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6년' ⓒ영화스틸 |
영화의 모티브는 그 분이다
영화 '26년'이 개봉되었다. 광주 수호파 중간보스 곽진배,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 경찰 권정혁은 모두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부모를 잃은, 희생자 2세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대기업 회장 김갑세와 그의 비서 김주안은 '그'를 타깃으로 한 극비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영화 속 그들은 왜 직접 이러한 프로젝트를 실행하려고 했을까. 이와 관련해 전두환, 노태우의 형사처벌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었던 소급효금지의 원칙과 5.18 특별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소급효금지의 원칙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범죄와 형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일반원리이다. 즉 형벌법규는 그 법규의 시행 이후에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시행되기 이전의 행위에까지 소급하여 적용될 수 없다는 원칙이다.
간단하고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경우 징역 1년에 처한다는 가상의 법률이 오늘부터 시행되었다고 하면, 이 법률은 오늘 이후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자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지난 여름 김춘봉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자는 척을 한 자에게 오늘부터 시행되는 법을 소급적용하여 징역을 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5.18 특별법 사건
이 소급효금지의 원칙이 크게 문제가 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전두환, 노태우와 관련한 5.18 특별법(정식명칭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의 타당성 논의이다. 이 법은 1979년 12월12일과 1980년 5월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정지 등에 관한 사항들을 규정함으로써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민족정기를 함양함을 목적으로 1995년 12월21일 제정된 법률이다.
내란죄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내란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어서,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내란죄는 5.18로부터 이미 15년이 지난 위 법 제정 즈음인 1980년으로부터 공소제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새로 제정한 5.18 특별법에 따르면 위 내란죄의 공소시효는 1993년 2월24일 노태우 퇴임일까지 진행되지 않아 공소제기가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법률이었던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는 자신의 행위 시인 5.18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법률이므로 위에서 살핀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였고, 결국 이 5.18 특별법의 위헌 여부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다. 헌법재판소 설립 이래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결정 중 하나였으며, 결론적으로 헌법재판소는 이 5.18 특별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후의 진행
이후의 진행상황은 알려진 바와 같다. 5.18 특별법의 적용으로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공소제기가 이루어졌고, 1심에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22년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후에 2심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형, 노태우는 17년의 징역형을 받았고 대법원에서 이 형이 확정되었다(대법원 판결선고일 1997년 4월17일). 그러나 전두환과 노태우는 1997년 12월22일 특별사면 및 복권되었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영화의 모티브는 위와 같은 논픽션에서 시작된 걸로 보인다. 국가가 형사처벌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피해자가 만족할 만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형사처벌이 피해자의 만족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나, 납득할 만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법의 권위가 서지 않게 된다.
영화 '26년'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직접 처단하려고 한다는 면에서 영화 '모범시민'과 일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26년'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는 면에서 다르다. 27년, 28년이 지나도 적절한 처벌 논의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이순우 변호사 프로필 1979년생. 고려대학교 졸업. 전 한국산업연구원 연구원.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법적분쟁과 공정거래 및 하도급분쟁 해결에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동안(童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