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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이 갑(甲)이 됐다. 대한민국에 살지만 국민은 안 하겠단다. 노후를 국가에 저당 잡힐 수 없다는 이유다. 주민등록증은 일찌감치 잘라 버렸다. 주민번호는 너무 길어서 외울 수 없다. 월드컵 한일전도 시끄럽다. 무슨 놈의 애국심이 4년에 한번씩 돌아오냐며 일갈한다.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가출한 초등학교 아들이 돌아오자 "무슨 가출은 1박2일만 하고 오냐"며 타박한다. 딸에겐 제도권 교육에 굳이 동참할 필요 없다고 가르친다.
그래도 이 남자 최해갑은 열혈 운동권 출신인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아들에게 사랑 받는다. 2월6일 개봉하는 '남쪽으로 튀어'에서 김윤석은 그렇게 현실에선 있을 법 하지 않은 아빠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냈다.
'남쪽으로 튀어'는 일본소설가 오쿠다 히데오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운동권에서 전설로 남았던 아빠가 가족과 함께 남쪽 섬으로 갔다가 그곳마저 리조트를 만들겠다며 위협을 받자 마침내 과거 위용을 드러낸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원작이 가족 각자가 삶에 지쳐 유토피아로 도피했다가 투쟁에 나서는 이야기라면 한국영화 '남쪽으로 튀어'는 가족 그리고 아빠에 좀 더 집중했다.
-공권력쯤은 콧방귀를 뀌는 진정한 갑이 됐다. 한국영화 대표 갑 배우로 자유로운 영혼인 갑이 되고 싶어 이 영화를 선택했나.
▶일단 남쪽으로 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모두가 떠나고 싶어하지 않겠나.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통쾌함과 그리고 이야기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정말 좋았다.
-일본 원작은 가족 각자가 삶에 지쳐 유토피아로 도피했다가 그곳마저 침범 당하자 맞서는 이야기이다. 반면 한국영화는 가족의 이야기가 더 단단한데.
▶정서적인 울림이랄까, 피붙이에 대한 이야기. 흩어졌다가 뭉치면서 더 단단해진다. 이 이야기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 것 같다.
일본은 우리와 다르다. 연극할 때 일본 원작으로 많이 해보면 그쪽은 색깔이 분명하다. 일도필살이랄까. 반면 우리는 넉살과 해학과 풍자가 있다. 영화에서 내가 맡은 최해갑도 원작은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면이 있다. 그걸 우리식으로 사건은 싫어도 인간은 미워하지 않는다로 풀어냈다.
-일본 원작에선 오키나와의 한 섬이지만 우리식으로 남쪽섬을 꼽자면 자연스레 강정이 떠오르는데.
▶너무 상징적이다. 강정과 다르기도 하고. 원작에선 신사가 무너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 우리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산 터전과 조상들이 잠든 무덤이 개발되는 걸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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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과 작업은 어땠나. 채식주의자인 임순례 감독과 육식동물 같은 김윤석과 만남인데.
▶(감독님이)생각했던 것보다 더 본인만의 세계가 있는 것 같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초기작부터 얼마나 강렬하게 자기 이야기를 밀고 나갔나. 연출할 때 보면 포즈라고 할까, 여백일까, 빈 공간을 열어 놓는다. 연기가 끝나고 컷을 하지 않고 그 빈 공간을 지켜본다. 그런 여백과 포즈가 이 영화에 힘을 실어 넣는 것 같다.
-연극할 때 연출도 했었다. 이번 영화에는 각색에도 참여했다는데.
▶문어체를 구어체로 바꿨다. 임순례 감독님이 굉장히 열려있다.
-영화에 지나치게 많은 열정을 쏟는다. 그러다보니 원치 않는 오해도 사고.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영악하게 해도 될텐데.
▶나도 힘들다. 북치고 장구치고 매일밤마다 이런 일 때려 치자고 생각한다. 그런다고 개런티를 더 주나, 영화 좀 안 나왔다고 내가 당장 사장되나. 그래도 작품에 대한 책임감과 기질적인 게 멈추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딴따라 습성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남쪽으로 튀어'는 밀도를 잘 조절했나.
▶관객과 두뇌싸움을 벌이는 영화는 백전백패한다. 그런 점에서 '남쪽으로 튀어'는 임순례 감독의 절제 미덕과 여백이 이야기에 힘을 준다고 생각한다.
-차기작인 장준환 감독의 '화이'는 얼마나 진행됐나.
▶30% 정도 촬영했다. 슬슬 달려가는 시점이다. '화이' 역으로 출연하는 여진구는 정말 기대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