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폐막중계서 19禁곡 버젓이..韓심의제 허점

[기자수첩]영등위·여가부 청보위, 가요·팝 심의제도 과연?

박영웅 기자 / 입력 : 2012.08.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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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과 제시제이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12 런던 올림픽이 막을 내렸고, 마지막까지 볼거리는 풍성했다. 폐막식에는 스파이스 걸스, 조지 마이클, 뮤즈 등 영국 톱 가수들이 대거 출연했고, 이들은 '영국 음악의 향연'을 콘셉트로 한 풍성한 무대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 띈 한 장면. 국내 19금 판정을 받은 팝송 한 곡이 버젓이 전파를 탔다. 영국 여성 팝스타 제시 제이의 히트곡 '프라이스 태그'. 이 곡은 2011년 발매돼 5월17일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비속어 표현이 문제돼 유해매체 판정을 받은 곡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올림픽 폐막식에서 울려 퍼진 한 노래가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는 19금 판정을 받은 노래인 셈. 국내에선 청소년 유해매체로 판정한 노래가 TV를 통해 전파를 탔다. 이처럼 아무리 국내에서 청소년 유해매체로 판정한다 한들, 인터넷 및 TV로부터의 방송 노출은 쉽사리 제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을 삭제, 수정한 클린버전이 전파를 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버전이 방송 되든지 간에 전 세계 생중계되는 무대를 국내 방송에서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었을까. 그만큼 방송노출을 제한하기는 쉽지 않단 얘기다.

결국 지난해 숱하게 논란이 되어 온 여성가족부의 가요 및 팝송 심의제도와 최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새 제도는 허점을 드러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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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특히 팝송의 경우, 유해매체로 판정하는 뚜렷한 기준도 모호하고 유튜브 등 여러 영상 매체를 통해 쉽게 전파되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도 않다. 더군다나 팝송은 해외 팝 배급사 본사와 함께 전 세계 마케팅이 이뤄짐에 따라 여러 문제점도 생긴다.

영등위는 오는 18일부터 인터넷에 게재되는 모든 뮤직비디오를 대상으로 등급 분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음악영상물 제작업자가 제작하거나 배급업자 및 온라인 음악서비스 제공업자가 유통 및 공개하는 뮤직비디오 등이 등급분류 대상이다.

음악영상물 제작업자인 기획사가 만든 뮤직비디오의 경우 유튜브 등 글로벌 SNS를 통했을 때도 등급 심사를 받게 됨에 따라 가요계는 물론 팝계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영상에 등급을 매긴다는 것과 더불어 분초를 다투는 가요계 마케팅 사정상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다.

국내 팝 배급사 한 관계자는 스타뉴스에 "전 세계에 동시 발매되는 요즘 추세에 미뤄봤을 때 구시대적인 발상이다"라며 "새 심의제도를 팝송에 적용했을 때엔 새 뮤직비디오를 국내에서만 뒤늦게 접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신곡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기로 한 날, 팝 배급사인 소니뮤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뮤직비디오가 게재된다. 전 세계 소니뮤직을 통해 영상이 공개되지만, 한국에서는 영등위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영상 등급을 받기 위해 며칠이 소요된다. 물론 심사를 받기 위해 뮤직비디오를 미리 입수할 수도 없다.

이처럼 영등위의 새 제도는 팝 마케팅에 있어 치명적이다. 점점 새 음악을 접하는 음악 팬들의 기호 및 트렌드가 빨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음악 팬들은 신곡 뮤직비디오를 늦게 접하게 되는 꼴. 전 세계 유튜브를 통해 이미 공개됐지만, 한국에선 뒤늦게 공개돼 뒷북을 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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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E1 'I LOVE YOU' 뮤직비디오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K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 세계 문화가 다르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존재하지만, 해외 뮤지션들은 유튜브에 다양한 소재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는데 반해 국내 가수들은 뮤직비디오 심의 제재를 받게 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것. 마케팅 시점도 늦춰지는데다가 예상치 못한 등급을 받았을 때는 수정작업을 거쳐 다시 제작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외부의 규제도 아니고 내부에서 발목을 걸다니 걱정스럽다"면서 "국내에서 시행하는 제도가 오히려 K팝 한류의 막는 걸림돌이 됐다"고 말했다.

가요계는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시행을 5일 앞두고 법 시행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음반기획사들도 부지기수인데다가 이는 음반 제작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표현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B급 정서로 표현되는 의도적인 저급의 문화와 솔직함 등이 갖고 있는 미학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한편 영등위 측은 등급 분류 기간이 2주일에 달한다는 비난 등에 대해 "현재 영등위의 비디오물 등급 분류는 14일 내에 처리하도록 되어있지만 보통 5일에서 7일이면 결과가 나온다. 게다가 18일부터 시행되는 뮤직비디오 등급분류는 별도의 접수 순번을 부여해 빠른 시간 안에 처리되도록 준비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전 검열 논란에 대해서는 "등급 분류는 검열이 아니라 연령 별로 적절한 등급을 부여하고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분들에게 내용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고 전했다. 하지만 가요계를 오히려 불편하게 하는 '서비스'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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