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소시아 LA 에인절스 감독과 오타니 쇼헤이(왼쪽부터) /AFPBBNews=뉴스1 |
이번 메이저리그의 오프시즌은 왜 이렇게 조용할까.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LA 다저스를 꺾고 구단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는 아직도 예열단계에 있는 듯 좀처럼 뜨겁게 달아오를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오프시즌 첫 두 달동안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선 별다른 뉴스가 없었다. 지금까지 스토브리그의 최대 관심사는 '홈런왕' 지안카를로 스탠튼 트레이드와 일본의 ‘야구천재’ 오타니 쇼헤이의 포스팅에 모아졌고 소문만 무성했던 매니 마차도(볼티모어 오리올스) 트레이드도 화제를 모았지만 FA시장에선 빅뉴스가 실종상태였다.
해가 넘어간 현 시점에서 'MLB 트레이드 루머스'의 톱10 FA 가운데 계약에 성공한 선수는 전 시카고 컵스 클로저 웨이드 데이비스 한 명 뿐으로 데이비스는 콜로라도 로키스와 3년간 5200만 달러(평균연봉 1730만 달러)에 계약해 구원투수 평균연봉에서 아롤디스 채프먼(뉴욕 양키스, 1720만 달러)을 넘어서는 메이저리그 최고기록을 세웠다.
웨이드 데이비스 /AFPBBNews=뉴스1 |
이밖에 1루수 카를로스 산타나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3년간 6000만 달러에 계약한 것과 내야수 잭 코자트가 LA 에인절스와 3년간 3800만 달러에 계약한 정도가 이번 오프시즌 FA계약으로 눈에 띄는 것들이다. 다르빗슈 유와 J.D. 마르티네스, 에릭 호즈머, 제이크 아리에타 등 이번 FA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는 선수들은 소문만 무성할 뿐 아직도 구체적인 계약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아직 시즌 개막까지는 두 달 반, 스프링 트레이닝 개막까지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더 남아있으니 오프시즌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FA시장이 최근 수년간에 비해 훨씬 잠잠하다는 것은 그저 느낌만이 아니다. 한 집계에 따르면 이번 오프시즌 시작 후 크리스마스까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선수계약에 쓴 돈 총액은 약 4억 6700만 달러로 그 이전 4년간 같은 기간 최소 10억 7000만 달러(2016년)에서 최고 14억 7000만 달러(2015년)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자 일각에선 MLB 구단들이 FA선수들과 거액 계약을 하지 않기로 '담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야구에서 ‘담합’(Collusion)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야구,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담합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5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5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LA 다저스는 오프시즌 팀의 '쌍두마차' 에이스였던 샌디 코팩스 및 돈 드라이스데일과 재계약 협상에 나섰다. 당시는 지금처럼 FA 시스템이 없어 선수들은 구단이 제시한 계약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은퇴 밖에는 방법이 없던 시대였다. 자신들의 가치에 훨씬 못 미치는 헐값대우를 받고 있다고 믿었던 코팩스와 드라이스데일은 다저스와 계약 협상에서 서로 상대방이 계약하지 않는 한 팀과 계약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대체불가 팀의 기둥들인 에이스 원투펀치의 깜짝 연합전선에 다저스는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요구조건을 사실상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 두 에이스의 연합전술에 허를 찔린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은 이후 선수노조와 첫 노사협정을 체결할 때 선수들이 계약협상 과정에서 두 명 이상이 함께 구단과 협상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고 선수들은 구단들도 선수들과 계약 과정에서 암묵적인 합의(담합)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는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협상과정에서 선수는 다른 선수와, 구단은 다른 구단과 협력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페어플레이'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FA 선발투수 최대어로 꼽히는 다르빗슈 유. /AFPBBNews=뉴스1 |
하지만 이 조항이 그동안 꼭 지켜진 것은 아니다. 선수들의 경우는 계약과정에서 서로 협력할 경우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 조항을 지킬 수밖에 없지만 구단들의 경우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게 담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1985, 1986, 1987년 오프시즌 ML 구단들은 다른 팀 출신 FA 선수들에 대해선 그 팀에서 재계약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계약하지 않기로 비밀협약을 맺었고 이로 인해 1985년과 86년 오프시즌엔 단 4명씩만이 다른 팀과 계약을 하는데 그쳤으며 1987년 시즌은 FA제도가 시행된 후 처음으로 리그 평균연봉이 감소하기도 했다. 선수노조는 구단 담합을 문제 삼아 리그를 제소했고 결국 법원이 선수노조의 손을 들어주면서 메이저리그는 선수노조에 총 2억 8000만 달러를 배상해야 했다.
이후 공식적으로 MLB 구단들이 담합으로 제소당한 경우는 더 이상 없었지만 선수노조는 수차례 구단 담합 의혹을 제기해왔고 지난 2002년과 2003년 제기된 담합 의혹에 대해선 구단들이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사치세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 중 1200만 달러를 선수노조에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 오프시즌에 대형 FA계약이 실종된 것이 구단들의 담합 때문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일까.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적으론 요즘 같은 시대에 30개나 되는 구단들이 담합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다른 쪽의 설명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브 돔브로스키 사장. /AFPBBNews=뉴스1 |
우선 메이저리그 전반에 걸쳐 대세로 자리 잡은 차세대의 구단 운영진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똑똑해졌다는 사실이 감안해야 한다. 요즘 많은 메이저리그 단장들은 아이비리그 출신의 수재들로 빅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 기법에 있어 전문가들이며 무조건 FA시장에서 돈으로 승부를 거는 과거 운영진과는 전혀 다른 철학을 갖고 있다. 꼭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나오지 않으면 기분이나 감으로 계약을 강행하는 일이 거의 없다.
FA시장의 돈 싸움을 주도하는 최상위권 부자팀들이 이번 오프시즌엔 그렇게 돈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뉴욕 양키스와 다저스, 시카고 컵스, 보스턴 레드삭스 등은 모두 팀에 큰 약점이 없는 로스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당장 절실하게 보강이 필요한 포지션이 별로 없다. 더구나 브라이스 하퍼와 매니 마차도 등 내년 오프시즌 때 FA로 풀리는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특히 다저스와 양키스는 올해 사치세 기준선 이하로 팀 페이롤을 묶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특별히 전력 보강이 절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큰 FA 계약으로 페이롤을 늘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외에 다른 팀들은 사정이 다르겠지만 큰 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치열한 영입전을 펼쳐 선수들의 몸값을 부풀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팀들은 수년 전부터 FA시장에서 인내를 가지고 시장변동을 모니터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수년 간 사례를 보면 해가 바뀐 이후에 FA선수들의 몸값이 상당히 떨어지는 현상이 관측됐다. 많은 팀들은 FA시장에서 시간은 구단 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스프링 트레이닝 시작 시간이 다가올수록 선수들의 심경은 조급해지기 마련이고 이 경우 협상의 칼자루는 구단이 쥐게 된다. 현재 분위기라면 최소한 스프링 트레이닝 개막이 임박해야 대형 FA 계약 소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