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 감독 "4년 전 쓴 '판도라'와 비슷한 현실..놀랐다"(인터뷰)

김미화 기자 / 입력 : 2016.12.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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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 감독 / 사진제공=NEW
박정우 감독 / 사진제공=NEW


박정우 감독(47)이 영화 '연가시'에 이어 다른 재난영화 '판도라'로 관객을 만났다.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사고까지 예고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을 막기 위한 사람들의 사투를 그렸다. 기획부터 개봉까지 4년이 걸린 '판도라'는 2012년 준비한 이야기임에도 불구, 2016년의 현실을 담고 있어 주목 받고 있다.

영화의 수장인 박정우 감독은 영화 개봉 전부터 배우만큼 주목 받았다. '판도라'를 만들게 된 과정부터, 영화 속에는 담지 못한 뒷이야기까지, 박정우 감독이 연 '판도라'의 상자속에는 다양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언론시사회 때 흥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최순실 국정 농단을 언급해 마음고생을 했다고.

▶4년간 숨죽이고 살다가, 시국이 어지러워지면서 좀 편안한 마음으로 개봉을 준비했다. 개인적으로는 (입담이) 봇물 터졌다. 4년간 쌓였던 것이 있으니 하고싶은 말도 많았다. 영화 시사회 때 화제가 되길 바랐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문이 나왔다. 무난한 세월에 개봉하면 저희 영화가 더 큰 이슈가 될 텐데, 4년 동안 이렇게 한 게 너무 억울한 느낌이었다. 4년간 고생했는데 하필 이 시점에 이런 문제가 생기고, 진정의 기미도 안보일까 울분이 쌓였다. '저쪽에서 아줌마 둘이서 저렇게 하고 있어서 (흥행을) 잘 모르겠다'라고 말한게 화근이 됐다. 아줌마라는 단어가 문제였다. 그 순간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말하는게 부담스러워 그렇게 표현했던 것인데, 잘 못 받아들여진 것 같아 마음이 그랬다.

-원전 폭발을 소재로 한 영화는 어떻게 해서 준비하게 됐나. 왜 하필 원전인가.


▶그것은 내가 영화를 만드는 습성과 연관이 있다. 나는 늘 영화 시나리오 미리 써놓지 않고, 시나리오를 쓸 그 시점에 주목 받는 이야기를 아이템으로 쓴다. '판도라'는 '연가시'를 만들 때, 재난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가 생각한 것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재난영화로 나올 수 있는 가장 큰 두 가지 아이템은 블랙아웃과 원전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침 '연가시' 후반 작업을 할 때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다. 우리나라보다 더 지진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일본이 저런데, 우리나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연가시'가 좀 잘돼서 다음 영화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재난 영화를 해보자고 생각했고, 그냥 재밌는 영화가 아닌 사회에 영향을 끼쳐서 바뀐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는 보람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2013년에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하며 자료 조사만 6개월을 했다.

/사진=영화 스틸컷
/사진=영화 스틸컷


-4년 전 기획했는데 영화 속에 현실과 비슷한 내용이 너무 많다.

▶ 당시 영화 만들 때는 편한 세상에 개봉하자고 했는데 지금 현 시국을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용기 내서 만들었는데, 평화로운 시기에 나와서 '판도라'가 큰 파장을 일으켜서 원전이 이슈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이러니 한 상황이다. 더 큰 이슈들로 묻히니까. 마침 우리가 홍보 행사를 할 떄마다 비아그라, 길라임 등이 빵빵 터졌다. 하지만 그 문제가 중요하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기강을 잡는 것도 중요하고..국가의 존재를 위협하는 안전도 확보해야 된다. 영화보고 광화문 가고, 시국기사 보고 영화기사도 보고 그런 분위기가 조성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청와대 장면이 지금 현실을 자연스럽게 풍자하고 있다.

▶ 개인적으로 억울한 것은 시류를 타고 있다거나 시국과 맞닿아있다는 것은 절대 내가 원하던 바가 아니다. 장담하건데 나는 예지력이 뛰어나지 않다. 4년 전에 경주의 지진이나 지금의 정국을 전혀 예상 못했다. 지금 와서서 시국과 맞닿아 있어서 득을 본다는 말은 속상하다. 사실은 오히려 반대로 영화 속에서 비슷한 장면을 들어냈다.

-어떤 대사를 들어냈나. 이유는?

▶3개 정도의 장면을 없앴다. 초반부에 대통령이 해외순방 갔다오고 나면 총리가 수석 비서관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대통령 왕따시키는 내용이 있다. 대통령이 순방 간 새 총리가 주도해서 주요법안 통과시킨 것이다. 대통령이 왜 통과 됐다고 물어보면서 "도대체 이 나라는 누가 이끌어가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또 뒤에 총리가 비상계엄령 선포해야 된다고 말하고 "대통령은 지금 판단 능력을 상실하셨어요"라는 대사와, "그럼 대통령 지금 어디 계신 겁니까?"라는 대사도 있었다. 대통령이 복구팀 들어가기 전에 현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 재혁(김남길 분)이 "이게 나라입니까. 죽어서도 지켜볼 것입니다"라는 대사도 있었는데 뺐다. 영화 내용상 안 맞거나, 어떤 의도가 묻어있는 장면이라고 받아들일까봐서 뺐다.

박정우 감독 / 사진=스타뉴스
박정우 감독 / 사진=스타뉴스


-이번 영화에서 무엇보다 현실감이 중요했을 것 같다. CG등 후반 작업이 힘들지 않았나.

▶관객들이 '어떻게 원전을 빌려서 찍었지?'하는 생각이 들만큼 사실감과 현장감을 확보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료도 면밀하게 조사하고, 실제 존재하는 공간을 구현했다. 실제 모든 것을 다 만들 수는 없으니, 현실적으로 만들어 놓고 나중에는 CG에 의지를 많이 했다. CG작업이 디테일하게 들어가다보니 굉장히 오래 걸렸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기대했던 목표치를 낮추지 않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을 했다.

-'연가시'에 이어 '판도라'까지 재난 영화를 계속 선보였다. 혹시 또 한번 재난 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나.

▶꼭 재난 영화를 하겠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반영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만약 어떤 사건이 내 마음에 들어온다면, 그 이야기에 맞는 장르를 고민하고 결정하겠다. 재난은, 지금 '판도라'의 원전보다 더 강렬한 재난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전까지는 일단 좀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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