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에미상 시상식 무대에서의 맷 데이먼과 지미 키멜 /AFPBBNews=뉴스1 |
지난 달 26일(현지시간) 열린 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잊을 수 없는 마무리로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하필 최고상인 작품상 시상 순간, 어이없는 전달사고로 '라라랜드'를 잘못 호명했다 '문라이트'로 정정하는 소동을 빚었으니까요. 수상소감까지 했던 '라라랜드' 프로듀서가 직접 "장난이 아니다. 진짜로 '문라이트'가 작품상"이라고 설명하는 상황이었으니 사회자 지미 키멜도 아마 진땀이 났을 겁니다. 그래도 역시 노련했습니다. 그 와중에 상황을 정리하고 시상자 워렌 비티에게 "워렌, 뭘 하신 거예요"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을 정도니까요. 다음날 자신의 쇼에선 자연스럽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멀뚱히 손을 놓고 있던 자신을 개그 소재로 삼았습니다.
지난 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번복 소동 중 해명하는 시상자 워렌 비티 옆에서 농담하는 지미 키멜 /AFPBBNews=뉴스1 |
쇼에서 지미 키멜은 "객석에서 소감을 듣고 있었다. 맷 데이먼 옆에서 시상식을 끝낼 생각이었다"면서 "한 가지는 짚겠다, 누가 이겼든 맷 데이먼은 졌다"고 농담해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아니, 이 양반은 시상식 시작부터 "맷 데이먼과 화해하고 싶다"면서 맷 데이먼을 씹더니 왜 이렇게 맷 데이먼 이야기만 하나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 앙숙(?) 관계가 시작된 건 10년이 훨씬 넘은 일입니다.
지난 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지미 키멜 /AFPBBNews=뉴스1 |
지미 키멜은 2003년부터 미국 ABC '지미 키멜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는 인기 코미디언입니다. 맷 데이먼과의 인연은 2005년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무명 스타들과 함께한 쇼를 마무리하던 지미 키멜이 한창 잘 나가던 맷 데이먼을 언급하며 "죄송하지만 시간관계상 맷 데이먼씨는 못 모시겠다"고 농담한 거죠. 지미 키멜은 후에 "당시 쇼가 최악이었는데, 그 순간 생각난 게 맷 데이먼이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반응이 좋아 "시간관계상 맷 데이먼은 못 모시겠다"는 마무리 농담이 번번이 계속됐고, 결국 '본 얼티메이텀' 개봉 당시 직접 맷 데이먼이 출연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지미 키멜은 마지막 게스트 맷 데이먼과의 토크를 앞두고 쓸데없는 소리만 하다 맷 데이먼이 자리에 앉자 또 "시간관계상 맷 데이먼은 더 못 모시겠다"고 쇼를 끝내버립니다. 격노한 맷 데이먼의 '쌍욕'과 함께 그날 엔딩이 올라갔고요. 둘은 비방과 무시, 흑역사 전시 심지어 지미 키멜의 여자친구, 맷 데이먼 절친 벤 애플렉까지 동원한 섹드립 복수혈전까지 벌이며 아웅다웅 했습니다. 폭발한 맷 데이먼이 2013년 1월 지미 키멜을 납치했단 설정으로 의자에 묶어두고 직접 쇼를 진행한 적도 있었죠.
지난해 9월 에미상 시상식 무대에서의 맷 데이먼과 지미 키멜 /AFPBBNews=뉴스 |
짓궂은 장난과 비즈니스를 넘나드는 유구한 소동 속에 맷 데이먼은 더욱 친근한 톱스타가 됐고, 지미 키멜은 재치를 과시하며 에미상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을 진행하는 인기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알고보면 더 가까운, 윈윈 관계의 앙숙인 셈이죠. 지난해 에미상 시상식에선 역시 사회를 보던 지미 키멜이 수상에 실패하자 맷 데이먼이 심드렁하니 무대에 난입, 고소해 하며 지미 키멜을 놀리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아카데미를 보니 둘의 관계는 한동안 더 지속될 것 같습니다. 언젠가 맷 데이먼이 아카데미 상을 타는 날 지미 키멜이 "죄송하지만 시간관계상"이라며 수상소감을 끊어버리는 건 아닐까요. 이거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