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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봉진 기자 |
직장인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평소 음악 감상을 즐기는 A씨는 뮤지션 B의 최신 음반을 구입하려고 레코드숍을 찾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해당 CD를 찾기 힘들었고, 각종 온라인 사이트를 뒤졌지만 품절 혹은 물량 부족이란 표기가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CD 구매를 요청했고 해당 숍에 문의한 결과, 제작사로부터 CD 제작계획이 없단 얘길 들었다. 그러나 집요하게 요청한 결과, CD 한 장을 겨우 얻었다. 대량구매자들이 요청하면 물량이 있고, 1장을 구하기엔 버거운 게 현실. CD 한 장을 구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다면, 구하기 힘들단 얘기다.
◆ CD가 귀한 세상..음원시대의 그림자
CD가 귀한 세상이 오고 있다. 음악이 소유가 아닌, 공유의 시대로 바뀐 지는 오래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 하면서 팬덤이 확고한 아이돌 가수 혹은 마니아층이 두터운 싱어송 라이터에게만 옛 방식이 통하는 세상이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편리함을 얻은 대신, 정작 가수들에 돌아가는 혜택, 일종의 보상은 턱없이 적은 게 현실. 음반시장을 집어삼킨 음원시대의 그림자를 살펴봤다.
미국 영국 등 팝 음악의 본고장에 비해 턱없이 싼 디지털 음원 이용료는 음원 저작권자들의 오래된 불만이었다. 지난 7월엔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권 단체와 음원소비자들의 요구를 절충하기 위해 음악전송 사용료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싼 값에 다양한 음원 서비스를 누리려는 대중의 요구와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으려는 저작권자들의 항의를 수렴, 고심한 흔적을 담았다. 정액제는 유지하면서도 플랫폼에 따라 사용료를 다르게 매길 수 있게 했고, 종량제의 개념도 일부 도입한 것. 다운로드의 경우 한 곡당 요금 600원을 유지하고, 저작권 권리자 몫을 360원으로 설정해 할인 폭을 세분화한 것이 주 내용이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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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전송사용료 징수규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음악인들의 시위 |
◆ "월 3000원만 내면 모든 음악이 내꺼?"
현재 음원사이트에선 월 3000원만 내면 무제한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3000원만 지불하면 마음껏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 하지만 편리한 대중과 달리, 음원 정액제는 저작권자들에 한 없이 불리한 제도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통신망 업체에 유통의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여러 모로 힘든 상황에 처했다.
뮤지션들의 불만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온라인 음원사이트 묶음형식 판매 제도인 음원 정액제를 반대하는 뮤지션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음원서비스를 자체 불허하고, 저가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패키지 상품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당한 권리를 찾겠단 의지다.
불합리한 음원제도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가요계에도 큰 변화가 생길 전망. 음악산업 전반에 걸친 제도적 부당함에 맞서 뮤지션들의 정당한 권리를 한 목소리로 외치고 많은 이들과 소통하겠단 계획이다. 또 음원정액제 반대 의견 광고 기금 마련을 위한 공연 및 뮤지션 소장품 바자회도 열리고 있는 상황이다.
음악인들은 무제한 정액제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지가 되더라도 가격대 및 시스템을 조정돼야 한다는 것. 무제한 정액제가 기존 가격과 다를 바 없이 유지되면 개정안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게 음악인들의 설명이다.
'음원 정액제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 홈페이지에서는 웹툰을 통해 왜 음원 정액제를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공들여 만든 음원을 '배추'에 비유, "마음만 먹으면 훔쳐 먹을 수도 있다"는 말로 현실을 비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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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익스프레스 ⓒ스타뉴스 |
대중음악평론가 성시권 씨는 "창작자, 유통사, 소비자가 서로 도움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현 시스템은 누구도 성장할 수 없는 시장구조"라고 말했다.
◆ "음원정액제 폐지, 애초 잘못된 것 바로 잡자는 것"
뮤지션들이 음원정액제 폐지를 요구하는 건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받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돈을 더 받고 싶어 한다는 얘기와는 다르다. '음원을 돈 주고 듣기 아깝다'란 일부 대중의 의식 자체를 고쳐야 한다는 것. 당초 잘못된 음악계 관행의 시스템과 개념을 바로 잡아야 된다는 차원의 주장이다.
블랙뮤직 매거진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은 "만약 정액제가 폐지되면 지금보다 돈을 더 잘 벌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오히려 팬덤을 지닌 대형 기획사가 돈을 조금 더 버는 경우는 생기지만, 다운로드 등 대중의 수요는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정액제 폐지 초기에는 인디뮤지션이나 팬덤이 약한 가수들이 오히려 힘들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꼭 폐지되어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K팝이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지금, 대중이 절대 가져서는 안될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음원을 묶음제도로 파는 것은 미국 영국 등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제도다. 애초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지난 7월10일 서울 시청광장에도 현 제도를 반대하는 가요계의 거대한 움직임이 있었다. 'Stop Dumping Music(스톱 덤핑 뮤직)'이라는 슬로건 하에 진행된 이날 '온라인 음악산업 정상화를 위한 음악인 한마당' 문화제 행사에는 가수, 가요 제작자, 작곡가 등 수백여 명이 음원의 다운로드 덤핑과 스트리밍 무제한 월정액 서비스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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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홍봉진 기자 |
그들은 이 같은 시스템이 음악을 저평가한 가격구조를 띠고 있으며 다양한 음악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정액제 서비스 폐지와 묶음상품에 대한 할인율을 재검토함으로써 불필요한 추가 할인을 없앨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음원은 저가 콘텐츠? 일부 소비자 의식 잘못"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권 단체와 음원소비자들의 요구를 절충하기 위해 '홀드백' 제도도 시행하기로 했다. '홀드백'은 음원제작자가 자신의 음원을 일정 기간 월정액 묶음 상품에 포함시키지 않는 제도. 예를 들어 신곡이 출시되면 원하는 기간만큼 별도로 음원 서비스 할 뿐, 월정액 상품으로는 제공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다.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들이 나서서 홀드백 제도를 하지 않는 다면, 여러 가수들 또한 손해를 봐가면서 이를 선택하진 않을 것이란 얘기. 신곡이 주목받는 발매 초기에 홀드백 제도를 선택할 가수는 없지 않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신곡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적극적인 음원구매층이 과연 많을 것인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래퍼 바스코는 자신의 신곡에 대한 음원 서비스를 불허했다. 인디 힙합신의 인기 래퍼 바스코는 자신의 아들에 바치는 노래 '주니어'를 발표했지만 이 곡은 정식 음원 다운로드를 하지 않고서는 음원 사이트에서 노래를 들을 수 없다.
바스코는 스타뉴스에 "현 가요계의 음원정액제 시스템의 불공정한 정산 제도에 반대하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음원분배에 대한 현실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바스코는 "예전에 싱글을 발표했을 땐 아무런 홍보 없이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정식 음원 다운로드만 허용한 신곡 '주니어'의 경우, 수익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음악을 헐값으로 듣고 있다는 게 잘못됐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소비자들은 떳떳하게 음악을 듣고 있지만 생산자 입장에선 억울하다. 스트리밍의 경우, 음악을 소유하진 않았더라도 음악의 가치 자체를 전달해 준 건데 터무니 없는 대가가 오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음원정액제 서비스 반대 뮤지션 급증
음원정액제를 반대하는 뮤지션들도 크게 늘고 있다.
록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지난 달 26일 발표한 3집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음원을 종량제로만 서비스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음원사이트의 정액제 가입자는 음원 다운로드·스트리밍 서비스를 1분 미리듣기로만 제한된다.
최근 2집 '희망'을 발표한 힙합 뮤지션 비프리 역시 종량제로만 음원을 서비스했다. 개별 곡을 구입하지 않는 이상, 음원 사이트에서 들을 수 없는 것. 이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음원 정액제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맞선 셈이다.
봄여름가을겨울 멤버 김종진도 마찬가지. 김종진은 지난 5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음악 무제한 정액제를 반대한다"며 "그런 의미를 담아 봄여름가을겨울은 우리의 모든 음원을 온라인 서비스 중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음원 사이트는 해적판CD에 불법 다운로드가 만연하던 시절에 등장, 가요계의 건전한 변화를 기대하게끔 했다. 하지만 이젠 음원 사이트가 권력이 되어 다시 창작자의 입지가 좁아지게 하고 있다. 창작자와 음악산업, 소비자가 모두 만족하는 음악계 전체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