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녀와 야수' 스틸컷 |
혹시 기억하시나요? 1991년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는 '인어공주'(1989)에 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작품입니다. 노란 드레스를 차려입은 벨이 야수와 눈을 맞추며 왈츠를 추는 댄싱홀 장면은 당대 기술력이 최고로 쓰인 명장면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랬던 '미녀와 야수'가 26년 만에 실사로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로 기억되는, 배우 엠마 왓슨이 주인공 벨 역을 맡았습니다. 이름부터가 프랑스어로 미녀란 뜻인 벨은 마을 제일의 미녀에 책벌레입니다. 그런 벨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터라 외톨이처럼 지내면서도 늘 활기차고 또다른 세계로의 모험을 꿈꾸는 캐릭터입니다. 똑 부러지고 똘똘한 이미지의 엠마 왓슨은 누가 봐도 벨 역에 적역입니다. 갈색 눈과 갈색 머리 등 비주얼도 싱크로율이 상당한 데다, 마법사로 출발한 판타지 소녀의 이미지는 야수와의 러브스토리에도 딱이죠.
디즈니는 원작의 벨에다 더 활동적인 모습, 발명가의 자질을 더해 더 진취적인 여성상을 표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엠마 왓슨은 실제로 UN 여성 친선대사를 맡는 등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데 몹시 적극적인 배우이기도 하고요. 엠마 왓슨은 '미녀와 야수' 촬영 당시 벨이 코르셋에 묶인 제한적 캐릭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코르셋 착용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사진='미녀와 야수' 스틸컷 |
달라진 몇몇 설정은 눈에 띕니다. 벨은 꼬마 어린이에게 직접 책을 읽는 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발명품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속바지를 입고 걷어올린 드레스도 눈에 띄고요, 야수를 처음 만났을 때도 크게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특히 발명 장면, 교육 장면 등은 달라진 시대상을 의식적으로 반영하려고 애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래서 여성상이 진화했냐고요? 글쎄요. 보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노력은 가상한데 공감은 크게 간다' 싶었습니다.
원작의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따르는 2017년의 벨은 설정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하는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에 포로로 잡힌 신세지만 손님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야수에게 애정을 느낀다는 전개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벨은 자신의 자유를 당당하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벨을 사랑하게 된 야수가 그녀에게 진정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거죠.
제작비도, 배우들도, 형식과 러닝타임도 달라진 '미녀와 야수'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도 상당합니다. 막바지가 되면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는 미녀보다 야수에게 더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게 특히 그랬습니다.
P.S.
여성상보다 확실히 눈에 띄는 건 조쉬 개드가 연기한 게이 캐릭터 르푸입니다. 알려진대로 디즈니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동성애 캐릭터죠. 벨을 짝사랑하는 상남자 개스통(루크 에반스)의 곁에 딱 붙어서 애정을 감추지 않는 능청스런 연기는 달라진 디즈니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자기애로 똘똘뭉친 꼴통 마초를 그가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칭송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