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 대표 "'부산행' 그리고 연상호, 의구심은 없었다"(인터뷰)②

[빅4특집]'부산행'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7.0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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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 제작사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 / 사진=이기범 기자
영화 '부산행' 제작사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 / 사진=이기범 기자


여름 빅4의 첫 문을 여는 '부산행'(감독 연상호)의 지금이 있기까지는 결단의 연속이었다.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의 스타감독 연상호가 처음으로 연출한 실사 영화, 그것도 총제작비 115억 원에 이르는 대형 재난영화, 한국 상업영화로는 첫 도전이나 다름없는 장르…. 이전에 없던 도전은 곧 넘어야 할 관문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부산행'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모든 것을 함께 한 영화사 레드피터의 이동하(47) 대표는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안하지 않았다",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았다", "의구심은 한 번도 없었다."

이 듬직하고 확신에 찬 영화 제작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영화협회에 몸담았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영화와 철학을 공부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유학 시절 변혁 감독의 '인터뷰'의 현지 코디네이터로 처음 상업영화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고,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를 시작으로 이창동 감독의 '시', 장준환 감독의 '화이', 이윤기 감독의 '남과 여' 등의 프로듀서를 거쳤다. '무서운 이야기' 1편 중 '앰뷸런스', 박민영 주연의 '고양이' 등 호러 장르 영화에도 참여했다.


이번 '부산행'은 이 대표가 차린 영화사 레드피터의 창립작이다. 카프카의 소설 '빨간 피터의 고백'에 등장하는, 자신이 인간인 줄 착각했던 유인원에게서 회사 이름을 땄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해 보이고 싶었다. 좀비, 아니 감염자들의 영화이자 재난 블록버스터인 '부산행'에도 사람 사는 이야기, 강렬한 드라마가 힘 있게 담겨 있다고 이동하 대표는 강조했다. 그가 이 영화로 장르 팬을 넘어선 대중의 호응을 기대하는 이유다.

-'부산행'은 독립 애니메이션 계 스타이던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다. 어떤 점에서 실사화를 추진해야겠다고 판단했나.

▶연상호 감독은 훌륭한 애니메이터지만,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은 극영화적 서사, 캐릭터에 기반을 둔 게 많다. 그런 생각을 저만 한 게 아니다. 첫 장편인 '돼지의 왕'을 두고도 많은 프로듀서들이 실사화 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을 정도로 많은 실사영화 관계자들이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부산행'이란 드라마가 주어진다면 본인이 잘 다룰 수 있는 소재와 이야기로 폭발력 있는 실사영화 감독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부산행'의 출발은 어디서부터였나.

▶연상호 감독과는 동네도 비슷해 자주 만났다. 주말마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이야기를 하곤 했다. 실사화 이야기를 하던 차에 연 감독이 이런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와 아들이 KTX 첫차를 타고 가는데 바이러스에 감염된 가출소녀 하나가 타는 이야기 어떨 것 같아요?' 좋다 하면서도 이게 실사가 되려나 했던 것 같다. 저는 '고양이'로 NEW와 인연이 있었고, 마침 연 감독에게 관심이 있던 NEW가 기획개발을 해보자 지지했다. 프리퀄인 '서울역'도 있었지만 실사로 하기엔 고민이 됐고 연상호 감독 본인도 애니메이션을 더 염두에 두고 있었다. '화이'의 박주석 작가가 참여했고, 그렇게 '부산행'이 시작됐다.

사진='부산행' 포스터
사진='부산행' 포스터


-어림잡아 순제작비 80억 원의 대작을 실사감독을 처음 만드는 감독에게 맡긴다는 데 의구심은 없었나.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 감독은 종종 말했던 것 같다. '이런 상업영화를 더 잘 만들 사람이 있을 텐데 연출이 왜 나인지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나는 '연 감독이 아니면 이 시나리오가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이즈의 문제가 아니다. 프리퀄 격인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함께 출발했고, 연상호 감독만이 풀 수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가 있었다.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하나로 패키징 되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또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고 한정된 공간의 드라마가 중요한데, 리얼 액션과 좀비를 잘 아는 감독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측면에서 연상호 감독만큼 잘 할 사람이 있을까. 무엇보다 NEW가 연상호 감독을 신뢰해줬다. 사실 투자자가 우려할 수 있는 부분이다.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결단이 컸다. 그래서 가능했다.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히 빨리빨리 촬영이 진행됐다고 하더라. 배우들이 불안했을 정도였다고. 제작자로서 불안하지 않았나.

▶맞다. 하지만 배우들도 어느 순간부터 '믿고 가도 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더라.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저는 불안하지 않았다. 다른 감독과는 영화적으로도 달랐고, 그렇다고 빨리 찍어 오케이 하는 컷이 이상하지도 않았다. 추가 컷을 찍으면서 소스 차원에서 다른 포인트를 찍어내는 게 의미가 없었다. 물론 몇 군데는 더 시간을 들여도 됐겠지만, 감독 자체가 결정한 후에는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고, 저 역시 존중하는 편이었다. 더욱이 연 감독은 빨리 촬영을 하긴 했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바뀌는 게 있으면 미리 와서 상의했다. 그런 점에서 크게 신뢰가 갔다. 현장에서 그런 일은 있었다.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밀양', '시', '화이' 등의 제작자)가 이창동 감독님과 부산 촬영장에 내려오셔서 (빠른 촬영 속도를) 보시곤 '속이 다 후련하다'고, '세상에 연상호 같은 감독이 다 있느냐'고 한마디 하셨다. 이창동 감독님이 째려보셨다.(웃음)

-세트와 CG의 비중이 상당하다. 어쩌면 감독이 상상하는 걸 구현하는 프로듀서의 몫이 컸을 텐데 어떻게 설계했나.

▶프리 프로덕션의 대부분이 거기에 집중돼 있었다. KTX 섭외 상황도 긴밀하게 연관돼 있어서 어디까지 세트로 하고 어디까지를 실사로 찍을지 고민했다. KTX 측에서 최대한 잘 진행될 수 있게 협조해 주셨다. 당초엔 열차 한 대 전세를 내서 비운행 구간을 왔다갔다 해보자 생각도 했는데, 운행비만 내도 너무 비싸서 효율이 떨어졌다. 그래서 세트 등 여러 가지를 동시에 시작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메인 스태프보다 먼저 VFX쪽 팀을 정하고, 이른바 감염자라 불리는 좀비 트레이너도 선정했다. '무서운 이야기-앰뷸런스'를 하며 느낀 게 이게 보통 액션팀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기차 세트는 좁아서 카메라의 동선, 움직임을 개발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기본적으로 좁은 공간을 잘 쓰는 촬영감독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액션이나 무빙에 있어서 이형덕 촬영감독과 좁은 공간을 콘셉트화 하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공간별 액션은 허명행 감독과 논의하며 우선순위를 두고 플랜을 짰다. 연 감독은 공간의 사이즈보다는 그 속의 드라마를 잘 잡아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 감독이 실사영화가 이번이 처음임에도 두 분들에 대한 신뢰가 크다.

영화 '부산행' 제작사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 / 사진=이기범 기자
영화 '부산행' 제작사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 / 사진=이기범 기자


-감염자라고 불리고 있지만 한국 상업영화가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첫 좀비물이란 점에서도 기대가 높다. 동시에 부담이기도 할 텐데.

▶'무서운 이야기-앰뷸런스'로 먼저 다뤄보고 나니 당시 김곡 김선 감독을 비롯해 젊은 감독들, 웹툰 세대들이 다양한 장르를 즐기고 있고 팬층도 두터워지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도 여전히 B급 호러의 하위장르처럼 여겨지더라. 다뤄진다 해도 제작비 20억 아래의 학원물 시나리오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재난물 정도까진 확장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월드워Z'처럼 할 수는 없으니까 그 안에 우리 정서를 넣을 수 있을 거라 봤다. 이전에 제가 했던 영화에 비해서는 예산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감독이 쉽게 예산을 오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동시에 예산 이상을 보여주며 차별화할 수 있다고 봤다.

-처음 선보이는 장르를 커버할 수 있는 '부산행'만의 안전장치가 있다면 뭘까.

▶드라마 라인이다. 멋진 화면을 만드는 건 다른 감독들도 다른 식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해 보이는 것 같지만 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힘있게 몰고가는 건 연상호 감독밖에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전의 애니메이션 역시 그랬다. 그 때문에 기본적인 확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폭넓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만들었다.

-영화가 먼저 공개된 칸국제영화제에서는 '설국열차' 더하기 '월드워Z'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편 비슷한 그림에 대한 우려는 안 했나.

▶전혀 없었다. 이야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구성적으로 비슷한 거라면 공간 대 공간을 이동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긴 하다. 허나 '부산행'은 봉준호 감독님이 '설국열차'에서 보여주려 했던 이야기나 주제와 완전히 다르다. 그저 기차 밖에 LED를 설치해야 하나 합성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그쪽은 기차 안 구조나 외부를 어떻게 보여줬는지 정도만 참고했다. 칸에서 '설국열차'나 '월드워Z'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다. 외국 회사 분들이 자국에서 만들었다면 순제작비가 적어도 400억~500억은 들었을 거라 하시더라. 그건 비단 우리 영화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모든 영화들이 해외에서 볼 때는 다 그럴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연상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칸에서 연상호 감독이 간담회를 하며 '부산행'은 세월호 사건이 나기 전에 시나리오가 나왔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세월호 사건 직후에 초고가 나왔다.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갔더니 '서울역'이고 '부산행'이고 세월호든 메르스든 한국의 사회적 이슈를 은유하고 있는 거냐는 질문을 하더라. 영화를 만들다 보면 그 시대의 이슈, 동시대성이 안 담길 수가 없다. 의식하고 만들려 한 건 아니지만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관객이 텍스트의 층을 원하는 대로 볼 수 있을 거고 오히려 더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거라 본다.

사진='부산행' 스틸컷
사진='부산행' 스틸컷


-어쩌면 사람보다 사건이 보이는 영화다. 마동석이 맡은 상화 역이 더 보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여곡절 끝에 공유가 주인공 석우 역에 캐스팅됐다.

▶기본 플롯을 끌고 가는 서사, 사건이 강력하게 드러나 보이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렇기에 좋은 배우가 들어가면 시나리오 상 구현하기 힘든 디테일이 발현될 거라고 생각했고, 충분히 배우들과 시너지를 낼 거라고 봤다.

지난 제작발표회가 끝나고 공유 배우와 캐스팅 당시 이야기를 했다. 그때 시나리오와 함께 '돼지의 왕', '사이비'의 시나리오를 건넸다. 이런 감독이 실사 영화를 하는데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공유 배우가 이틀 만에 감독을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정확하게 했다. '시나리오 상 제가 굳이 안 해도 되는 역할이고, 주인공이 안 보이는 영화일 수 있음에도 욕심이 난다'고. '내가 잘 안 드러나도 되고, 주인공이라고 돋보이지 않아도 되니,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먹먹한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장르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공유 배우가 그렇게 바로 하겠다고 한 뒤에 정말 큰 힘을 얻었다. 그 마음으로 극장에서 먹먹함을 줄 수 있는 작품인지를 고민하면서 잘 만드는 데 포커싱을 맞춰서 스태프와 투자사 모두가 집중할 수 있었다.

-정유미 역시 이전 작품에 비해서는 크지 않은 역할이다.

▶저희는 정유미 배우가 안 할 줄 알았다. 결단을 내려줘서 감사했다.

-프리퀄인 '서울역'이 이어 개봉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먹힐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라인을 설명할 수 있게 넣었다. 이 장르를 수용할 수 있는 층이 생각보다 두텁다고 본다. 그리고 리얼 타임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체험하듯 즐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단계에서 그걸 잇는 실사가 만들어지는 것 또한 새롭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한 감독이 두 가지 다른 메커니즘으로 관객을 만나며 서로 윈윈할 수 있다고 어필했다. '서울역'이 '부산행' 뒤로 가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지금은 서로 이해하고 있다. '서울역'에도 심플하지만 대단한 뭔가가 있다.(웃음)

영화 '부산행' 제작사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 / 사진=이기범 기자
영화 '부산행' 제작사 이동하 레드피터 대표 / 사진=이기범 기자


-여름 시즌에 개봉하는 첫 기대작으로 빅4의 포문을 연다. 흥행을 얼마나 기대하나.

▶영화도 많고 더 지켜봐야겠다. 처음 시도하는 장르다 보니 확장력이 검증된 바 없어서 조심스러운 게 있다. '터널',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 잘되지 않겠나.

-프로듀서, 제작자로서 이전에 해오던 작품과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크게 달라 보인다.

▶'여행자'와 '시', '남과 여'도 했지만 공포영화 '고양이', '무서운 이야기-앰뷸런스'도 했고, '화이'도 했다. 인간의 감정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영화도 있지만 상업영화 틀 안의 장르화 된 드라마로도 그런 접근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조금 더 활성화된 장들이 열리면 '다크나이트'처럼 훌륭한 상업 장르영화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에서도, 작품적으로도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겠나. 저는 '부산행'도 그런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은 어떤 게 있나.

▶몇 가지 생각하고 있고 준비하는 것도 있다. 지금은 다들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다. 일단 '부산행'이 먼저 개봉하지만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있고, 이성강 감독의 '카이:거울호수의 전설'의 개봉이 곧장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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