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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서극 감독을 만났다.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을 제작하고, '동방불패'와 '황비홍'을 만들어낸 홍콩영화의 레전드 아닌가.
마침 서극 감독은 그해 12월 무협영화 '용문비갑'을 3D로 내놓으려 하고 있었다.
서극 감독은 "일부 3D영화가 미흡한 것을 보고 혹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해 한국에선 3D영화 '7광구'가 혹평을 받았으며, 3D에로영화 '나탈리'가 튀어나오는 가슴 외엔 아무 것도 없다는 비난을 받았던 뒤였다.
서극 감독은 "할리우드가 아닌 로컬에서 만들어지는 3D영화를 응원해야 한다"며 "관객의 선택이긴 하지만 소규모 자본으로 3D를 만드는 시도를 응원해야 계속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할리우드에선 캐릭터와 이야기가 모자란 점이 있어도 엄청난 자본과 기술로 3D영화를 만들어 부족한 점을 보충할 수 있지만 비 할리우드 지역에서 3D영화를 만들 땐 돈과 시간이 모두 부족하기 때문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 부족한 면이 느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해 여름 '7광구'의 김지훈 감독이 "돈도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전쟁하듯이 3D를 만들어낸 스태프의 공은 잊지 말아 달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모자란 만듦새를 지적하면서도 도전은 응원하고 격려했어야 했던 게 아닌 가 반성했다.
2년이 흘렀다. 17일 한국최초 풀3D 영화 '미스터고'가 개봉했다.
사실 서극 감독을 만났을 무렵 부산에서 김용화 감독과도 마주쳤다. 당시 김용화 감독은 부산에서 중국 화이브라더스 대표와 만나 '미스터고' 세부 투자사항을 논의 중이었다. '미스터고' 주인공 서교도 이 때 김용화 감독과 처음 만났었다.
김용화 감독은 언제나 그랬듯 씩씩했다. 불안함이 없을 리 없지만 그는 미래의 청사진을 특유의 달변으로 쏟아냈다. 하정우가 그랬던가. 이효리가 10분 만에 남자를 꼬시면 김용화 감독은 30분만에 말로 꼬실 수 있다고. 오죽하면 감독이 안됐으면 신흥종교 교주가 됐을 것이란 소리를 들을까. 다른 점이 있다면 김용화 감독은 자신이 뱉은 소리를 현실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미스터고'도 그의 말로 시작했다. 투자배급사 쇼박스를 꼬셨다. 일단 풀3D 카메라 장비를 쇼박스 돈으로 샀다. 고릴라는 CG로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면서. 한쪽에선 풀3D 카메라로 영화촬영기법을 익히는 동시에 한쪽에선 CG로 고릴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3D도 그렇고, 고릴라를 만들어내는 것도 그렇고 노하우가 쌓인 게 없으니 맨 땅에 헤딩하기였다.
김용화 감독은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로 번 돈을 몽땅 쏟아 부어 VFX회사를 차렸다.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일단 뽑아서 CG로 고릴라를 만들라고 했다. CG로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게 불과 물, 그리고 털이라고 했던가. CG하는 사람을 죽이려면 킹콩이 쓰나미를 이겨내고 불이 타오르는 빌딩에 오르는 영화를 만들라고 했다.
맨 땅에 헤딩을 해서 결국 '미스터고'는 만들어졌다.
모든 게 도전이지만 '미스터고'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영화시장에도 도전이다. 중국은 외국영화를 상영할 때 통상 분장제와 매단제 방식을 쓴다. 분장제는 중국 배급사와 외국영화사가 중국 내 수입을 나눠 갖는 방식이고, 매단제는 중국에서 모든 수입을 갖는다.
그동안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영화는 모두 매단제였다. 중국에서 얼마를 벌었든 다 중국 몫이었다. 분장제는 모두 할리우드 영화 몫이다. 할리우드는 중국에서 쓰는 모든 마케팅 비용을 자신들이 감당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인데도 중국시장에 철저히 공을 들이고 있다. 1년에 20편만 허용했던 중국당국을 설득해 1년에 32편으로 늘렸다. 그만큼 중국 시장이 매력적이란 뜻이다.
'미스터고'는 분장제도 매단제도 아닌 중국영화로 현지에서 개봉한다. 한중합작이라는 영화들은 많았지만 중국에서 자국영화로 '미스터고'처럼 대규모 개봉하는 영화는 처음이다.
바로 이 점이 '미스터고'의 장점이자 한계일 수 있다.
'미스터고'는 중국 여배우가 주인공이다. 중국에서 시작해 중국에서 끝난다. 야구란 집으로 돌아오는(홈런) 운동이란 점을 강조한다. 야구 룰을 잘 모르는 중국관객을 위해 야구경기를 통해 드라마를 쌓는 걸 최대한 단순화했다. '국가대표'와 다른 점이다. 문화가 다른 중국관객을 웃고 울리려 말로 풀어내기 보단 슬랩스틱과 상황을 강조했다. 이야기에 국적이 있다면 '미스터고'는 중국 국적에 가깝다.
김용화 감독은 중국 관객을 잡기 위한 이런 방식을 택하는 한편 한국관객을 사로잡으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김희원과 김정은, 오다기리 조 등이 벌이는 개인기도 곳곳에 지뢰처럼 심어 놨다. 말하자면 김용화 감독은 '미스터고'를 통해 한국과 중국 관객,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모험을 했다는 뜻이다. 3D는 3D대로, 고릴라를 CG로 만드는 건 만드는 대로 하는 동시에 관객과 만나는 것도 다 모험이다.
김용화 감독의 이 모험은 통할까. 내용물의 결과는 만족스럽다. 풀3D는 웬만한 할리우드 3D영화보다 뛰어나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곳곳에서 움찔움찔 거릴 것이다. 촌스럽다고? 튀어나오는 공은 중국 측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원래 영화란 게 놀라운 볼거리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미스터고'는 영화관에서만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준다.
3D기술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의미보단 재미인 법. '미스터고'는 남다른 울림과 재미를 답보했다. 김용화 감독은 보편적인 이야기에 장점이 뛰어난 감독이다. 더 지독하지 않고 더 울리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평가는 덜 받지만 가장 관객의 눈높이와 가까운 감독 중 하나다. '미스터고'도 마찬가지다.
김용화 감독은 고릴라를 일부러 덜 의인화시켰다. 그건 이 고릴라가 알고 보면 우리네 아버지와 닮았다는 걸 관객이 마지막에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고릴라에게서 노예가 아니라 아버지를 봤다면 '미스터고'는 성공한 것이다.
서극 감독은 "할리우드는 판타지, SF 등 다양한 장르에서 3D를 활용한다"며 "아시아는 아시아의 문화로 새로운 이야기에 3D를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양은 서양의 상상력을, 아시아는 아시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아시아의 이야기 풍부함이 서양보다 훨씬 깊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스터고'는 서극 감독에 화답한 영화기도 하다. '미스터고'의 도전은 응원해야 마땅하다. 고릴라를 조련시켜서 만든 영화가 아니다. '미스터고'는 재미가 전부다. 의미는 덤이다.
과연 관객들이 '미스터고'를 즐길지, 아니면 냉정한 평가를 내릴지, 관객은 언제나 옳지는 않지만 언제나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