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감독 "'극한직업' 설정, 나부터 웃겼다"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9.01.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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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사진제공=CJ E&M


'힘내세요, 병헌씨'로 두각을 드러낸 뒤 이병헌 감독의 행보는 남달랐다. 코미디 영화 한 우물만 팠다. 스무살 동갑내기 청년들의 소동극 '스물'로 상업영화로 데뷔한 뒤 19금 코미디 영화 '바람바람바람'을 연출했다. 특별출연한 영화에서도 웃겼고, 각색에 참여한 영화도 재밌는 말맛을 살리는 데 일조했다.

그랬던 이병헌 감독이 이번에는 작정하고 코미디 영화로 돌아왔다. 23일 개봉한 '극한직업'은 감동, 눈물 따윈 없다. 오로지 웃기는 데만 주력했다. '극한직업'은 해체 위기에 놓인 마약반 형사들이 범죄자를 잡기 위해 위장 창업한 치킨집이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이병헌 감독은 특유의 말맛 넘치는 코미디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이 인터뷰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극한직업'은 왜 했나.

▶'바람바람바람'이 끝나고 뭔가 다른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었다. 그동안 감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상황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마침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안받았다. '극한직업' 설정을 듣고 나부터 웃음이 나왔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내려놓고 편하게 웃기는 데만 주력하고 싶었다.

-각색에 어느 정도까지 참여했나.


▶'완벽한 타인'을 쓴 배세영 작가님이 예고편에 나온 재밌는 대사는 거의 다 썼다. 난 전체 시나리오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수정했다. 분량과 리듬, 구조, 불필요한 인물 등등을 고쳤다. 시나리오에서 20페이지 분량을 줄였다. 모든 신과 모든 캐릭터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코미디를 넣고 싶었다. 망설이지 말고 코미디를 다 넣고 후반작업에서 거둬들이자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코미디인데.

▶전작들은 코미디로 분류되지만 웃기는 게 우선은 아닌 영화였다. 이번에는 웃기는 게 우선이다. 나도 웃기는 게 최우선인 정통 코미디 영화는 처음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도 좀 달랐다. 전작들에선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전작들에선 어투나, 감정, 리듬 등으로 재미가 바뀌다 보니 내가 원하는 대로 요구를 많이 했다. '극한직업'에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이게 재밌나요?"란 질문을 많이 했다. 그렇기에 '극한직업'의 코미디는 배우와 스태프들과 공동작업이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재밌게,를 같이 추구했다. 비현실적인 설정인지라 각 장면마다 유치하지 않나, 과하지 않나, 등등을 의견 취합해서 결정한 게 많다.

-후반작업에서 거둬들이자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편집실에선 어땠나.

▶편집실에서도 다수결을 많이 했다. 난 좀 더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하다보니, 연기톤을 좀 더 어둡고 가라앉은 걸 원했다. 반면 편집기사님은 밝고 대중적인 것을 택했고. 그렇게 의견이 엇갈리면 다수결을 했다. 내가 많이 졌다.

-'극한직업'은 전반과 후반은 빠르고 경쾌한 반면 중반부는 느슨한데.

▶약간의 미스가 있었다. 난 '극한직업'이 교과서 같은 구조를 속도감 있고 빠르게 전개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장면들은 굉장히 빠르게 해놓고 중간 부분만 교과서처럼 해놨더라. 그걸 기자 시사회에서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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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를 보고 있는 이병헌 감독/'극한직업' 스틸


-캐스팅이 곧 디렉팅인데. '극한직업'은 캐스팅이 되면서 캐릭터들이 완성된 느낌인데.

▶맞다. 류승룡이 고 반장 역에 캐스팅이 되면서 확신이 생겼다. 어쩌면 이미지 캐스팅이다. 완벽하게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류승룡이 캐스팅되니깐 나머지 캐스팅에 여유가 생겼다. 진선규와 이하늬가 맡은 장형사와 마형사는 이런 형사물에서 전형적일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시나리오에선 그 이상 새롭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런데 진선규와 이하늬를 그 캐릭터에 붙이니깐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굉장히 새로워졌다.

이동휘가 맡은 역할은 마약반 다섯 명 중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이다. 그러다보니 다섯명이 한 팀인데 혼자만 안 웃기고 밸런스가 안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동휘가 캐스팅이 되면서 밸런스가 자연스럽게 맞았다. 공명이 맡은 역할은 맑고 순수하면서도 일어서면 장딴지가 두껍게 느껴지길 바랐다. 그게 공명과 절묘하게 맞았다.

-악역인 신하균과 오정세도 독특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여느 형사물이라면 악역이 둘이면 하나는 정극처럼 갔을 법 한데.

▶난 '극한직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상황처럼 버라이어티하길 바랐다. 악역이 둘인데 한명은 절대악이고 한명은 조금 오버스런 악당이다. 대비되는 두 악당을 붙였을 때 말투와 복장 등 보이는 것으로 설명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신하균은 2대8 가르마에 더블슈트를 입고 가볍고 무거운 말투가 순식간에 오가길 바랐다. 신하균이 출연하기로 한 순간 그 인물이 완성됐다. 제작사 대표님이 "신하균 어때?"라고 했을 때 너무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오정세도 마찬가지다. 그냥 그 역에 오정세가 떠올랐다. 둘이 같이 있으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 생각했다.

-신신애 특별출연이 반갑던데.

▶그냥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난 뒤 신신애 선배를 어떤 역할에 맡기면 웃길까 고민하고 부탁드렸다. 너무 좋았다.

-무술 고수인 신하균 비서는 이하늬와 상대하기 위해 일부러 여성 캐릭터로 만든 것인가.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한 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보면 악당 옆에 있는 검은 슈트 있고 포니테일 머리를 한 여성 캐릭터를 떠올렸다. 갤 가돗 같은 느낌이길 바랐다.

-영화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인지 '극한직업'에는 이병헌 감독 특유의 19금 유머가 없다. 그걸 좋아하는 관객은 아쉬울 수도 있고, 싫어하는 관객에겐 좋을 수도 있을텐데.

▶19금 코드를 모든 영화와 모든 이야기에 삽입할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번 영화는 온 가족이 보고 웃을 수 있는 영화여야 했다. 19금 코드가 어울리지도 않고 필요도 없었다.

-이하늬와 진선규의 영화 속 관계는 실컷 구박하다가 알고 보니 좋아했다는 설정이다. 마지막 키스 장면도 그런 설정의 연장 선상이고. 코미디라 용납되는 허용치가 있긴 하지만 상대 몰래 위치추적을 한다든지, 그런 설정은 남녀가 바뀌었다면 더 두드러졌을 직장 내 성범죄일 수 있는데.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못했다. 둘의 관계가 영화 초반부터 충분히 설명됐다고 생각했다. 다만 키스신에 대해선 "어 갑자기?"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다. 괜찮다는 반응이 많았다. 일단 찍어보고 결정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찍고 보니깐 너무 키스신이 귀엽더라. 우리 영화 색깔과도 동 떨어지지 않았고.

-여러 장면 촬영에 공을 들였겠지만 치킨을 만드는 장면에도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은데.

▶치킨 광고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걸 하지 말고 CF처럼 보이길 바랐다. 치킨 CF가 가장 치킨에 침샘을 자극하도록 만들어진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수원왕갈비맛치킨은 참고한 게 있나.

▶원래 시나리오부터 있었다. 그 때는 갈비치킨이 없었는데 요즘은 나왔더라.

-마지막 액션 장면은 캐릭터별로 구성이 나뉘어 졌는데. 어떻게 구상했나.

▶동선은 무술감독님이 해줬다. 난 캐릭터가 구사하는 액션 방식이 달랐으면 했다. 평범하거나 모자란 줄 알았던 인물들의 능력치가 폭발하는 장면이니 대사보다는 시각적으로 보여주길 바랐다.

특전사와 무에타이, 유도는 원래 시나리오에 있었다. 야구부였다는 것과 좀비는 내가 착안했다. 다섯 명의 액션이 모두 멋질 필요도 없을 뿐 더러 코미디를 얹고 싶었다. "안 아파" "안 아파"는 각색할 때부터 미친 듯이 웃겼다.

류승룡의 좀비 연기는 설정만 주고 일절 디렉션이 없었는데 현장에서 너무 깜짝 놀랐다. 너무 잘하고 너무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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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사진제공=CJ E&M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영화 속에 담겨있는데. 우연이지만 최근 자영업자 어려움이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고. 특별히 전하려 한 메시지가 있었나.

▶지금은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근무제로 자영업자 어려움이 화두가 됐지만 사실 자영업자는 계속 힘들었다. 나도 작은 우동 가게를 하다가 망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 문제점들에 대한 이해가 있다. 그렇다고 구구절절 영화에서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한 마디는 속시원하게 하고 싶었다.

-'극한직업'에는 맛집 고발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음식점을 했던 사람으로서 그런 프로그램에 비판을 담으려 했나.

▶영화적인 장치일 뿐이다. 고발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드는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그걸 비판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극한직업'은 설정 자체가 코믹적인데. 그럼에도 경찰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취재를 많이 했을 것 같은데.

▶나도 의경 출신이고, 매형도 경찰이다. 그래서 주위에 경찰이 많다. 인터뷰가 꼭 필요한 영화라 자문을 많이 구하고 취재도 많이 했다. 실제 경찰은 수사할 때 절대 마약을 맛보지 않는다. 도청 감시수사도 영화처럼 안 하고.

-'베테랑'과 교과서적인 구도는 닮았는데. 다른 결이긴 하지만.

▶형사가 악당을 잡는다는 것 외에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간 한국 코믹신파극에선 앞에서 웃기고 뒤에서 울리는 방법을 썼다. '극한직업'은 끝까지 웃기는 데 주력했다. 마지막에 감동 한 스푼을 넣고 싶은 욕망은 없었나.

▶0.1 그램도 없었다. 신파는 원래 좋아한다. 신파가 들어간 이야기도 준비하고 있고. 그런데 '극한직업'과 신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스물' 이후 준비하던 '홈리스 월드컵'은 어떻게 됐나. 통상 한국 영화계에선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써야 오리지널리티를 인정받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병헌 감독은 남의 시나리오로 연출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 같은데.

▶일단 '홈리스 월드컵'은 계속 준비 중이다. 홈리스가 축구를 한다는 소재다 보니 투자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난 시나리오를 받는다기보다 아이템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화한다. 사실 '스물' 이후 오리지널 시나리오 두 개를 진행했다. 그런데 잘 안됐다. 그러면서 굳이 오리지널에 욕심 낼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한동안 방송을 많이 하다가 지금은 안 하는데.

▶호기심으로 했었는데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더라. 카메라 앞에 있는 게 힘들더라. 난 카메라 뒤에 있는 게 좋더라. 앞으로도 방송 출연은 안 할 생각이다.

-차기작으로 TV드라마를 준비 중인데.

▶여자판 '스물'이라고 기사가 났던데 오보다. 주인공이 친구 세 명이고 여자라는 것 외에는 전혀 공통점이 없다. 30대 여성의 로맨틱 코미디다. 수다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원래 드라마를 좋아한다. 7~8년 전쯤 준비하다가 무산된 적도 있다.

-세 명의 캐릭터 설정은 어떤가.

▶작가님의 의도는 다를 수 있지만 난 비슷, 비슷, 비슷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나이 때 보통 사람의 이야기다. 처한 상황이 다를 뿐이지. 난 흔히 볼 수 없는 사람이나 사건이 아닌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의 다른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병헌 감독의 말맛 넘치는 코미디는 20대에 특히 많이 사랑을 받는다. 40대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게 있나.

▶여전히 말로 하는 코미디를 좋아한다. 일부로 뭘 해야 할 만큼 나이를 먹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이를 먹으면 어느 한 순간 꼰대가 되더라. 그렇게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코미디가 아닌 이게 이병헌 감독이 만든 거야, 라고 할만한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는 관심 없나.

▶있다. 신파를 좋아해서 가족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웃음이 주목적이 아닌 따뜻하고 편안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연극도 관심 있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다.

-연극 연출을 준비하는 건 이병헌 감독의 영화가 연극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과 관련있나.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내 영화가 연극처럼 보이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부분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와 별개로 연극을 좋아한다.

-블록버스터나 제작에는 관심이 없나.

▶블록버스터는 아직 내가 그렇게 큰 이야기, 현실과 멀리 떨어진 이야기에 관심이 별로 없다. 제작은 관심 있다. 주위에 좋은 후배들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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