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기, Natural Born Actress (인터뷰)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천지 역 김향기 인터뷰

안이슬 기자 /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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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향기/사진=이동훈 기자
배우 김향기/사진=이동훈 기자


인터뷰를 하기로 한 카페의 문을 열었다. 마침 사진을 찍기 위해 밖으로 나오던 김김향기(14)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목소리가 밝았다. 예쁘게 메이크업을 한 얼굴을 보고 칭찬하자 그는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천지처럼 해사하게.

'우아한 거짓말' 개봉을 앞두고 김향기를 만났다. 그는 '우아한 거짓말'에서 누구에게도 말 못한 아픔을 간직한 채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소녀 천지를 연기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우아한 거짓말'의 천지는 조금은 남달랐다.


"영화를 보고 저도 울었어요. 원래 영화를 찍으면 빨리 잊으려고 하는 편인데 막상 보고 나니까 슬프더라고요. 지금까지 한 역할들은 보통 밝고, 많이 웃는 아이였는데 천지는 겉으로 표현을 잘 안하고 내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아이었어요. 지금까지 역할들 보다 어른스러웠죠. 생각이 많았던 작품이에요."

아픔이 있는 역할이었지만 그럼에도 현장은 언제나 즐거웠다. 일부러 마음을 무겁게 가지지 않으려 노력한 부분도 물론 있었다. 워낙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던 고아성과 자매로 출연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김향기는 처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회상했다.

"처음 만났을 때가 제 생일이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이 아성언니 생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어색하지 않았냐고요? 둘 다 어찌할 줄 몰랐어요(웃음). 저희 엄마가 '괴물'을 보시고 아성언니를 굉장히 좋아하셔서 또 남달랐죠. 주변에서 항상 닮았다고들 하셨는데 이렇게 만나니 신기하기도 하고 좋았어요."


배우 김향기/사진=이동훈 기자
배우 김향기/사진=이동훈 기자


'우아한 거짓말' 속 천지는 같은 반 친구들의 은근한 따돌림에 힘겨워하면서도 엄마와 언니에게는 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아이다. 딱 자신 또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직접 겪어본 적이 없으니 김향기에게도 천지는 생각할 것이 많은 캐릭터였다.

"제 주변에는 천지 같은 사연이 있는 친구는 없었어요. 항상 뉴스로만 보고 학교에서 보여주는 교육용 영상만 봐서 그렇게 심각하다고 느끼지 못했어요. 이 작품을 하면서 그 아이가 되어보니 알 것 같았어요. 가해자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일들이 피해자에게는 크게 다가올 수 있구나 느꼈죠. 저 정도 결심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그래서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같이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영화에서는 힘든 마음을 가지고도 엄마 앞에서는 밝게 웃는 아이지만 실제 김향기는 그렇게 살가운 딸은 아니다. 그래도 '우아한 거짓말'을 보고 가족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더 애틋해졌다.

"평소에는 엄마한테 대답도 짧게 하고 시크한 편이예요. 천지처럼 부모님이니까 더 크게 받아들이고 크게 걱정하실까봐 말 못하는 것도 많죠. 영화를 보고 나서 성격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얘기도 하고 가족 얘기도 들어줘야할 것 같았어요. 생각은 하고 있는데 실천은...노력하고 있어요(웃음)."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장난도 잘치고 명랑하면서 집에서는 말수가 적어지는 이유가 뭘까. 14살에 접어든 김향기, 혹시 사춘기가 온 것은 아닐까?

"사춘기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집에서 말을 잘 안하는 걸 보고 엄마가 사춘기냐고 하시긴 해요. 속상하셨나 봐요. 대답도 짧고 말도 잘 안하니까. 오빠가 사춘기가 왔을 때를 지켜봤기 때문에 '나는 안 그래야지'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물론 마음먹은 대로 안될 때도 있지만요."

한살 터울의 오빠와 지금은 약간 어색함이 감돌지만 사실 김향기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오빠가 계기였다. 어린 시절 어린이 모델로 활동하던 오빠를 따라 현장을 다니다보니 김향기도 자연스럽게 광고를 찍고, 아역배우의 인생을 살게 됐다.

"제가 워낙 어리니까 엄마가 오빠가 촬영할 때 저를 데리고 가셨어요. 자연스럽게 저도 광고를 찍게 됐죠. 2,3년 전만해도 하루에 한 번씩은 오빠랑 꼭 싸웠는데 오빠가 사춘기에 접어드니까 혼자 방에 들어가 있고 말을 잘 안하는 거예요. 저도 딱히 먼저 말 걸거나 하지 않았어요. '우아한 거짓말'을 보고 나서 오빠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궁금하고요."

배우 김향기/사진=이동훈 기자
배우 김향기/사진=이동훈 기자


겨우 6살이던 찍은 '마음이'부터 최근작인 '우아한 거짓말'까지, 김향기의 필모그래피에는 그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화면에서 보는 기분을 어떨까. 김향기는 마냥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정말 부끄러워요. 지나고 보니 부족한 점도 많이 보이고요. 저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연기했지? 그런 생각도 들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연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잘 안나요(웃음). 예전 모습을 보면 제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아니라 다른 아이가 연기를 한 걸 보는 기분도 들고요."

어린 시절 함께했던 배우들을 지켜보는 기분은 어떨까. '마음이'에서 오빠 동생으로 호흡을 맞췄던 유승호는 벌써 어엿한 국군 장병이 되어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승호오빠는 이미 군대에 갔네요(웃음). 저는 별로 신기하지 않은데 저희 가족들은 승호가 벌써 어른이 됐냐고 놀라시더라고요. 저는 사실 별 생각이 없어요. 그냥 '멋지다' 정도? 다들 한살 씩 먹어가는 거니까. 서로 열심히 하면서 더 멋진 배우가 될 수 있도록 하다보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향기의 온 마음과 생각은 연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마지막에는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즐거운 일도, 고민도 모두 연기에서 비롯됐다. 마치 연기를 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처럼.

"제일 재미있는 것도 연기고, 제일 고민 되는 것도 연기예요. 좋아하는 만큼 고민도 크고, 더 잘하고 싶고. 잘하고 싶어서 또 고민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제 감정을 함께 느끼고, 생각해주시고, 같이 울고 웃는 것이 좋아요."

"학생이니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고, 배우니까 연기도 더 고민하게 되요. 제 꿈이고, 좋아하는 일이니까 더 노력해야할 것 같아요. 영어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키 크기 위해 스트레칭도 열심히 하고 있고. 여러 가지 많네요(웃음).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잘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연기를 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는 김향기를 누가 이길 수 있을까. 수많은 아역 중 한 명이 아니라 대체불가의 배우로 발돋움 하고 있는 김향기의 내일이 더욱 궁금하다.

안이슬 기자 drunken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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