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토미 페이지는? 韓초콜릿CF 찍은 꽃미남 美빌보드 1위 가수

길혜성 기자 / 입력 : 2017.03.0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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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토미 페이지 / 사진=AFPBBNews뉴스1


'원조 꽃미남 팝가수' 중 한 명인 토미 페이지(Tommy Page)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그의 삶 역시 재조명받고 있다. 특히 토미 페이지는 여러모로 한국과 인연이 많았기에, 국내 팬들에 그의 죽음은 더욱 큰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1970년생 미국 출신인 토미 페이지는 10대 때이던 지난 1988년 셀프 타이틀 앨범 '토미 페이지'(Tommy Page)로 현지 대중음악계에 정식 데뷔했다. 이후 토미 페이지는 싱글 '아일 비 유어 에브리싱'(I'll Be Your Everything)으로 1990년 4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하며 톱 아이돌스타로 떠올랐다.


토미 페이지는 90년대 중반부터는 가수 활동보다는 음악 산업 쪽에 관심을 가졌고, 2010년대 중반에는 빌보드의 발행인도 역임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토미 페이지는 2015년에는 1990년 발매했던 '페인팅스 인 마이 마인드'(Paintings In My Mind) 앨범 수록곡 '아이 브레이크 다운'(I Break Down)을 새롭게 리메이크한 싱글 '아이 브레이크 다운, 2015'를 선보이며 음악에 대한 여전한 열정을 보여줬다.

토미 페이지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대단했다.


토미 페이지는 '아일 비 유어 에브리싱'은 물론 '어 쇼울더 투 크라이 온'(A Shoulder To Cry On)으로도 국내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는 당시 그의 조각 같은 외모 역시 한몫을 톡톡히 했다.

토미 페이지는 90년 한국에서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국내 모 초콜릿 브랜드의 CF를 찍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인 토미 페이지는 1992년 하수빈의 데뷔 앨범 수록곡인 '아임 폴링 인 러브'(I'm falling in love)를 만들기도 했다.

토미 페이지는 증조할머니가 한국계로 알려졌고, 이에 한국에 대한 사랑 역시 남달라 내한 공연도 여는 등 여러 차례 방한하기도 했다.

한편 빌보드 등 외신에 따르면 토미 페이지는 지난 3일(미국 현지시간) 숨진 채 발견됐다. 빌보드는 "아직까지 토미 페이지의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몇몇 친구들에 의하면 자살로 추정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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