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엔블루 ⓒ사진제공=FNC엔터테인먼트 |
'mp3는 약하다. CD는 늙었다. 세상은 점점 세고 파릇한 영웅을 원한다.'
음원 청취환경이 급변한 지 이미 오래다. 1982년 질시와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 CD 시대가 30여년만에 요동치고 있다. '심도' 16비트에 '샘플률' 44.1kHz라는, CD에 담긴 디지털음원의 스펙은 더 이상 고품위 음원으로 대접받기 힘들어졌다. 원래 스튜디오 녹음 음원을 700Mb 안에 담기위해 다운사이징한 게 CD였으니까. 하물며 이 음원을 또 다시 손실 압축한 mp3는 더 말할 것도 없다. CD가 그나마 1411kbps라는 정보량을 유지하는데 비해 mp3는 현존 국내 음원사이트 최고 사양이 320kbps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시대는 결국 100만원 상당의 고성능 음원 플레이어를 저마다 손에 쥐었다는 얘기다. 조금이라도 음악을 정성을 다해 즐기려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번들 이어폰 따위는 쓰지 않는다. 2, 3년 전부터 닥터 드레, 말리, AKG, 젠하이저, 보스, 오디오테크니카, 슈어, 그라도 등 최소 10만원, 20만원 이상의 고가 이어폰 헤드폰 열풍과 심지어 스마트폰 내장 앰프 성능을 뛰어넘는 중저가 헤드폰 앰프, PC나 맥을 활용한 PC-fi, Mac-fi까지 대중의 관심사에 오른 이유는 단 하나다. '내 귀와 음악 감상은 소중하니까.'
이런 맥락에서 최근 고품질 음원이 국내외에서 속속 등장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예가 한 국내 디지털음원 플레이어 제조사가 지난해 말부터 선보인 고품질 음원 다운로드 사이트 '그루버스'다. 지난달 14일 공개된 씨엔블루의 앨범 'Re: BLUE'의 경우 타이틀곡 'coffee Shop'을 비롯해 수록곡 6곡이 24비트에 48kHz 음원으로 포장돼 팔리고 있다. 한 곡당 1800원. 멜론이나 엠넷 등 음원사이트의 경우 정기 결제를 하면 한 곡당 60원꼴이니까 무려 '30배'나 비싼 음원인 셈이다.
이 사이트에는 이밖에도 모세의 '지하철에서', 제아의 'Just JeA', 소녀시대의 'I Got A Boy', 시크릿의 'Talk That' 등 가요 앨범을 비롯해 OST, 클래식, 국내 재즈 등의 음원이 24비트를 기본으로 해서 48kHz, 96kHz의 샘플률로 판매된다. 영국 린 레코드나 미국 HD트랙스에서 팔리는 192kHz 음원은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판매 곡수도 오디오, 가요 팬들의 갈증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욱이 이들 음원은 flac 파일이어서 이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전용 플레이어나 소프트웨어, 아니면 aiff 등으로 변환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도 번거롭다.
게다가 이 24비트 음원은 스마트폰이나 아이팟 같은 기존 mp3 플레이어에서는 재생이 안된다. 이들 기계가 16비트까지만 지원하기 때문이다. 결국 PC나 맥에서 플레이를 하거나, 국내외 전문회사가 출시한 고가의 24비트 음원 플레이어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과연 콘텐츠와 하드웨어 양쪽에서 이런 고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출혈을 견딜 만큼 고음원이 '확실한' 질적 차이를 보이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이 아주 시끄럽다.
한편 고품질 음원에 대한 갈증은 기존 방대한 CD 소장자들에게도 반가운 동아줄을 내렸다. CD 음원을 무손실 압축한 애플무손실파일(ALAC)이나 AIFF파일로 리핑하는 것. 기존 mp3보다는 용량이 몇 배, 몇 십 배 크지만, 어차피 음원의 용량문제는 하드디스크 가격의 하락과 대용량 NAS 등의 보급으로 간단히 해결됐다. 전체 정보량을 비교해 봐도 CD 음원과 ALAC, AIFF 파일의 차이는 크지 않다. 물론 CD트랜스포트와 내외장 DAC, 아날로그 출력단 등 CD플레이어의 성능이 받쳐준다면 '아직' CD의 섬세함과 음악성은 이들 무손실 파일보다 훨씬 앞선다는 주장도 거세다.
어쨌든 이런 고품질 음원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국내 가요신과 가요시장(특히 음원차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런 '고급'에 눈을 뜬(귀를 연) 소비자들은 국내 음원사이트를 건너 뛰어 외국 HD트랙스(팝 가요)나 린레코드(클래식 재즈) 사이트를 헤매고 다닌다. 이들에게 한 곡당 몇 천원 정도는 훗날 귀로 보상을 받거나 플라시보 효과로 심리적 위안을 얻는 등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기회비용에 불과하다. 그런데 만약 외국 고품질 음원 유통사가 국내에 상륙, 별도 판매 사이트를 통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다운로드를 시작한다면? 1970, 80년대 국내를 휩쓸었던 영미 팝 열풍이 재연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국내 가요 제작자 입장에서도 이런 고품질 음원에 대한 수요는 새로운 시장 창출의 키워드일 수도 있다. 어차피 스튜디오에서 디지털 녹음된 원음(마스터테이프)은 24비트에 최대 384kHz니까 간단히 다운사이징시키면 된다. 비용 대비 수익 효과가 매우 크다는 얘기다. 물론 고려할 점도 많다. 이같은 고품질 음원을 '많은' 대중들이 심리적 저항없이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할 것인가, 기존 mp3에 최적화한 다운사이징 과정을 재조정하는 것에 따른 추가비용은 어떻게 만회할 것인가, 이러한 24비트 음원을 재생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과연 2,3년내 대중화할 수 있을까 등등.
변수도 많고, 논란도 많은 고품질 음원이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변수 헤아리고, 논란 따지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이, 고품질 음원에 대한 열렬한 수요와 공급은 특히 영미 팝시장쪽에서 이미 시작됐다는 것. 이러다 국내에서도 절대 영향력을 행사하는 애플의 아이튠즈가 24비트 음원 판매를 시작하고, 이를 국내에서도 유통시킨다면? 그리고 그 특유의 미니멀한 디자인과 성능으로 무장한 24비트 음원 플레이어를 전격 탄생시킨다면? 국내 가요제작사는 물론 아이튠즈와 겨뤄야할 국내 음원사이트도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