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와 동료의 폭행 및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는 경북의 한 사찰 추모관에 잠들어 있다. /사진=뉴스1 |
< 특별기획 : '클린 스포츠' 어디까지 왔나 >
① '최숙현법' 그 후... "스포츠 윤리센터, 징계 권한도 가져야"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줘."
2020년 6월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당시 22세) 선수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이 한 마디는 폭력에 둔감한 대한민국 스포츠계에 경종을 울렸다.
최 선수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소속됐던 경주시청팀 감독, 운동치료사, 팀 선배 2명으로부터 가혹행위를 시달렸다.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2020년 2월 경주시청에 신고한 것을 시작으로 3월에는 가해자 4인을 폭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고, 4월에는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6월에는 대한철인3종협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각 단체의 대응은 미온적이었고 최 선수는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국회는 사건으로부터 두 달 뒤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최숙현법)'을 통과시켰고 해당 법안은 2021년 2월부터 개정 시행됐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산하의 스포츠비리신고센터,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장애인체육회 체육인 지원센터 등을 통합해 '스포츠윤리센터'를 설립했다. 지난해 11월에는 1년에 걸친 조사와 법정 공방 끝에 가해자들에게 징역 4년과 7년 등의 처벌이 확정됐다.
체육인의 인권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최숙현법의 핵심은 스포츠 윤리센터의 역할이다. 지도자의 (성)폭력 등 스포츠 비리를 알게 된 경우 스포츠 윤리센터에 신고해야 하는 의무 규정이 신설됐고,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할 스포츠 윤리센터의 기능과 권한이 강화됐다.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르면 스포츠 윤리센터는 직권조사권, 공무원 파견요청권, 수사기관 신고·고발권, 체육단체에 대한 징계요구권 등의 권한을 갖고, 조사에 비협조적이거나 거짓 응대가 적발될 시 문체부 장관에게 징계를 요구할 수 있게 했다.
매년 실시되는 스포츠 윤리센터의 교육을 통해 예전보다 폭력 금지에 대한 인식이 넓어진 점은 긍정적이다. 스포츠 폭력과 관련해 꾸준히 의견을 내온 박현애(46·체육학 박사, 스포츠 인권강사) 씨는 "(2년 전과 비교해) 확실히 인식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자신이 겪은 일이 문제인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알고 싶어도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교육을 통해 어떠한 부분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생겼다. 주변에서도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 폭력 관련 창구가 일원화된 것도 긍정적이다. 스포츠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는 한민희(39) 변호사는 "과거에는 피해 사실이 있을 때 보통 연맹이나 협회의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했다. 그뿐 아니라 대한체육회, 문체부 등에도 진정을 넣곤 했는데 단체마다 해석이 달라 징계도 천차만별이었다. 그 때문에 선수들의 불신이 깊었다. 최숙현법을 통해 스포츠 윤리센터로 창구가 일원화된 것은 긍정적이다. 또 스포츠 폭력과 비리에 대해 정의하고 제도를 정비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할 점은 남아 있다. 2022년 1월 기준으로 스포츠 윤리센터의 정원은 초창기 26명에서 45명, 조사 인력은 13명에서 30명으로 확대됐으나, 모든 고충을 소화하기에는 인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 변호사는 "스포츠 윤리센터가 징계까지 관리하는 등 업무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만큼, 관련 법령과 규정의 보완과 정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스포츠 윤리센터는 현재 각 연맹 및 협회에 징계 요청을 할 수 있을 뿐 직접적인 징계 권한은 없다. 여전히 실질적인 징계는 각 체육 단체의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이뤄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범 초창기부터 특별사법경찰관 도입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박현애 씨는 "스포츠 윤리센터는 징계를 직접 내릴 수 있는 기관이 아니고, 권고만 할 수 있다 보니 결국 협회를 거쳐야 한다. 이 경우 협회가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해당 조치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스포츠 윤리센터 측은 "한계를 느끼기보다는 점차 누적되는 데이터를 통해 문제를 개선하고, 기관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