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진 ⓒ홍봉진 기자 honggga@ |
배우 이정진이 베니스에 간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7년만의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김기덕 감독의 신작 '피에타'에서 주인공 강도 역을 맡았다. 극중 이름처럼 거칠고 위험한 남자다. 달콤한 스윗 가이, 깔끔한 댄디 가이와는 천지차이지만, 이 영화는 배우 이정진의 다른 면을 보여줄 게 분명하다.
이정진이 맡은 강도는 잔혹한 방법으로 채무자들의 빚을 받아내는 사채업자다. 영화는 그 남자 앞에 엄마(조민수 분)라며 갑자기 나타난 여자와 그로인해 흔들린 남자의 삶을 그린다. 설정이며 화면부터가 위험한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일찌감치 9월 3일 베니스행 비행기표를 예약해놓은 이정진을 태풍이 오기 직전 햇살 좋은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속 어두컴컴한 남자와는 달리 기분좋은 미소가 만면에 가득했다. 그런데 문제가 베니스 영화제였다. 야속하게도 영화제가 배우의 입을 꽁꽁 막아놨다. 월드 프리미어 전 영화 내용에 대해서는 미리 밝힐 수가 없다는 게 원칙이라니 어쩌나. 그렇다고 인사만 나눌 수는 없는 일! 요모조모 따져 물었다. 배우의 말문도 슬슬 열리기 시작했다.
-영화 얘기를 못한다니, 입이 근질근질하지 않나. 좀 해도 된다.(웃음)
▶안된다는 걸 어쩌나.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이것저것 얘기하면 안된다, 어쩐다 하는 게 많으니 답답해 죽겠다. 평소대로면 이래요 저래요 해야 되는데 하지도 못하겠고, 나 참.
-베니스 가는 기분은 어떤가.
▶너무 좋다. 이걸 뭐라고 해야 되나. 집안의 영광이고 가문의 영광이다. 생각지도 않게 베니스에 가게됐다, 가 아니라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배우 이정진 ⓒ홍봉진 기자 honggga@ |
-김기덕 감독 신작에 출연할 때부터 어느 정도 기대했던 일은 아닌가.
▶김기덕 감독님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은 하셨지만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현실로 나타날 줄이야. 더군다나 베니스 경쟁부문에 초청되고, 이런 일들이 너무나 급작스럽게 벌어졌다. 제가 이걸 계획하고 추진해 맞아떨어진 거면 컨설턴트를 해야 된다.(웃음) 원래부터도 계획대로 착착 추진해 실행하는 타입도 안 된다. 그렇게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이전 작품과는 간극이 엄청 크다. 계획한 변신인가.
▶작전을 짰던 건 아니다. 제 전작이 '원더풀 라디오'다. 러블리한 영화가 아닌가. 톱 여배우랑 로맨스를 찍었다. 더 달달하게 가는 게 아닌가 하는 데 갑자기 나온 작품이 '피에타'인 거다. 그 간격이 정말 크다. 제 주위에선 다들 '김기덕이랑 이정진? 글~쎄' 이런 분위기다. 그게 제가 계획한다고 되는 일이겠나. 운이 좋게 타이밍이 맞았다. 제가 작품하는 시기와 감독님이 작품하실 시기가.
-어떻게 결심했나. 설정도 세고 수위도 높지 않나.
▶늘 배우들은 마음이 끌리는 걸 하고 소속사에서는 이것저것을 따진다. 제 입장에서는 끌리기도 했거니와 굳이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노출도 없다. 전라 노출 이런 거 전혀 없다.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지만.(웃음) 중요한 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 혹은 그 이상일 거라는 거다.
-김기덕 감독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간다더라. 예능으로는 선배 아닌가. 조언 좀 해 드렸나.
▶그럴 것도 없다. 그 분 예능 나가는 거 좋아한다.(웃음) 딱 보면 느낌이 있다. 장소가 마련되지 않아서 그런 거고 누가 등 떠밀지 않아서 그간 안 나가셨던 것뿐이다. 말 하는 것도 좋아하시고.
-직접 만나보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김기덕 감독과 많이 다르던 모양이다.
▶재미있는 아저씨다. 대단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간 만든 작품이 있고 이뤄온 것들이 있다는 건 누가 봐도 아실 거다. 그런데 작품만 보면 어딘가 괴기스럽거나 어두울 것 같지 않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는 본인의 그런 모습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거다. 왜 그런 영화를 하느냐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묻는단다. 감독님은 즐겁고 멋진 영화들은 다른 감독들도 너무 많이 만든다고 하더라. 김기덕 감독이 만드는 영화들이 그렇다. 지구촌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아무도 굳이 하려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한다. 감독님 자체는? 그냥 사람 좋아하고 수다 떠는 것 좋아하는 재미있는 분이다.
-조민수와 호흡했다. '피에타'는 이정진과 조민수 두 사람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함께 해보니 어떻던가.
▶같이 연기를 해서 좋은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너무 잘 하신다. 민수 누나 보면 정말 너무 잘한다는 생각밖에 안 난다. 더 집중하게 되고 정신 바짝 차리게 되더라. 그 사람을 관찰해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런 느낌이 있더라.
-작업 방식은 어땠나.
▶촬영장에 모니터가 없다. 촬영하고 확인하고 테이크를 더 가는 게 아니라 정말 느낌인 거다. 다른 촬영장처럼 모니터 보고 뭐가 어떻고 저렇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피에타'는 철저하게 배우의 느낌과 본능만으로 찍은 작품일 수 있다.
-그런 방식이 처음이었을텐데, 불안하지는 않나. 오히려 더 자유로운가.
▶불안보다도, 상대 배우며 감독을 믿으니까 그대로 갈 수 있다. 촬영 초반에 이미 믿음이 생겨서 쉽게 쉽게 갈 수 있었다. 후시 녹음조차도 많이 하지 않았다. 감독님이 그렇게 손을 대는 걸 싫어하는 느낌도 있고. 결과적으로 저도 아직 '피에타'를 제대로 보지 않은 상태다.
배우 이정진 ⓒ홍봉진 기자 honggga@ |
-베니스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모르겠다. 예측이 전혀 안된다. 지금 생각하는 베니스는 완전히 상상의 세계다. 경쟁부문 노미네이트 명단을 보면 '오우' 이런다. 저도 한국을 대표해서 베니스에 가는 건데 굽신굽신 이러는 건 아니지 않나. 같이 경쟁부문에 올랐으니 동급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기분이 색다르다. 내가 TV에서 보고 스크린에서 보던 사람들과 같이하는 것 자체가 즐거울 것 같다. 사인도 받아야지.
-누구 사인을 받으려고 하나?
▶경쟁부문에 오른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워낙 작품들을 좋아한다. 작가 영화도 하지만 '미션 임파서블'처럼 블록버스터 대작도 하는 감독이 아닌가. 사인 받으려고 DVD나 블루레이도 챙겨갈 거다.(웃음) 김기덕 감독님도 좋아한다 하시더라.
-흥행 욕심은 안 나나.
▶스코어를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는 아니니까. 사실 베니스에 가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지금부터 벌어지는 다른 일들은 모두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큰 선물을 받았고 흥행까지 잘 된다면 너무 감사한 거다. 홍보하려고 예능도 나가고 인터뷰도 하고 무대인사도 하고, 거기에 베니스 일정이 겹쳐서 더 바빠졌다. 해외 나가야지, 이것저것 해야지,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웃음)
-'피에타'가 배우 이정진의 연기 인생에서 또 다른 전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영화가 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저도 막연한 느낌 뿐이다. 한 2주쯤 뒤 영화도 보고 베니스도 다녀오면 할 말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어쩄든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