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무비]'그레이트 월', 만리장성이라고 왜 말 못해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7.03.04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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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레이트 월' 스틸컷


맷 데이먼과 장이머우 감독이 만난 '그레이트 월'. 지난 15일 개봉 이후 반짝 관객몰이를 했던 이 오묘한 판타지 대작은 지난 주말을 끝으로 주요 극장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습니다. 총 관객이 50만 명이 채 안 됩니다. 할리우드 톱스타와 중국 최고 명장이 만난 대작치고는 초라한 성적입니다.

겉이 아니라 속을 들여다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화약을 찾아 미지의 땅으로 떠난 중세시대 신궁 윌리엄(맷 데이먼)입니다. 그는 식인 괴물들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마지막 장벽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을 만나 함께하게 됩니다. 그 거대한 성이 바로 중국이 자랑스러워 마지않는 만리장성, 곧 '그레이트 월'입니다. 괴물들이 장벽을 넘어가면 중국을 넘어 세계를 초토화할 지경입니다. 중국이 인류의 멸망을 막고 있는 셈이죠. 중국 맞춤형 대작답습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중국 편향적인 영화를 '만리장성'이라고 이실직고해 개봉하기 민망했던 걸까요, 경색된 한중관계를 감안한 걸까요. 한국에선 '그레이트 월'이란 영문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제목으로 썼습니다. 심지어 자막에서도 만리장성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그저 '그레이트 월'이라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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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레이트 월' 스틸컷


1억5000만 달러를 들인 대작답게 전투신은 한껏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장이머우 감독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색깔별 갑옷을 입은 중국인 전사들이 고대 무기를 활용해 괴물들과 싸우는 초반 공성전이 돋보입니다. 동서양이 만난 중세 판타지를 표방하는 작품답게 중국판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미덕을 찾긴 쉽지 않습니다. 여러 작품에서 매력적인 설정을 끌어다 쓰면서 구색 갖추기에 급급해 고유한 재미나 개연성을 확보하는 데는 신경쓰지 않은 기색이 역력합니다.


'반지의 제왕'이야 언급한 대로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커다란 입의 초록 괴물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닮았습니다. 입을 벌린 괴물에게 맷 데이먼이 긴 창을 꽂아넣는 장면마저 고스란히 '괴물'을 연상시킵니다. 식인 괴물이 인류를 몰살시키지 않도록 거대한 성벽을 방패 삼아 싸우는 중세식 전투는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연상시킵니다. 중원을 가득 메운 괴물 떼는 흡사 스타크래프트의 저글링 러쉬를 연상시키고요. 얼굴은 인형 같은데 도무지 몰입이 안 되는 중국인 여주인공까지도 많이 보던 영화들을 빼다 박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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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레이트 월' 스틸컷


'맷 데이먼 낭비'라고도 하기 민망한 게, 갑옷 탓인지 '본' 시리즈보다 둔중해진 기색이 역력한 맷 데이먼은 별 분투도 안하는 느낌입니다. 중국 장수들은 왜인지 너무 너그럽고, 맷 데이먼은 왜인지 너무 착하며, 쉽게 의심을 품고 쉽게 용서하고 쉽게 화해합니다. 그분들도 그저 좋은 게 좋은 걸까요.

어쨌든 맷 데이먼 필모에 생채기가 하나 난 건 확실합니다. 중국에서야 1억7100만 달러를 벌어 들였지만 마케팅 비용 등등을 감안하면 7500만 달러의 손실을 안길 거란 예상이 벌써 나왔습니다.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가 아닐까요. 차이나 머니를 겨냥한 허울 좋은 프로젝트들이 거푸 냉랭한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할리우드리포터는 '그레이트 월'의 실패사례가 향후 미중합작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p.s. 뜻밖에 눈길을 끄는 건 이름없는 소년병으로 등장한, 엑소 멤버였던 중국인 배우 루한입니다. 분량이 적지만 함께 나온 유덕화보다 더 인상적인 캐릭터를 맡아 등·퇴장을 분명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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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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