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을 버텨낸 남대중 감독의 '위대한 소원'은? (인터뷰)①

[★리포트]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4.1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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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중 감독/사진=홍봉진 기자


영화 감독이 된다는 건, 그 중에서 성공한 영화 감독이 된다는 건, 도박이다. 로또 당첨 확률보다 결코 높지 않다. 남대중 감독. 한국 나이로 올해 마흔. 그는 이 도박 같은 삶을 위해 안정적일 수 있는 삶을 버렸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근처 약대를 다녔다. 다시 서울에 와서 Y대 경영학과를 다녔다. 다시 대구에 있는 국립대 경영학과를 다녔다. 방황했단 뜻이다. 원래 연극영화과에 들어가 영화를 연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씨 집안 종손에,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터라,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완강했다. 제대하고 28살에 고시 준비를 했다. 행정고시 1차에 합격했다. 그리고 가출했다. 영화를 안 하고, 죽은 듯이 살 수는 없었다.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졌던 영화사들을 전전했다. 끝도 없을 것 같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위대한 소원'은 수없이 썼던 시나리오 중 처음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자기 손으로 만든 첫 영화이기도 하다.

21일 개봉하는 '위대한 소원'은 루게릭병에 걸린 친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려는 두 소년의 엉뚱한 행동들을 그린 영화다. 친구의 소원이란 죽기 전 한 번이라도 섹스를 해보고 싶다는 것. 자칫 설정만으로 불쾌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위대한 소원'을 절묘하게 줄타기를 했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가장 웃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남대중의 무도한 도전은, 일단 첫 발은 성공적이다.


-설정이 영화 '내 친구의 소원'과 비슷한데. '50대 50' 과도 비슷하고.

▶영화를 다 찍고 나서 누가 그 이야기를 해서 '내 친구의 소원'을 봤다. '50대 50'은 '위대한 소원' 주인공 류덕환이 추천해서 봤다. 설정은 비슷할 수 있지만 다르더라. 버킷리스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새로운 건 아니다.

'위대한 소원' 시놉시스는 4~5년전 쯤 썼었다. 시나리오 작가로 다른 시나리오를 투자배급사 NEW랑 이야기하다가 다른 아이템은 없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위대한 소원'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그게 재밌다"며 써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재작년 여름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연출도 내가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썼었다. 그런데 연출을 시켜준다더라.

-데뷔작은, 적어도 자기가 쓴 시나리오 데뷔작은,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방향점이 보이는 법인데. 왜 휴먼코미디에 버킷리스트였나.

▶조심스럽긴 한데 이 시놉시스를 처음 쓴 계기가 친구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당시 버킷리스트와 관련된 시나리오를 많이 썼었다. 그렇다고 눈물을 쥐어 짜는 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죽음의 과정을 보여주지 않고, 추억하고 위로하며 유쾌하게 기억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위대한 소원'은 말하자면 각자의 자위로 시작해서 섹스로 진행된다. 가족과 친구들이 정말 그 친구가 원하는 것보단 각자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좋은 가족, 좋은 친구 역할을 하려다가 진짜 소원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로 바뀌어 가는데.

▶이 영화가 섹스코미디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휴먼코미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자의 시선이 구축돼야 했다. 그렇게 돼야 나중에 이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앞에 이야기가 다소 루즈하더라도 쌓여야만 결국 왜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원래 타협을 잘 하는 편인데 그 부분만은 타협을 안했다.

-만화 '슬램덩크'를 비롯해 영화 '달콤한 인생' 등 숱한 패러디가 적재적소에 배치돼 있는데.

▶굳이 웃음 때문이 아니더라도 관객이 이 이야기를 쉽고 편하게 다가가게 하는데 패러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섹스를 위해 여자를 산다. 또는 구한다. 불쾌할 수 있는 설정인데. 루게릭 병 환자의 마지막 소원이란 것도 그렇고. 이런 설정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균형을 잡으려 애썼던 것 같은데.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하다. 그저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비난개그를 안 좋아한다. 너무 불편한다. 여성, 장애, 루게릭병 환자가 소재라 더욱 신중하게 접근했다. 비하나 폄하가 아니도록 모니터도 많이 했고, 인터뷰도 많이 했다. 루게릭병 환자들도 많이 만났는데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그것만은 힘이 넘친다는 분들이 상당하시더라. 그럼에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이야기 안에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

-소원을 들어주려 애쓰는 친구 역의 안재홍이 아주 탁월했는데. 모든 웃음을 담당했고. 애드리브가 어디까지인지.

▶사전 합의 없는 애드리브는 없었다. 상황이 우스운 것이지 이들이 우스운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눠서 사전에 합의해서 진행했다. 안재홍이 정말 잘 살려줬다. 안재홍 아버지로 출연한 이한위 선배도 대사 그대로 해주셨다. 그런데 정말 잘 살려줬다.

배우들이 다들 워낙 베테랑이어서 그런지 척 하면 탁 하고 바로 이해하더라. 때로는 내가 너무 관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연기를 시연까지 했었으니깐.

-뉴스를 코미디로 반복 활용한 게 인상적이었는데. 우지원의 등장이랄지. 농구와 루게릭병을 엮은 것도 박승일 선수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뉴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라기 보단 그 상황에 맞는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래야 공감이 더 간다고 생각했다. 농구와 루게릭병을 엮은 건 박승일 선수 때문이 아니다. 세 친구가 어릴 적부터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 농구일 것이라 생각해서 만든 설정이었다.

-루게릭병 환자로 나온 류덕환 극 중 이름이 고환인데. 마침 이런 설정에 이름까지 고환이다. 작정한 건 아닌가.

▶아니다.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실제 친구 이름이 고환이다. 시나리오를 많이 쓰다보니 극 중 이름을 친구 이름들에서 많이 가져다 썼다. 앞으론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의 설정이 불쾌할 수도 있는데 그 불쾌함을 덮은 건 이들이 스스로를 '병신'이라며 이른바 '병신짓'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스버킷에 대한 것도 그렇고 자기반성이 바탕에 깔려 있는데.

▶그렇다. 아이스버킷 장면은 내 반성이기도 하다. 나도 당시 아이스버킷을 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 마음은 분명 순수했지만 문득 그 아픔을 내 놀이로만 여긴 게 아니였을까란 생각이 들더라. 다들 좋은 마음으로 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고. 그런데 놀이로만 받아들인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더라.

-마지막에 충분히 울릴 수 있었다. 충분히 울릴 수 있는 데도 담담하게 간 이유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신파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고 싶었다. 많이 울리라는 지적들이 있었는데 이것만은 지키고 싶었다. 그게 이 영화의 맥락과 맞다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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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중 감독/사진=홍봉진 기자


-고환은 정말 했을까.

▶안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이란 원래 그런 허풍을 떠는 법이잖나.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척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아빠까지 나서서 마침내 찾은 여성이 결국 돈을 돌려주는데. 정치적인 올바름 때문인가. 거기에 웃음 코드도 넣었고.

▶유럽에는 그런 일을 해주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한국에도 음으로 그런 일을 해주는 모임이 있다는데 쉽지 않다더라. 원래 에필로그에 이 여인이 병원을 나오면서 등에 날개가 나오는 설정도 있었다. 시나리오부터 그 여인을 '여신'이라고 썼었다. 그런데 맥락에 맞지 않는 것 같아 편집했다.

-친구들과 아빠도 동참하는데 엄마는 모르는 것처럼 나온다. 정말 몰랐을까. 알았다면 영화 안에서 엄마도 알고 있었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으로 다뤄져야 했었을텐데.

▶사실 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부분을 영화 안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건 내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

-차기작은.

▶내가 쓴 몇몇 시나리오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그걸 내가 연출할 것 같진 않고, 다른 영화 아이템들이 있다. 버킷리스트도 있고. 인생영화가 '집으로'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아버지는 '위대한 소원'을 보실까.

▶동생과 대구에서 보신다고 하시더라. 그 뭐랄까, 아버지는 "서울은 머니까 대구서 보마"라고 하신다. 나도 속은 안 그렇지만 "예, 머니깐 대구에서 보세요"라고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란 그런 것 같다.

-도전한 지 12년 만에 영화를 만들었다. 다른 건 안 했나.

▶다들 많이 고생하면서 영화를 한다. 나만 특별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다른 건 안 하고 오직 시나리오만 썼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길을 가기엔 이미 나이도 많이 먹었고. 여자친구도 없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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