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범 기자 |
배우 임창정이 돌아왔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 그가 출연한 영화도. 영화 속 그의 모습도.
오는 30일 개봉을 앞둔 영화 '공모자들'(감독 김홍선)은 공해선상에서 벌어지는 소름끼치는 범죄를 그린 작품이다. 멀쩡한 사람을 납치해 장기를 사고파는 일당이 등장한다. 끔찍하게도 신혼여행을 떠났다 장기밀매업자의 희생양이 된 젊은 부부의 실화가 바탕. 그리고 임창정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이 됐다.
흔히 '임창정표 영화'로 불렸던 그의 작품들이 늘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지 않냐'는 긍정과 여유로 가득했다면, 이번 '공모자들'은 비정하고 잔혹한 세상의 현실을 담았다. 달라진 영화처럼 그의 캐릭터도 바뀌었다. 2시간 가까운 영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았다는 임창정의 설명은 그 변화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달라진 제 모습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주실지 모르겠다"는 임창정은 그러나 불안보다 기대로 가득했다. 부러진 갈비뼈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안전장치 하나 없이 달리는 차에 매달려 추격신을 완성할 만큼 열의 또한 컸다.
절치부심해온 임창정이 '공모자들'에 이어 선보이는 다음 작품은 그가 처음 도전하는 느와르 '창수'다. 나이 마흔, 배우 임창정에게 닥친 대사건을 목격할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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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표' 코미디 영화들과 180도 다른 분위기다.
▶그런 영화, 그런 배역이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예전부터 독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독한 역할이지만 거기서 끝나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 어떤 이야기를 담았나. 심지어 주인공 영규는 장기밀매업자다.
▶사람들 속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악인은 그 악을 실제로 행하는 거고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거지. 그러나 보통 사람들도 피해를 감수하고 선을 행하기보다는 대개 지나치며 산다. 얼마 전 미국에서 교통사고 난 사람을 행인들이 모두 지나쳐 피해자가 죽는 일이 있지 않았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인이 됐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런 뉴스 속 일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당장 내게도 벌어질 수 있고, 만약 스스로 지나치지 않고 남을 도왔다면 그런 비극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런 질문 등이 담겼다.
'공모자들'의 영규는 악을 행하기로 선택한다. 너무 나쁜 일이지만 스스로는 한 번만 하고 그만두자며 정당성을 부여하고 위안한다. 하지만 저지르고 반성한다고 용서받을 일은 아니었다. 그냥 단순한 악인이라면 더 쉬울텐데 그런 이면을 보여줘야 하니 주문도 더 많고 스스로도 고민이 맡았다. 기존의 웃기는 역할에서 완전한 악인을 연기하기까지의 중간 과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공모자들'에 출연하게 됐나.
▶그 동안 흘러가는 대로 있었다. 작품이 들어오면 보고 인연이 맞으면 했다. 그러다 '창수'라는 작품을 먼저 만났고, 내가 느와르라는 장르를 했을 때 관객의 반응이 궁금했다. '공모자들'은 그 다음에 찍게 됐는데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너무 셌다. '악마를 보았다'보다 세고 '황해'보다도 더 세다. 거기선 사람을 죽이고 말지만 사람을 죽이고 팔아 돈을 번다는 건 입에 담기에도 끔찍한 나쁜 일이 아닌가. 감독님에게 말했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은데 저는 의미없이 사람 죽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그런 거 싫다'고. 감독님도 '그렇게는 안 찍을 것'이라고 하시더라. 자극적인 걸로 관객에게 어필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 수위 조절에 대해 다른 배우들과도 이야기했고. 수위 조절을 해도 이야기나 소재가 세긴 하다.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촬영 자체도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어떻게 이겨냈나.
▶사실 내가 이겨낸 게 아니라 감독님이 이겨낸 거다. '임창정은 안된다'고들 했다. 캐스팅이 번복될까 크랭크인 할 때까지 노심초사 했다. 정말 하고 싶었다. 감독님은 제 눈빛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그걸 믿었다고 하시더라. 그걸 믿어주신 감독님한테 감사드린다. 나이 40줄에 내 연기 세계에 일대 사건이 일어나게 해 주셨다. 여기엔 예전 임창정 같은 게 하나도 없다. 사투리 쓰고, 걸음걸이도 바꾸고, 다 바꿨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역할에 맞췄다.
-이번 '공모자들'도 그렇고 다음 '창수'도 그렇고 임창정이 안 웃긴다는 데 관객들이 크게 놀랄 것 같다.
▶그러지 않으셔야 할텐데. '공모자들'에는 웃기는 장면은 물론이고 웃는 장면도 안 나온다. 한번도 안 웃었다. 그게 제일 걱정이다. 저를 보러 극장에 오시면 '그래도 저 놈이 한 번은 웃겨줄거야'하고 기대를 하실 텐데, 가차없이 기대를 져버리고 정색을 하고 있으면 기대가 마이너스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 표정과 그 걸음걸이로 110분간 관객을 끌고갈 수 있을지, 또 압도할 수 있을지 두렵고 그렇다.
ⓒ이기범 기자 |
-인간적이고 또 코믹한 '임창정표'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찰리 채플린이 되지 못할 바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찰리 채플린이란 캐릭터 하나로 살 수 있는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빨리빨리 변화를 원하고, 저는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 바람에 맞춰가는 거다. '내 걸 봐 달라'고 고집을 부리다가는 그걸 보는 분이 점점 줄어들다 없어질 거라는 걸 안다. 저의 사장님은 관객이다.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코미디에 대한 애정은 여전한 건가.
▶물론이다. '코미디는 안한다' 이건 아니다. 여전히 좋아하고 사랑한다.
-작품을 미리 봤나? 달라진 모습이 스스로 낯설지는 않던가.
▶말투부터 걸음걸이까지 하나하나 다 바꿔야 했다. 스스로 보기에 낯설지는 않았다. 작품에 흠뻑 빠져서 봤으니까. 좀 잘생겼다는 생각은 했다.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 중에 제일 잘 생기게 나온다. (웃음)
-20년 넘게 연기를 했다. 전혀 다른 영화, 연기에 도전하는 기분은 어떤가.
▶연기 인생 23년, 나이 마흔에 제 연기 인생에 큰 사건이 벌어졌다. 그 전에는 쉽게 했다. 말하자면 편안하게 찍고, 마음 놓고 웃기면 됐다. 하지만 이번은 완전히 달랐다. '남부군' 이후에 이렇게 힘들게 작업을 한 게 처음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다. 관객들이 많이 봐주시면 정말 절절하게 감사할 것 같다.
-흥행 욕심도 나나.
▶솔직하게 흥행 욕심이 많이 난다. 최근 성적이 저조했다. 요즘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홍보하고 인터뷰 하는 것도 너무 좋다. 열심히 찍은 영화 자랑하는 게 즐겁다. 작품에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거다. 기호는 다를 지라도 영화는 잘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제가 많이 찍던 영화는 아니지만 액션이나 스릴러를 관객으로서 즐겨왔는데 제가 그걸 한다는 것도 좋다. 부담되지만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