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첫선을 보였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완결편이란 기대 속에 영화계 안팎의 큰 관심이 쏠린 올 여름 최고 할리우드 기대작. 비보도를 전제로 해외에서 공개한 뒤 SNS를 통해 단평이 전해지면서 팬들의 기대를 한껏 키웠다.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한 시간 전부터 티켓을 받기 위해 100여 취재진이 줄을 섰다. 그 만큼 관심이 컸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2005년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2008년 '다크나이트'로 철학적인 슈퍼히어로 영화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리즈 완결편. '다크나이트' 이후 8년 뒤, 조커와 대결을 끝으로 하비 덴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모두 떠안은 채 어둠으로 사라진 배트맨이 최강의 적 베인을 맞아 벌이는 마지막 대결을 그린다.
어둠에서 태어난 악당 베인은 고담시를 심판하겠다며 핵폭탄을 무기로 무정부상태 계엄령을 선포한다. 연인을 잃고 깊은 절망에 빠졌던 브루스 웨인은 다시 한 번 망토를 두르고 자신을 거부한 사람들을 위해 일어선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 거품이 있다.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을 본 관객들에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거부할 수 없는 마약 같은 영화다. 한스 짐머의 음악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혁명이라니.
오히려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에 열광했던 놀란의 신도들에겐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아쉬울 수 있다. '다크나이트'가 드라마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인간을 파헤치고, '인셉션'이 꿈속의 꿈으로 들어갔다면,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거대함에 비해 이야기는 평범하다.
하지만 송혜교와 사귀었던 남자가 어떤 미인을 새로 만난들 만족할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창조한 배트맨월드의 최종편으로 손색이 없다. 놀란 감독은 '다크나이트'에서 인간은 선하다는 희망을 줬다면,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선 그 희망마저 빼앗겼을 때 인간은 아니 시민은 어떻게 될까를 그렸다.
9.11 이후 미국영화엔 교통사고처럼 피할 수 없는 악과 그 악에 대처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악과 싸우기 위해 악과 닮아져가는 시스템을 그리곤 했다. 어둠을 바라다보면 어둠 또한 바라다보고 있다는, 그래서 스스로 어둠이 되어간다는 이야기.
놀란은 이 이야기에 주목한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을 가르쳤던 라스 알굴은 빈 라덴과 닮았다. 그의 추종자들은 공포로 세상을 전복하려한다. 베인도 그의 추종자다. 뉴욕을 은유하는 고담시 증권거래소에 들이닥친 악당들은 부자의 손에서 돈을 빼앗고 도시를 '점령'한다.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도 알거지가 된다.
베인은 테러라는 공포를 명분으로 시민의 권리를 빼앗아 감옥에 가둔 범죄자들을 거리에 풀어놓는다. 9.11 이후 테러용의자로 의심받는 사람들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그대로 처넣어졌듯이 악은 악의 방식대로 처단된다. 베인은 시스템이란 악을 붕괴시키고 혁명을 꿈꾼다.
시한폭탄이 장착된 도시에서 먹물 든 자는 부자와 정치인,권력자를 재판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기요틴정치를 했던 로베스 피에르가 재림한다.
구세주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던져졌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떠났고, 다시 일어섰다가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그래도 배트맨은 일어난다. 아직 고담 시민에게 모든 걸 주지 않았다며.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충고와 함께.
놀란 감독은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시스템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었다. 더 이상 가면 쓴 영웅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수천의 경찰들, 평범한 시민들, 두려움에 떨다가 일어나는 사람들이 말로 희망 없는 세상의 영웅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영웅담이 아니다. 영웅과 악당의 싸움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겐 그래서 낯설 수 있다. '다크나이트'가 인간의 마음을 농락하는 조커와 배트맨의 싸움이라면,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절망에 빠진 세상에서 분연히 일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이야기를 셰익스피어가 가면 쓴 구세주와 거짓 선지자, 그리고 혁명을 쓴 것처럼 그려냈다.
악당 베인은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보다 분명 매력이 덜하다. 어쩌겠나. '배트맨'에서 조커를 연기한 잭 니콜슨이 일찍이 말했다. "때로는 배우를 잡아먹는 캐릭터가 있다고. 이미 경고했다고"
캣우먼을 연기한 앤 해서웨이를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긴 팔다리를 섹시하게 휘날리는 앤 해서웨이는 돈 뿐 아니라 관객들의 마음도 훔칠 것이다. 정의파 경찰 존 블레이크 역의 조셉 고든 래빗 또한 새 중책을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55분을 찍은 영화답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유려하고 황홀하다. 거대한 스크린이 전하는 감동은 분명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심장 고동처럼 영화와 함께 걷고 뛰고 달린다. 액션이 가득한 오페라를 보는 기분이다.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복습한다면 재미는 2배가 될 것이다.
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관람 전 커피나 콜라를 마시는 관객은 방광의 압박에 후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