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효주(왼쪽) 심은경,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 |
혹자는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를 남자의 영화라고 한다. 군주와 천민 하선을 오가는 이병헌, 무게감 있는 충신 허균 류승룡, 법도에 충실한 호위무사 김인권, 조용히 왕에게 깨달음을 주는 조내관 장광까지, 정사를 움직이는 남자 캐릭터들의 역할은 단연 중요하다.
그러나 영화 속 광해를 움직이는 건 사실 영화 속 여인네들이다. 천민 하선이 성군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하는 두 여인, 중전 한효주와 사월이 심은경이야 말로 이야기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중요한 인물들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의 여인들의 운명은 기구했다. ‘광해’의 중전도 다르지 않다. 살얼음판 같은 궁에서 일가족들은 하나 둘 계략 속에 죽어나가고, 그나마 한 명 남은 오라비도 간신들의 계책에 목숨이 위태롭다. 여기에 남편인 광해는 다른 여인의 치마폭에 파묻혀 있으니 미소를 잃을 수밖에.
중전의 미소를 한 번 보고자 하선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정치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하선은 첫 눈에 반한 여인 중전을 위해 호기롭게 유정호 방면을 명한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하선은 점차 정치에 눈을 뜨게 되고 대신들과 정치 세계의 추악함을 깨닫고 분노하게 된다.
뽀얀 피부에 가채를 올리지도 않고 화려한 금박 장식도 없는 단아한 중전의 모습은 영화 속 화선이 표현한 대로 '밝은 달' 마냥 아름답다. 왕의 여인이지만 모진 풍파 속에 미소를 잃은 중전을 연기한 한효주의 슬픈 얼굴은 어린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영화 '써니'에서 얌전하지만 중요한 순간 욕쟁이로 돌변하는 소녀 나미로 많은 사람을 받은 심은경도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의 몫을 다했다. '광해'에 나인 사월이로 출연한 심은경은 중전과 하선 사이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하며 영화에 잔재미를 준다.
영화 속 사월은 작은 역할이지만 사월이 하선에게 주는 메시지는 역할의 크기 그 이상이다. 살벌한 궁에서 하선이 각별히 여기게 되는 나인 사월(심은경 분)은 하선이 민초들의 삶에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된다. 관하의 과도한 공납요구로 빚을 지게 되고 결국 가족과 흩어져 노비로 팔려 궁까지 흘러오게 된 사월의 사연은 진짜 왕이 되고자 하는 하선의 마음에 불을 댕긴다.
누구 하나 버릴 캐릭터가 없이 꽉꽉 채운 영화 '광해', 순식간에 400만 고지에 오르며 또 하나의 흥행작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광해'가 '도둑들'에 이어 올해 한국영화 흥행 2위 자리까지 넘볼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