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을 제작한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스타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 |
코로나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2020년 영화계를 마무리하며, 그 속에서도 빛났던 올해의 영화인들을 스타뉴스가 만났습니다. 첫 주자는 '남산의 부장들'로 2020년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우민호 감독이며, 두 번째 주자는 '내가 죽던 날'의 김혜수며, 세 번째 주자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정재, 네 번째 주자는 '남산의 부장들'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제작한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입니다.
2020년 한국 극장가는 코로나19 여파로 최악의 해였다. 극장 뿐 아니다. 힘들게 영화를 만들어놓은 제작자들도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영화 개봉을 결정하지 못했다. 인지상정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는 올해 두 편의 영화를 개봉시켰고, 두 편 다 400만명 이상을 극장에서 동원했다. 개봉 직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남산의 부장들'은 475만명이, 8월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435만명이 관람했다. 두 영화 모두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관객을 극장에서 만났을 법했다.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는 그럼에도 올해 두 영화가 관객과 만난 걸 자랑스러워했다. 관객들이 어려운 시기에도 극장을 찾아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자랑스러움과 감사함, 올해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시킨 모든 제작자들이라면 흥행의 성패를 떠나서 간직했을 감정들이다.
-광고기획사를 다니다가 영화 수입사를 차렸고, 그러다가 영화 제작자로 길을 걷게 됐는데. 프로듀서 출신이나 영화 마케팅, 연출부 출신이 대체로 영화제작자가 되는 데 반해 특이한 이력인데.
▶영화를 계속 수입하면서 점점 느껴진 게 작품 퀄리티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어떤 스토리를 만들지, 어떤 걸 같이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제작이 시작됐다.
-'내부자들'이 사실상 첫 영화고, 그다음이 '덕혜옹주'인데.
▶'내부자들'은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를 워낙 좋아했다. 원작이 5회차 연재됐을 때 찾아가서 영화 판권 계약을 맺었다. '덕혜옹주'도 비슷한 시기에 원작 계약을 했다. '내부자들'을 제작해보니 영화를 만드는 것에 엄청난 매력이 느껴지더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했다.
-'내부자들'과 '덕혜옹주' '곤지암' '바람바람바람' '상류사회' '마약왕' '천문' '남산의 부장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을 쉼 없이 만들었는데. 의아한 건 영화들의 공통점이 별로 없다는 점인데.
▶'덕혜옹주'와 '상류사회'를 같이 한 박해일이 그러더라. 색깔을 잘 모르겠다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새로운 것,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려 한다. 새로운 장르에 대한 관심도 많다. '하이브'라는 게 벌집이란 뜻이다. 벌집 한 칸 한 칸에 꿀을 채워넣듯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
다만 어릴 적부터 국사, 세계사, 실화에 관심이 많았다. 1950~2000년대 근현대사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 영화들에 관심이 많이 간다.
-하이브미디어코프는 대체로 자사 아이템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 중 '남산의 부장들'만 회사 아이템이 아니다. 우민호 감독님이 '마약왕'을 시작할 즈음에 '남산의 부장들'이 어떠냐고 했다. 원래 근현대사에 관심이 커서 바로 준비했다. '마약왕' 개봉할 즈음에 그래서 '남산의 부장들'을 이미 찍고 있었다.
-이 코로나 시대를 누구도 예측하지 못 했겠지만 올해 '남산의 부장들'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두 편을 선보여 총 900만 관객을 동원했는데.
▶코로나19 사태는 천재지변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개봉 직후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면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남산의 부장들'을 겪고 나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여름 개봉에 고민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처음부터 여름에 개봉하는 것을 염두에 둔 영화였다. 예산이 크니 손익분기점도 높았고. 해외에서 그 고생하면서 찍은 영화를 지금 개봉하는 게 맞나를 놓고 투자배급사인 CJ ENM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극장이 이대로 무너지면 한국영화산업의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데 뜻을 같이 한 것이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뿐 아니라 '#살아있다' '반도' '강철비2' 등 개봉한 한국영화들은 다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개봉을 미룬 게 결코 비겁한 건 아니다. 각자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시국인데도 극장에서 영화를 봐주신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해 올해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남산의 부장들' |
-'남산의 부장들'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각각 어떤 목표를 갖고 있었나.
▶우민호 감독님과는 '내부자들' '마약왕'에 이어 '남산의 부장들'까지 세 작품을 같이 했다. 네 번째 작품도 같이 진행할 계획이다. 둘 다 '마약왕'에 대한 아쉬움이 있고, 반성이 있다. 후반작업에서 좀 더 공을 들이고 다른 방향을 택했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반성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그런 반성에서 출발한 지점이 있다. '남산의 부장들'을 하면서 아직도 계속 배워야 하고,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시나리오를 뛰어넘는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이 이렇게 밀도 있게 모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새로운 액션을 시도해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일본과 태국을 옮겨가면서 벌어지는 그림도 그래서 필요했고. 한국영화로 제작할 수 있는 예산 아래 정말 끝내주는 액션영화를 만들어보자는 데 홍원찬 감독과 배우들, 스태프들이 의기투합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하면서 팀워크와 팀분위기, 그런 기세들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다시 배웠다.
-좋은 제작자란 어떤 제작자라고 생각하나.
▶다른 사람들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제작자는 상황에 맞게 전체적으로 서포트를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준비 단계에서 감독과 작가, 기획팀이 잘 할 수 있도록 돕고, 캐스팅과 투자도 잘 되게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프로듀서와 스태프를 잘 꾸리는 데 서포트하는 것도 물론이다. 영화를 찍다보면 감독과 배우, 스태프, 투자사의 요구가 다 다를 수 있다. 그걸 잘 조율하고 서포트하는 게 제작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제작자 입장에서 좋은 감독은 어떤 감독인가.
▶내가 감히 평가할 수는 없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남산의 부장들'을 같이 한 홍원찬 감독과 우민호 감독을 예로 들자면, 홍 감독은 좋은 스태프들의 능력을 확 끌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귀가 열려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감독이란 자기 작품을 정확히 알고 있는 감독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야 하고. 홍원찬 감독도 그렇지만 우민호 감독이 딱 그런 경우다. 허진호 감독은 말할 것도 없고. 이병헌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분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영화는 흥행을 목표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걸 배웠다. 일단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걸 매번 배운다.
-좋은 기획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글쎄. 좋은 기획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게 좋은 기획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배우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첫 번째는 무조건 시나리오다. 두 번째는 연출자고 세 번째가 제작사나 투자배급사다. 결국은 좋은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 영화는 정말 종합예술이다. 크레딧에 밥차 하는 분들까지 다 올라간다.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만드는 게 포인트다. 그래서 제작자는 그 모든 걸 잘 서포트하는 게 일이다.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제작한 올 여름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파이널컷 포스터. |
-2020년 칸국제영화제 초청작이지만 올해 개봉을 못 한 임상수 감독의 '헤븐:행복의 나라로'를 비롯해 내년에도 제작하는 작품들이 적잖은데.
▶일단 '헤븐:행복의 나라로'는 내년 개봉 시기를 보고 있다. 이성민 이희준 공승연 주연의 '핸섬 가이즈'(감독 남동협) 촬영을 최근 끝마쳤고, 내년 초 권상우 오정세 이민정이 출연하는 영화 '크리스마스 선물'(감독 마대윤) 촬영에 들어간다. 곽재용 감독의 신작인 '해피 뉴이어'도 준비하고 있고, 우민호 감독의 신작도 준비 중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리메이크와 라희찬 감독의 '보스'도 준비하고 있다. '아수라' 김성수 감독의 신작 '서울의 봄'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준비 중인 작품을 서두를 생각은 없다. 무리하지 않고 준비가 되면 들어갈 계획이다. 그래야 되는 걸 점점 더 배우고 있다.
-TV드라마와 애니메이션도 준비 중인데. 이렇게 많은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인가. 회사 지분을 매입해 같이 일을 하자는 제안도 많았을텐데.
▶돈은 다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다. 여러 제안이 있었지만 더 좋은 작품들을 만들고 진행하는 게 본질이다. 지금은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 중이다. 영화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실버타운 히어로즈'라는 작품을 비롯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드라마는 윤태호 작가 원작인 '야후'를 준비 중이다. '마약왕'은 영화와는 다르게 '스카페이스' 같은 느낌으로 10부작을 계획하고 있다. '내부자들'도 드라마화를 놓고 고민 중이다. 이렇게 드라마 프로젝트도 10여편 정도 된다.
콘텐츠 쪽으로 100년 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다. 그러려면 시스템화가 돼야 한다.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언제나 최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