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 감독 "'재심' 정우-강하늘, 최고의 연기연출은 캐스팅"(인터뷰,스포有)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02.1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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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와 김태윤 감독//'재심' 현장스틸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갔다. 가시밭길이다. 그런데, 그렇게 걸으니 또 다른 길이 열렸다. 김태윤 감독(44)은 2006년 '잔혹한 출근'으로 데뷔했다.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가까스로 7년 만에 내놓은 영화가 '또 하나의 약속'이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딸을 둔 아빠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그 길을 걸었다. 가시밭길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길을 걷고 나니 '재심'이란 문이 열렸다. '재심'도 녹록찮은 영화다.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내몰아 10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만든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모티프다. 지금이야 억울한 사연이 알려지고 재심도 이뤄졌지만 기획 당시만 해도 세상에서 외면받던 이야기였다. 또 가시밭길을 걸었다. '잔혹한 출근'에서 '또 하나의 약속'까지 7년이 걸렸지만 '재심'까지는 4년이 걸렸다.


어쩌면 김태윤 감독의 삶이 그랬다. 서울 서초동에서 자라 서초중-휘문고를 나와 홍대 91학번으로 일문과에 들어갔다. 길이 아닌 것 같아 입시를 다시 봐서 서강대로 96학번으로 들어갔다. 군대에 다녀왔지만 쭉 그 길이 자기 길이 아닌 것 같았다. 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자기 길을 찾았다. 영화계에서 먹고 살 길은 시나리오 쓰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쓰고 또 썼다. '인사동 스캔들' '용의자X의 헌신' '용의자' 등이 그의 손 끝에서 나왔다.

어찌어찌 만든 영화가 '또 하나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재심'을 내놨다. 강남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힘든 길을 택했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그의 영화들이 다른 이유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재심'에 앞서 '또 하나의 약속'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약속'이 있었기에 '재심'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데.


▶데뷔작을 실패하고 7년 동안 헤맸다. 그 때 슬럼프가 세게 왔다. 감독들이나 제작자 등 주위 사람들이 흥행 되는 영화, 상업적인 영화 이야기들만 하더라. 배우들에게 계속 치이고, 그러면서 내가 뭐하나 싶었다. 그래서 남들이 던져주는 것 말고 내가 최선을 다해 전력투구할 수 있는 걸 하자 싶었다. 그렇게 해서 하게 된 게 '또 하나의 약속'이다. 이거 안되면 영화 안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하기 가장 어려운 소재를 택했는데, 절대 하지 말라는 걸 했는데, 희한하게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돕더라. 영화계 말고 개인투자자들이 나서주더라. 결과를 떠나 좋더라. 걱정했지만 행복하게 했다. 영화를 만들고 난 뒤 지금 '재심'의 소재를 만났다.

-'재심'은 어떻게 하게 됐나. 두 번 연속 실화 소재를 바탕으로 하게 됐는데.

▶SBS 이대욱 기자라는 분이 있다. 이 분이 '현장21'이란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화제가 전혀 안됐다. 그래서 이대욱 기자가 이 사건을 더욱 공론화하기 위해선 영화로 만드는 게 어떠냐고 생각했다더라. 이대욱 기자의 지인이 내가 아는 지인이어서 소개를 받았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이 사건을 다루기 한참 전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실화 소재고, 투자도 캐스팅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영화 만드는 과정의 힘들겠다거나 선보이고 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냐는 염두에 없었다. 제일 중요한 건 감독으로서 이 작품을 쓰고 싶냐, 아니냐였다. 내가 몇 년을 투자해서 에너지를 쏟을 만하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어떤 결과물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깐. '재심'은 그럴만한 일이었다.

-실화를 각색하면 심리적인 검증이 있기 마련이다. 극화하기 때문에 과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피해자들을 배려해야 하기도 하고.

▶'또 하나의 약속'을 하면서 원칙을 세웠다. 영화 결과물이 실제 피해자에게 해가 되면 안된다는 점이다. 또 철저하게 취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디테일이 사니깐. 마지막으로 그 분들과 지속적으로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칫 사이가 틀어지면 보람이 사라지니깐.

-'재심'은 두 명이 이야기를 이끈다. 재심 청구를 하는 변호사와 살인 누명을 쓴 피해자. 둘 중 변호사를 '재심'의 화자로 만든 이유는.

▶'재심'을 만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실제 재심을 청구한 박준영 변호사 캐릭터 때문이다. 박준영 변호사를 처음 만났을 때 이러더라. 난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한 번 떠보려고 한 변호사 같다란 말을 하더라. SBS 기자가 와서 부탁을 하니 방송은 한 번 나오겠다 싶어서 했는데 어느새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됐다고 하더라. 이 사람의 이야기가 '재심'과 맞겠다 싶었다.

-'재심'은 드라마가 굉장히 강하다. 특히 돈만 밝히던 변호사가 억울한 사람을 돕는 이야기로 바뀌는 게 터닝포인트다. 그런데 영화 안에서 그 부분을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데.

▶그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감정적인 부분이니깐. 어떤 영화적인 장치보다는 감정이 쌓이다보면 관객이 따라올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터닝포인트라면 정우와 이동휘가 맞붙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정우가 자기 때문에 재심이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게 양심을 건드리는 대목이니깐.

-강하늘이 하이라이트에 절망해서 경찰을 찾아가는 장면은 의도가 명확한데. 과잉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앞의 장면들이 편집돼 그럴 수도 있다. 국과수를 정우와 강하늘이 찾아가는 장면이 있었다. 강하늘이 분노해 칼을 잡는데 정우가 뺏는 장면이었다. 김상범 편집기사님이 이 영화는 논리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감정으로 움직이는 영화인 만큼, 굳이 그 장면을 넣지 않아도 관객이 두 사람의 감정을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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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감독과 강하늘/'재심' 현장스틸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로 세상에 많이 알려졌는데. '재심'도 그 영향을 받은 것처럼 알려졌고.

▶이야기한 것처럼 '재심'은 '그것이 알고싶다'보다 먼저 기획됐다.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뤘을 때 솔직히 당황했다. 아무래도 스토리의 신선도가 떨어질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재심'을 기획한 것처럼 알기도 하더라. 글쎄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재심'에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것 같다. 마케팅적으로 플러스고, 영화에는 마이너스이지 않나 싶다. 아무래도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관객들이 알게 될테니깐.

-정우의 친구 변호사로 나오는 이동휘 캐릭터가 극 중에서 큰 변화를 갖는데. 통상 이런 영화에서 주인공에 의지가 되는 캐릭터와는 다른데.

▶전혀 다른 영화지만 '파이트클럽'을 떠올렸다. 주인공의 두 자아가 공존하는 듯 했다. 이동휘 캐릭터는 극 중 정우의 또 다른 자아이자 분신이라고 생각했다. '재심'에서 정우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일테니깐.

-정우와 강하늘, 어떻게 캐스팅했나.

▶우선 정우가 시나리오를 찾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우는 '바람'을 보고 반했다. 그 껄렁거리는 모습이 '재심' 속 변호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멋있게 연기하는 배우는 많지만 속물로 시작해서 마음의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우가 그런 배우라고 믿었다.

강하늘은 실제 주인공과 나이가 비슷하다. 사람들이 강하늘이 착하다고들 많이 생각하지만 눈빛에서 악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캐릭터로 시작해 후반에는 청년의 본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 말하자면 강하늘의 기존 이미지를 반대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기존 이미지로 보여주려 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기란 쉽지 않다. 배우들에게 어떤 걸 주문했나.

▶충무로에는 최고의 연기 연출은 캐스팅이라는 소리가 있다. 그 다음은 디테일이다. 일단 배우연기는 시나리오가 시켜준다고 믿는다. 슛 들어가기 전에 배우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나리오를 고쳐갔다. 대사도 입에 맞도록 바꿨고. 실화가 무거우니 초반부는 변호사가 라이트하게 가고 강하늘은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우와 강하늘의 연기는 어땠나.

▶정우는 편하게 연기를 하는 배우라 생각했다. 그런데 편하게 연기하기 위해 엄청 나게 디테일을 준비하는 배우더라. 귀찮게 해서 죄송하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많은 질문을 한다.

강하늘은 반대다. 진지하게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대신 순간 집중력이 엄청나다. 많은 준비를 하겠지만 그런 티를 안 낸다. 촬영장에 오면 모든 스태프와 인사하고 형동생 하고 막 즐겁게 지낸다. 짙은 감정 장면인데 저렇게 들떠 있으면 어쩌지 라고 걱정을 했는데 막상 슛이 들어가면 완전히 그 장면에 집중한다.

-후반부 정우가 경찰에 끌려갈 때 강하늘의 표정과 매칭된 장면이 영화에 많은 걸 드러내는데.

▶그 톤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정우가 끌려갈 때 강하늘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엄마를 부축해야 할지, 경찰과 드잡이를 해야할지. 그러다가 현실이라면 형사가 그렇게 할 때 아무것도 못하지 않을까 싶었다. 배우들이 정말 잘 해줬다.

-'또 하나의 약속'도 그렇고 '재심'도 그렇고 민감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럼에도 사회파 영화가 아니라 휴먼 드라마라고 강조했는데. 물론 영화들이 휴먼 드라마가 강하지만 역시 소재가 갖고 있는 사회성이 분명한데.

▶난 영화는 엔터테인먼트가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재밌게 봐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내가 영화를 만드는 목표다. '또 하나의 약속'과 '재심'은 주인공들이 영화의 주인공다워서 선택한 것이다. 제일 좋은 기업에 들어간 딸이 백혈병에 걸려 돌아온 걸 본 아버지가 그 딸을 자기가 몰던 택시에서 잃는다, 그리고 모두가 말리는 대기업과 소송에서 이겼다. '재심'은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구상권 청구를 당하지 않았으면 재심을 신청할 생각조차 없었던 사람 이야기다. 억울하게 감옥에서 10년을 보냈지만 1억원이 넘는 돈을 나라에 갚으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냥 누명 쓴 채 평생을 살았을 사람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으로 욕심이 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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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감독(맨 왼쪽)과 '재심' 실제 주인공 박준영 변호사(맨 오른쪽)/'재심' 현장 스틸


-제목이 왜 '재심'인가. 왜 주인공들 이름을 준영(정우), 현우(강하늘)로 지었나.

▶원래 가제는 '소년 979'였다. 실제 피해자 수형번호였다. 그런데 이야기와 잘 안 맞는 것 같아 '재심'이라고 하고 부제를 붙이려다 '재심'으로 확정했다. 이준영은 실제 주인공인 박준영 변호사 이름에서 따왔다. 현우랑 이름은 부드럽길 바랐다. 살인범이란 선입견과 다른 이름으로 생각했다.

-실화가 바탕이니 주인공 외 등장인물들도 실존 인물인데. 사건을 조작한 경찰과 관련한 부분도 실존 인물들인 만큼, 그들과 그들의 가족도 염두에 뒀어야 했을텐데.

▶극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허구다. 사건을 재구성해 허구로 가공하는 것이다. 형사들 캐릭터는 팩트를 원칙으로 했다. 숙직실에서 폭행하고 모텔로 데리고 가서 팼다. 맨 몸으로 사건 조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고. 그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한 다음에 캐릭터에 터치를 했다. 형사 역할을 한 한재영 선배가 생활감 있는 모습으로 잘 만들었다.

-대형 로펌 대표로 이경영이 나오는데. 마지막 즈음에 정우를 불러 세운 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무척 인상 깊던데. 많은 여운과 생각거리를 남기고.

▶이경영 선배 아이디어다. 그 장면을 찍기 전에 이경영 선배가 내가 한 번 정우를 불러볼까 라고 하더라. 퍼뜩 지금의 장면이 떠오르더라. 여백을 갖게 하고. 정말 대배우는 다르더라.

-마지막 법정 장면에서 정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과하지 않나.

▶법정 장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왜 '변호인'처럼 그럼 법정 장면이 없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 이 사건에선 그런 법정 투쟁이 없다. 가짜로 만들 수도 없고. 만든다 해도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헌법 제 1조를 이야기하는 걸 어떻게 넘어설 수 있겠나. 그래서 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마지막에 해야할 게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그렇게 그 장면은 만든 것이다.

-실화를 다룬 영화는 감독이 원하든 원치 않든 어떤 영향을 준다. '재심'은 어떤 영향이 있길 바라는가.

▶최소한의 것들만 생각한다. 박 변호사가 다른 억울한 사건의 재심을 맡을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실제 피해자의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풀어졌으면 하는 바람. 조금만 보태자면 현재 벌어지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이런 사건들에 대한 경고가 됐으면 한다.

-차기작은? 또 실화인가.

▶'라라랜드' 같은 음악영화를 하고 싶다.(웃음) 늘 음악영화를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음악영화가 안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어려운 선택을 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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