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화' 차승민 "광대되어 신명나게 놀고 싶어요"(인터뷰)

배우 차승민/사진=이동훈 기자

아역배우 출신 차승민(26)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아빠의 손을 잡고 연기학원에 등록한 것을 인연으로 SBS 소설극장 '재회'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던 차승민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 연기자가 되어 오는 11월 6일 '지옥화'를 선보인다.

성인이 된 후 첫 작품인 '지옥화'의 개봉을 앞둔 차승민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의 답은 "속 시원하다"였다. 4년 만에 개봉하게 된 작품이니 그럴 만도 했다. '지옥화'의 개봉도, 연기자로 살겠다는 꿈도 포기할 뻔 했던 차승민에게 이번 기회는 다시 마음을 잡는 포석이 됐다.


"개봉에 4년이나 걸렸어요. 안될 줄 알고 포기했었는데 드디어 개봉을 한다니 속이 시원해요. 4년 전 연기를 보는 기분이요? 정말 별로예요. 왜 저렇게 밖에 못했나 싶은 생각 때문에 보기 굉장히 힘들었어요. 작품에는 애정이 가는데 제 자신에게는 애정이 안 가요."

'지옥화'는 소재부터 파격적이다. 여신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쫓겨난 파계승이 욕망에 의해 우연히 만난 여인 연화에게 갚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고, 그 가족에게 용서를 받기 위해 찾아간 필리핀에서 연화의 쌍둥이 동생 연서를 만나 또 다시 연정을 품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소재도 소재지만 워낙 표현이 거칠기로 유명한 이상우 감독의 작품이니 고민이 많았을 터, 차승민은 '지옥화'의 어떤 매력에 끌렸을까?

"감독님 영화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어요. 저도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충격적이었는데 끝까지 보니 업에 대한 이야기더라고요. 제가 불교신자예요. 그래서 더 끌렸던 것 같아요. 1인 2역도 물론 매력 있었어요. 난 불자니까 이런 이야기도 괜찮겠다 싶었죠. 아무래도 어릴 때라 무턱대도 달려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배우 차승민/사진=이동훈 기자

1인 2역을 소화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자주인공 원태희와 여러 차례 정사신을 소화해야 했다. 만 스물둘 나이의 배우에게는 쉽지 않는 촬영이었다.

"노출은 저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아직도 노출은 힘들다고 생각될 만큼 어렵고, 어떻게 보면 그때의 제가 참 용감했던 것 같아요. 물론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그만큼 컸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고요. 제가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 됐대요. 저도 놀랐어요. 왜 저를 선택했는지 감독님에게 여쭤봤더니 '가슴이 작아보여서'라고 하시더라고요. 작품이 워낙 강렬하니까 여배우의 가슴에 집중이 되는 것이 싫으셨대요. 너무 풍만한 여배우가 연기를 하면 외설로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차승민의 필모그래피에는 '지옥화' 이후 작품이 없다. 최근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전부다. '지옥화'의 개봉을 기다리며 현장이 아닌 세상에서 경험을 쌓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정작 촬영장을 떠나있으니 현장감을 잃었다는 걸 실감했다.

"'지옥화' 이후에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조정석 선배님 뒤에서 어깨 연기를 하는 정도였어요. 사실 몸이 많이 근질근질했는데 막상 현장에 나가니 얼어버렸어요. 사실 영화라는 건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밖에서 경험을 쌓고, 사람 사는 것을 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중압감 때문에 제대로 놀지를 못 하는구나 깨달았죠. 그 이후에는 어떻게든 현장에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이제는 주연, 단역 가리지 않고 현장 경험을 쌓고 싶다는 차승민에게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를 물었다. 너무 센 작품을 해서 힘들었다더니 막상 탐나는 역할은 사이코패스처럼 강한 캐릭터란다.

"사이코패스 연기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절절하고 처절하고, 진득한 멜로도요. 저는 관객들이 극장에 위로를 받으러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평범하지 않은 극단적인 모습으로 위로를 해드리고 싶어요. 예쁜 역할을 하는 분들은 너무나 많잖아요. 전 관심 없어요."

배우 차승민/사진=이동훈 기자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광대'라고 표현했다. 소위 연예인을 낮추어 부르는 '딴따라'라는 말도 차승민은 거침없이 사용했다. 차승민은 스스로 광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신명나게 놀아주는 광대.

"어느 날 양재역에 앉아서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다들 피곤에 지쳐서 걷고 있었어요. 순간 저들이 조금만 틈을 내어 준다면 제가 광대가 되어서 신명나게 놀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게는 광대라는 말이 참 와 닿아요. 언제든 위로 받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그 때 제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누구의 앞이든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내 인생의 슬픔도 언제든 끄집어내어 캐릭터에 입혀서 꽃을 피우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계속해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차승민에게 영화의 매력을 물었다. 차승민은 "영화는 아무것도 없는 '영(0)'에서 꽃(花)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차승민에게 지금이 바로 배우로서 초석을 다지는 시기다. 아직은 0에 가깝지만 꽃으로 피어나기 위한 준비를 말이다.

"올해는 기본기를 다지고 싶어요. 제일 큰 건 개봉을 하게 되니까 '지옥화'가 잘 됐으면 좋겠고요. 다시는 연기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바람피우지 말아야죠. 지금까지 겪어온 것들을 신명나게 써드릴 테니 감독님들, 선택 좀 해주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