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홍봉진 기자 |
살아가는 방법은 대개 어느 정도는 결정돼 있다. 사람은 그 방법들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선택의 순간에 섰을 때 이기적인 선택은 매력적이다. 죄책감은 따르지만.
곽도원은 연기를 택했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교회 누나 따라서 처음으로 연극을 봤다. 몸이 떨렸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극단을 찾았다. 청소하고, 조명 만지고, 선배들에게 맞기도 하면서 연기를 했다.
26살, 극단을 만들어 어린이극을 할 때 어머니가 쓰러졌다. 일주일 후 세상을 떠났다. 그 다음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 두 누나와 6년을 넘게 똥오줌을 받았다. 돈 한 푼 못 벌어주는 연기를 때려 치고 싶었다. 때려 쳤었다. 그래도 연기가 그리웠다.
다시 시작한 연기는 여전히 배고팠다. 그렇게 20년을 연기했다. 올해 나이 마흔, 고등학교 졸업 후 20년 동안 한 연기를 이제야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봐준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과 SBS 드라마 '유령'으로 주목받고 있는 곽도원을 만났다. 그는 요절복통 코미디영화 '점쟁이들'과 액션영화 '회사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연기를 어떻게 시작했나.
▶고2 때 교회 다니는 누나가 연극을 보러가자고 했다. 18년 동안 살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한 장소에서 울고 웃는 걸 처음 봤다. 환희가 들더라.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극단을 찾아갔다.
-왜 영화를 시작했나.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었다. 배도 고프고. 김기덕 감독님이 영화는 틀어주지 않으면 쓰레기라고 하지 않았나. 연극도 마찬가지다. 보러오지 않으니깐.
-'황해'에 이어 '범죄와의 전쟁'에 검사 역으로 깊은 인상을 줬는데. 이제는 더 이상 오디션을 보지 않나.
▶'범죄와의 전쟁' 이후론 오디션을 보지 않았다. '회사원'과 '점쟁이들' 모두 미팅이었다.
-'점쟁이들'은 어떤 점이 끌렸나.
▶땡기고 그런 것도 있었지만 작품 선택 그런 건 없었다. 들어오는 족족 하는 거였지.
-'점쟁이들'은 '시실리2㎞' 신정원 감독의 코미디다. 거친 역이 인상 깊어서 그런지 잘 안 어울려 보이기도 하는데.
▶연극할 때는 코미디를 많이 했다. 약장수도 하고, '홍도야 울지마라'에선 변사도 하고.
-본명이 곽병규인데 예명은 언제 지었나.
▶사람들이 곽병규라고 하면 박병규인지 헷갈려 하더라. '범죄와의 전쟁' 하면서 지금 소속사 사람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했다. 그 사장님이 점집에 가서 이름을 두 개 받아왔다.
민호와 도원이었다. '꽃보다 남자' 이민호가 얼마나 인기가 높았나. 민호라고 하면 누구 죽일 일 있냐며 도원을 택했다.
-'유령'을 보면 전반부에는 연기가 다양하고 깊은 맛이 났는데 후반에 갈수록 패턴화된 연기를 선보였던 것 같던데.
▶맞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씬 번호도 없는 쪽대본이 나오는 시스템 아니냐. 매일 밤을 새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더라. TV드라마 연기는 정말 잘하거나, 정말 시키는 대로 잘 해야 잘해 보이는 것 같더라.
-사실 TV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리액션을 따로 따고, 동선이나 시선처리도 달라서 어려웠을 텐데.
▶'유령' 김은희 작가님이 1,2부를 보시고 김형식 PD에게 저 친구가 연기 잘하는 이인데 왜 저러냐, 현장에서 좀 잘해주라고 했다더라. 김형식PD가 내가 불편한 게 있냐고 하기에 카메라 동선을 잘 모르겠으니 나한테 맞춰줄 수 있겠냐고 했다. 모니터를 봐도 괜찮냐고도 했고. TV드라마에선 좀처럼 없던 일인데 김형식PD와 촬영감독이 모두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소지섭도 촬영할 때 많이 도와줬고.
-'미친소'는 혼자 한 게 아니란 뜻인 것 같은데.
▶'미친소' 뿐인가, '범죄와의 전쟁'도 다 마찬가지다.
-'유령'보다 '회사원'을 먼저 찍었는데. 소지섭과 많이 친해졌나.
▶'회사원'에선 소지섭이 낯도 가리지만 워낙 맞서는 캐릭터라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또 난 현장에서 가면 그 캐릭터처럼 지내는 편이다. 누가 말을 걸지도 않고. 그러다 '유령'을 찍으면서 많이 친해졌다. TV드라마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참 많이 도와줬다. 이제는 '지섭씨'라고 안하고 '지섭아'라고 한다. 우하하.
-반면 '점쟁이들'은 즐기면서 찍은 것 같다. 신정원 감독과 서로 좋았으니 신정원 감독 다음 작품인 '더 독'도 같이 하기로 했을 것 아닌가.
▶내가 비구니를 꼬셔서 파계하는 중으로 나온다. 신정원 감독과 삼척에서 영화 찍다가 눈이 참 많이 오는 날이었다. 치킨에 소주를 먹다보니 감독이 사라졌다. 어디 갔나 싶더니 자기 카메라로 눈 오는 걸 찍고 있더라. 한참 같이 눈을 보다가 이걸 영화에 담을 수 없을까라고 얘기가 오갔다. 조명감독이 '그럼 조명 가지고 올게'라고 하고, 의상 스태프 깨워서 허름한 옷 입고, 갑자기 대사 준비해서 찍었다. 영화놀이를 한 것이다. 정말 좋았다.
-당시 눈이 많이 와서 '점쟁이들' 세트가 무너진 걸로 알고 있는데.
▶맞다. 세트가 무너졌는데도 그렇게 영화놀이를 하고 있었다. 조재현 선배가 최근에 방송에서 왜 배우들은 일을 해야 하는데, 라고 하는데 왜 일을 하냐고 하느냐고 하는 걸 본 적 있다. 김연아 선수를 보고 빙상에서 참 일을 잘한다고 하지는 않지 않나. 박세리 선수보다 풀밭에서 참 일 잘한다고도 하지 않고. 연기는 플레이, 즉 놀이인데. 많은 생각을 했다. 연기는 게임의 룰을 지키면서 놀이로 해야 하지 않겠나는 생각.
사진=홍봉진 기자 |
-포털사이트 프로필에는 1974년생 범띠로 나오던데.
▶73년생 소띠다. 그냥 냅뒀다. 한살이라도 젊게 나오면 좋지 뭐.
-스무살에 연기를 시작해 꼭 20년만에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게 웬 복인가 싶기도 하고, 그동안 게을렀나란 생각도 든다. 전국에 연극영화과에서 해마다 500명이 넘는 졸업생이 나오는데 고졸 학력으로 연기에서 밥을 먹고 있다. 운이 좋다면 좋은 것이고.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는데.
▶내가 26살 때 아동극 한다고 극단 만들어서 지방 다녔을 때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아버지는 6년 동안 치매를 앓다가 떠나셨고. 누나들과 똥오줌을 다 받았다.
-집안에 남자 하나인데다 그렇게 힘든 상황이면 돈 안되는 연기 포기하고 싶을 법도 한데.
▶이기심 때문이다. 아동극을 한다고 지방 다닐 때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그 당시는 삐삐 시절이었는데 음성이 20개까지 녹음이 된다. 나중에 음성을 듣는데 처음에는 누나가 '병규야, 엄마 쓰러지셨다. 돌아가실 것 같아. 너 뭐하냐"라고 녹음이 돼 있더라. 중간에는 "너 이새끼 뭐하는 거냐"고, 마지막에는 우는 목소리로 "병규야 어디냐"로 돼 있더라.
그 때 연극 때려치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어머니 임종도 못지키냐 싶었다. 그런데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고졸에 연극만 했으니깐. 1년 정도 있다가 연극하는 선배가 자기 극단에서 조명 아르바이트를 하자고 제의를 했다. 그걸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연기하는 걸 보니 얼마나 하고 싶던지.
그러다가 신문에 조그만 광고로 경남 밀양에서 연희단패거리 워크숍 단원을 모집한다는 걸 봤다. 한달만 배우러 가자고 했는데 7년을 했다. 당시 연기 잘하는 애들은 '햄릿' 같은 걸 하고 난 아동극 시켜줬다. 경험도 있으니 주인공도 하고.
-그러다가 어떻게 영화를 하게 됐나.
▶선배들한테 대든다고 극단에서 짤렸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더니 대학로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오달수 선배가 연희단패거리 선배인데 인연은 없었다. 무작정 찾아가서 어떻게 영화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단편영화를 하라더라. 감독들이 본다며. 운좋게 처음 찍은 단편영화가 미쟝센영화제에 출품됐다. 그 때 전계수 감독님도 만났고, 또 당시 스태프들이 상업영화를 하면서 많이 추천해줬다.
-이제 욕심이 나지 않나.
▶욕심도 욕심이지만 부담감이 더 크다. 새로운 걸 보여주고 더 잘해야 한다는.
-결혼계획은.
▶지금 사귀는 사람은 없는데 정말 하고 싶다. 누나들이 시집가고 부모님하고 살던 집에 지금 혼자 산다. 일마치고 불 꺼져있는 집에 혼자 들어가면 정말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