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규리ⓒ홍봉진 기자 |
지난 3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배우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남규리(27)다. 불과 3년 만에 안방극장과 극장가를 오가는 활약으로 가수였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했다.
남규리는 지난 25일 종영한 KBS 2TV 월화극 '해운대 연인들'에서 특별 출연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극중 사건의 구심점이 되는 윤세나 역할을 소화했다.
사실 '해운대 연인들'에서 남규리만큼 슬픈 캐릭터도 없었다. 극중 자신에게 무관심한 이태성(김강우 분) 만을 바라보는 윤세나 역을 맡았다. '태성바라기' 윤세나, 세나의 순애보를 만들어 낸 남규리에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결혼을 앞두고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남자를 사랑하는 건 얼마나 힘들까. 남규리가 '해운대 연인들'에서 그랬다. 이런 순애보도 없다.
"사실 세나가 이해가 안 돼서 초반에 힘들었어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남자가 뭐가 좋다고 좋아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실제로 그런 사랑을 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세나는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저 같으면 태성이 따귀라도 한 번 때려줬을 거예요."
괴롭혀도 화 한 번 안 낼 것 같은 남규리가 '따귀를 때리고 싶었다'는 말을 하니 놀랍다. 극중 상황이 실제 벌어진다면 남규리는 정말 그럴까.
"그렇게는 못해요. 저는 사랑에 집착 해 본 적도, 저 싫다는 이에게 매달리지도 않아요. 연기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적인 부분에서 한 번은 질러야 하지 않았을까요? 같은 여자로서 조금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태성에게 뭐 하나 빠지는 건 없었는데, 자신을 밀어내려는데 곁에 있어야 했을까 싶어요."
남규리의 말이 이해가 된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이렇다 할 결혼 생활도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버젓이 살아있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연기를 할 때는 제가 맡은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는 편이에요. 진심으로 느끼고 해야 하는 것 때문에 제 스스로도 힘들어요. 특히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어려워요. 세나가 일반적인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태성 오빠에게 집착하는 게 한편으로는 재밌었어요. 나중에 오빠한테 화내고 집착하는데, 제가 경험한 게 아니었죠. 그런 걸 연기하면서 '남자들이 이래서 바람을 피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남규리는 이번 작품에서 한솥밥을 먹는 조여정과 한 남자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같은 소속사 언니와 연기 대결을 해야 했던 상황이다. 적잖은 부담감이 들지 않았을까.
"(조)여정 언니와 연기대결이라뇨. 저는 이제 연기를 3년 했어요. 언니가 데뷔한 지 15년 정도에요. 연기도 10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대결이 되겠어요. 언니와 연기 하면서 제가 많이 배웠죠."
남규리는 김강우와 연기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해 '김강우는 정돈된 스타일이다'고 요약했다.
"촬영장에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정돈된 스타일이에요. 촬영 전에는 대본, 상황에 집중하세요. 스태프들이랑 촬영 전에는 절대 웃지 않아요. 촬영을 마치고 나서야 장난치고 웃죠. 일하는 파트너로서 (김)강우 오빠는 최고에요."
'해운대 연인들'을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에 대해 남규리는 극중 고소라(조여정 분)와 처음 만나는 신이었다고 밝혔다.
"소라를 처음 만나는, 제가 쓰러지는 신이었어요. (김)강우 오빠가 잡아주는 장면이었는데 '너 40kg대 맞아?'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힘 하나 없이 업혀 있었는데, 저를 차 바닥에 내려놓으시더라고요. 시트가 아닌 자리에요. 저를 구기시더라고요. (조)여정 언니랑 정석원이 많이 웃었죠.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굴욕 아닌 굴욕이었어요. 강우 오빠가 그 때 힘들어서 그러신 거 같아요."
드라마 촬영이 즐거운 일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날씨를 비롯해 밤샘 촬영까지 한 신이 만들어지기까지 제작진, 출연진 모두가 고생이다. 남규리 역시 한 여름 촬영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폭염 때문에 살갗이 많이 탔어요. 태풍 때문에도 고생이 많았죠. 한 번은 태풍이 온 날 호텔에 투숙하는데, 창문이 계속 열리는 거예요. 창문을 잠그고 또 잠갔죠. 계속 열려서 신문지로 문틈을 끼워 두기도 했어요. 그래도 창문은 계속 열렸어요. 잠자는 시간이 몇 시간 안 됐는데, 촬영보다 자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배우 남규리ⓒ홍봉진 기자 |
연기를 시작한지 불과 3년이다. 매 작품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게 배우라고 했던가. 남규리 역시 이번 작품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됐다고 했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번 작품을 통해 강해진 건 있어요. '해운대 연인들'을 시작할 때, 사실 슬럼프가 왔어요. 그래서 많이 힘들었죠. 작품을 하면서 같이 이겨냈어요. 배우는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행복하면서 고독하잖아요. 그래서 슬럼프 때 '이 직업이 제게 맞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잘 이겨냈고, 지금은 괜찮아요."
남규리가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캐릭터는 썩 밝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방송한 드라마 '49일'에서도 그랬다. 앞서 출연했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양초롱 역을 맡았을 때는 매사 긍정 캐릭터였지만 말이다. 차기작에서는 어떤 캐릭터를 맡고 싶을까.
"제 캐릭터가 어두워서 그랬던 건 아니에요. 이번 작품에서 맡은 캐릭터는 스스로 이해하기 힘들어서 그랬어요. 사실 저는 캐릭터가 어두워도 좋아요. 차갑지만 상처가 많은 여자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의 문채원씨 캐릭터 같은 거요. 밝고 어두운 캐릭터를 떠나서 제가 몰입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처음 연기할 때는 몰랐는데, 저와 다른 성격의 캐릭터에 몰입하는 게 재밌어요."
남규리는 이번 작품을 마치고 난 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단순히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앞으로는 감정, 표정 등 지금 보다는 섬세하게 연기를 할 거예요. 꼼꼼하게 해야죠. 다른 선배들을 보면서 섬세해져야겠다는 각오를 했어요."
최근 KBS 2TV 새 월화극 '울랄라 부부'에 카메오 출연한 남규리다.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어떤 장르, 분야로 컴백하게 될까.
"드라마, 영화 중 어느 한 쪽으로 출연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가능성은 다 열어놓고 있어요. 드라마, 영화 모두 출연 제의를 받으면 기분은 좋겠지만 그렇게 하는 건 힘들어요. 얼마 전에 '해운대 연인들' 촬영하면서 '울랄라 부부'에 출연했는데,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데 너무 힘들었어요."
남규리는 드라마와 영화에 동시 출연하는 건 힘들다고 손사래를 쳤다.
"몸이 힘든 것보다 서로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는 게 무엇보다 힘들어요. '해운대 연인들'에서는 울고, '울랄라 부부'에서는 예쁘 외모에 굴욕적인 캐릭터로 많이 웃었죠. 몇 신 안 되는데도 힘들어서 두 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제가 한 캐릭터에 몰입하는 편인데, 작품의 완성도 때문이라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배우 남규리ⓒ홍봉진 기자 |
짧으면 짧고, 길면 길었던 '해운대 연인들'에 출연한 남규리는 벌써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드라마 촬영은 끝났지만 바쁘게 지낼 거 같아요. 배우니까 내년도 준비해야죠. 이번 작품을 마치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지냈어요. 기타도 배우려고 하는 중이에요. 연기 스터디도 하기로 했어요. (정)석원이가 또래 연기자들과 연기 연습을 하는 스터디를 하자고 했어요."
남규리는 쉬는 동안 건강도 챙기겠다며 무엇보다 살을 찌우겠다고 밝혔다.
"망언이라면 망언일 텐데, 건강해지려고요. 이번 드라마 촬영하면서 살이 많이 빠졌어요. 헬스 트레이너가 초등학교 4학년 근력이라며 어떻게 이 몸으로 일을 하냐고 하시더라고요. 예전에는 살 안 찌려고 운동했는데 이제 반대에요. 요즘 과식도 해요."
앞으로 더 좋은 작품에서 만나게 될 남규리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기 보다는 잊히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단순한 화제로 시선을 끄는 건 오래가지 않아요. 경험도 해봤어요. 억지로 관심을 끌기 보다는 좋은 작품으로 꾸준히 활동해야죠. 남규리를 떠올리면 제가 출연했던 작품 속 캐릭터까지 떠오르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는 아직 멀었어요. 경력에 비해 많은 사랑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항상 감사하죠. 인간미도 있고, 작품 속 맡은 캐릭터를 완벽히 표현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배우가 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