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구 "'밀정' 송강호 눈 처음 봤을 때 기절할 뻔..진심 감사"(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6.09.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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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사진=임성균 기자
엄태구/사진=임성균 기자


엄태구(33). '잉투기'로 그를 발견하고 '차이나타운'으로 눈여겨 본 사람들이라면, '밀정'은 반가울 법 하다. '밀정'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그들을 쫓는 일본경찰의 암투를 그린 영화.

엄태구는 '밀정'에서 의열단을 쫓는 일본인 경찰 하시모토 역을 맡았다. 원래는 일본인 역할이지만, 출세를 위해 일찌감치 일본에 귀화한 역할로 바꿨다. 그 역을 노리던 배우들은 많았다. 송강호와 맞대결을 벌이고, 영화 절반에 긴장감을 더하는 인물이니깐. 김지운 감독은 숱하게 오디션을 본 끝에 신인 엄태구를 낙점했다. 송강호와 맞붙는 역을, 신예에게 덜컥 맡긴 것이다. 모험이다. 그 모험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


'밀정'이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엄태구를 발견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송강호와 기싸움에 지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화면을 장악하는 엄태구의 모습에 관객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엄태구는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늘 그렇듯 기회는 준비된 사람만 잡을 수 있다.

-'밀정' 하시모토 역할은 원래 탐내던 배우들이 많았는데.

▶오디션 기회를 얻었다. 처음부터 하시모토 역이 아니라 의열단원 역할 대본, 또 다른 역할 대본이 주어졌었다. 하시모토 역은 기대를 안했다. 송강호 선배와 붙는 역할인데 괜히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적이 많았기도 했고.


그저 김지운 감독님 영화에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잘 하면 송강호 선배님 연기를 구경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래도 오디션 볼 때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오디션장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데 딸꾹질이 나오더라. 숨을 참고 오디션장에 들어갔다.

-오디션은 어땠나.

▶편했다. 다른 오디션에 가면 앞에 책상이 있고 심사위원들이 죽 앉아 있다. 그런데 '밀정' 오디션은 의자만 하나 있고 김지운 감독님이 앉아 계셨다. 마치 현장에서 디렉션을 주듯 그렇게 주문을 하셨다. 이번에는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처음 보는 대본도 주시면서 직접 연기 지도를 해주셨다. 그게 즐거웠다.

오디션이 끝나고 하시모토 역에 대한 기대감이 올라오면 내려놓으려 애썼다. 새벽기도를 나갔다. 그러다가 하시모토 역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순간 "우와" 하는 기분이 들었고, 2~3초 뒤에 두려움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김지운 감독님이 송강호 선배가 주연을 맡은 '사도' VIP시사회와 뒷풀이에 같이 가자고 연락을 주셨다. 그 때 하시모토 역에 내 이름이 써 있는 대본을 처음 받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1년 뒤 '밀정' 뒷풀이는 하는 데 감회가 다르더라.

-살을 많이 뺀 것 같던데. 그래서 '밀정'에서 더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는데.

▶뺀 게 아니라 빠졌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4~5㎏ 정도 빠졌고, 찍으면서 더 빠졌다. 워낙 부담이 크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일본어 공부에 연기 공부, 편집이 되기 했지만 검도 장면도 있어서 연습을 별도로 했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살이 빠졌다.

-'차이나타운' 때보다 딕션이 훨씬 좋아졌다. 일본어 대사도 그렇고, 한국어 대사도 그렇고 또렷하게 들린다. 원래 느리게 말하는 편인데 '밀정'에선 빨리 치고 나가는 대사를 소화해야 했는데. 연습량이 느껴지던데.

▶딕션은 항상 염두에 두는 부분이다.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딕션 연습을 했다. 그 대사가 자다가 누가 쳐도 바로 뛰어 나오도록 연습했다. 일본어 선생님이 녹음해 주신 대사 분량을 잘 때 틀어놓고 자기도 했다.

-존경하는 송강호와 연기를 맞상대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첫 리딩을 할 때는 송강호 선배님 얼굴을 못 쳐다봤다. 눈을 깔고 있었다. 리딩이 끝나고 곧바로 리허설을 했는데 계속 눈을 못 봤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고개를 들어 송강호 선배 눈을 정면에서 마주 봤다. 머리가 '띵' 하더라. 이러다가 쓰러질 것 같았다. 다행히 그런 경험이 있다보니 현장에서 기절을 안 한 것 같다.

송강호 선배님이 너무 감사하다. 긴장감을 풀어주고, 내가 해보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게 해주셨다. 배려와 존중. 자유롭게 이것저것 해볼 수 있게 해주셨다. 만일 불편했다면 내 성격상 여러가지를 시도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송강호를 존경하는 엄태구와 영화 속에서 송강호에게 지지 않아야 하는 엄태구 사이에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맞다. 대선배와 해서 기쁜 나와 이겨야 하는 내 사이에 고민이 많았다. 정신줄을 놓으면 단숨에 끝이 나버릴 것 같았다. 은혜라고 할까. 송강호 선배님이 그런 나를 묵묵히 다 받아 주셨다. 순간순간 정신차리자, 아 너무 좋다, 이런 게 왔다갔다하는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현장에서 송강호 선배님이 배려해준 게 너무 컸다. 그래서 이렇게도 놀아보고 저렇게도 놀아봤다.

-맡겨진 역할, 감당하려 어떤 목표를 세웠나.

▶필사적으로 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찾았을 때 들었다. 숙소와 한 시간 거리였는데, 충격과 뜨거움을 느꼈다. 일본어 대사를 하기조차 싫더라. 그래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유다가 했던 것 같은 그런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기여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또 김지운 감독님이 믿어준 데 대해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현장에서 맨붕이 올 수 있으니 전체 대사를 통째로 외웠다. 자다가 툭 치면 바로 나올 수 있도록 연습했다.

엄태구/사진=임성균 기자
엄태구/사진=임성균 기자


-영화 초반 따귀 장면이 깊은 인상을 줬는데.

▶여러가지를 많이 준비해 가면 오히려 갇히는 것 같아서 마음 상태만 준비해놓고 가는 편이다. 처음에는 장갑으로 때리는 게 아니었다. 현장에 가보니 장갑을 주시더라. 혼자서 얼굴을 때려 봤는 데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더라. 그런데 빨리 더 많이 때려야 최대한 빨리 오케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죄송한 마음에 최대한 잘 해서 NG를 적게 가자고 마음 먹었다. 4번 정도 촬영을 했던 것 같다.

-이병헌이 등장하는 장면은 구경은 했나.

▶완전히 팬심으로 구경하러 갔다. 이병헌, 송강호, 공유 세 사람이 술을 먹는 장면은 너무 근사했다.

-기회가 왔고 그걸 잘 잡았는데. 영화 중반까지 캐릭터로 긴장감을 주는 게 하시모토의 역할이고, 그걸 잘 소화했다.

▶튀려고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너무 정신을 놓으면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편집됐지만 히가시 경부가 "이번에 자네한테 기대하는 게 참 크다"란 대사가 있었다. 하시모토에겐 인생을 건 임무였다고 생각했다. 못 잡으면 끝이고. 그래서 완전히 날이 서 있는 모습으로 보이려 했다.

-힘이 많이 들어간 역할이다. 그동안 그런 역을 많이 했다. 그런 모습으로 굳혀질까 걱정은 안되나.

▶'밀정'을 할 때는 그 고민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다음에 어떤 작품을 해도 순간순간 그 고민만 할 것 같다.

-또래에 잘 나가는 배우들이 많다. 느리다고 걱정 한 것은 없나.

▶지금도 너무 좋다. 더딘 데 더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한다.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다. 촬영장에서 매일 기도한다. 모든 게 다 능력 밖의 일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차기작은.

▶조용익 감독의 단편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찍었다. 아기자기한 멜로영화다. '차이나타운'에서 같이 한 이수경과 호흡을 맞췄다. 친형인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에도 짧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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