.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던데.
▶아버지 일 때문에 4살 때 중국에 가서 14살 때 귀국했다.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계원예고에 들어갔고 그 다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다.
-언제 연기에 관심을 가졌나. 고교를 계원예고로 갔으니 중학교 시절부터인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영화에 관심이 있었다. 영화를 하는 것, 그리고 찍는 사람들,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우리읍네'란 연극을 하면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첫 번째 연극 때는 주인공이었는데 하고 난 뒤 오히려 연기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연기를 안 하고 연출쪽으로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우리읍네'에선 작은 역이니 부담 갖지 말고 해보라고 하셨다. 정말 재미가 있었고 무대에 서는 희열 같은 게 느껴졌다. 그래서 연기전공으로 방향을 바꿔 대학에 들어갔다.
-'은교'는 어떻게 하게 됐나.
▶학교 선배님이 현 소속사 대표인데 원래 친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이 '은교' 스태프에게 신인을 소개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나를 추천했다고 했다. 그래서 오디션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경험 삼아 현장을 찾았다. 마침 박해일 선배가 노인 분장 카메라 테스트를 받을 때여서 모든 스태프가 있었다. 정지우 감독님과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 날 정식으로 오디션을 받았다.
-'은교'를 알고 있었나.
▶영화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위에서 추천을 해서 책을 사서 읽었다.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질지 궁금했다. 배우가 참 힘들겠다란 생각도 했고.
-정지우 감독은 김고은을 왜 은교라고 생각했다고 하던가.
▶자기 중심이 단단하고 호기심이 많아 보인다고 하셨다. 쉽게 휩쓸리지 않을 것이란 말도 하셨고.
-원작에선 은교는 철저히 시인과 제자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선 고민이 컸을 텐데. 노출도 있고.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했다. 가장 큰 고민은 노출이었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는 성격이라서. 이런 큰 작품에 큰 역할에 너무나 좋은 배우들 사이에서 내 몫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럼에도 선택한 이유는.
▶이야기에 너무너무 욕심과 흥미가 있었다. 활자로 돼 있는 은교를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을까 욕심도 생기고. 부모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버지께서 처음에는 안된다고 하셨다가 이십분 만에 하라고 하셨다. 아버지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소설 '은교'를 읽으셨다. 아버지는 딸이 풋풋하게 데뷔해서 나이에 맞게 연기력을 쌓아가면서 성장하기를 바라셨다. 그런데 '은교'가 자꾸 우리 곁에 어른거리는 건 네가 해야 할 것 같은 운명인 것 같다고 하시더라.
-어려운 역이다. 영감을 불어넣는 역이며 또 생명력이 넘치는 인물이기도 한데.
▶순진한 역은 아닌 것 같다. 모르는 감정은 감독님과 박해일, 김무열 선배와 계속 대화를 했다. 원작에선 노시인 시선 속에 너무나 예쁘고 콩깍지가 씌우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는 현실 속의 인물이어야 했다. 그런데 시인이 바라보는 은교와 제자가 바라보는 은교가 모두 현실 속 은교 모습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왜 사람은 여러 모습을 갖고 있지 않나.
-기자회견에서 은교가 노시인 이마에 키스를 한 뒤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서재에 내려가 제자와 만났는지 그 감정이 이해가 잘 안됐다고 했는데.
▶감독님과 선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은교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다고 믿는 제자에 호감을 갖고 있었고 또 외로웠으니깐. 그래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자회견에선 제자(김무열)와 첫 관계인 것처럼 설명했는데 오히려 그 전부터 관계를 가졌다는 게 맞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차에서 키스도 하니깐. 다만 많은 관계를 갖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임성균 기자 |
-박해일과 상상속에서 정사신을, 김무열과 서재에서 정사신을 찍었다. 노출도 그렇지만 각기 다른 감정이라는 것도 연기하기에 쉽지 않았을텐데.
▶상상장면은 이적요(박해일)의 갈망을 담은 것이다 보니 맑고 밝은 모습이어야 했다. 은교로선 성적인 호기심을 처음 느낌다고 생각했고. 제자 서지우(김무열)와 정사신은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호감을 갖고 있었고 또 외로웠고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론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김무열과 정사신 중 "여고생이 남자와 잠을 자는 건 외롭기 때문"이란 대사를 하는데. 어떤 디렉션에서 이뤄졌나. 원신 원컷(한 장면을 한 번에 찍는 것) 같기도 하던데.
▶원신 원컷도 있었고 다른 촬영도 있었는데 원신 원컷에서 그 대사를 한 것 같다. 베드신에 대한 정해진 합도 없었다. 감독님은 두 사람의 감정에 대해 주로 말씀하셨다. 김무열 선배는 내가 심리적으로 불안하니깐 많이 달래주려 했다. 나 역시 티는 안내도 불안하니깐 아무래도 감정에 주력하려고 했고.
-소설보단 살아 있지만 그럼에도 '은교' 속 은교는 남자들의 시선 속에 존재하는데. 그런 은교가 이해되던가.
▶은교를 연기하면서 그 캐릭터에 연민과 안타까움을 가졌다. 사랑 받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시인에게 사랑을 받으려 하고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맞고 비오는 날 시인을 찾아왔을 때, 그런 감정이 전해지길 바랐다.
-한예종에서 단편영화를 찍었다지만 상업영화가 처음이었다. 어떻게 적응했나.
▶한예종에서 단편영화를 찍었을 때 DSLR 같은 카메라다 보니 영화 카메라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카메라에 대한 적응이 우선이었다. 정지우 감독님이 카메라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해보라고 했다. '비처럼 음악처럼'도 불러보고 엉덩이로 이름도 써봤다. 망가지니 편해지더라. 그보다 감독님이 "네가 움직이면 카메라가 따라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은교와 닮았나.
▶솔직한 점은 닮았지만 애교 같은 건, 영. 그래도 영화 찍고 나서 애교는 늘은 것 같다.
-역할을 잘 소화해서 김고은교라 불리는데.
▶글쎄, 촬영장에서도 별명을 그렇게 불렀다. 김무열 선배가 처음 김고은교라고 했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놓고 가면 누가 은교 앞에 '김고'를 써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