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
그렇다고 어떤 제목이 좋은가?, 라고 물어봤을 때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듯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프로그램의 콘셉트, 내용 혹은 방영 당시의 사회 분위기나 유행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맞물리기 때문이다. 다만 딱 한 가지 자신있게 꼽을 수 있는 건 '시청자들에게 궁금하거나 호기심을 일으켜서 프로그램을 보고 싶게 만드는 제목'이라는 것이다. 이런 제목을 작명하는 것? 말이 쉽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제목 타령(?)을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바로 tvN의 새 드라마 '슈룹' 때문이다. '슈룹'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생소함에서 일단 무슨 드라마일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어떤 단서도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뜻을 찾아보면 '슈룹'은 '우산'의 옛말이란다. 드라마 제목이 '우산'? 그렇다면 '우산'이 의미하는 건 어떤 내용일까?, 싶은 궁금증이 2차로 생긴다는 얘기다. 한 마디로 말해 호기심이 발동하는 제목이란 것이다.
자,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드라마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시청자는 그곳에서 김혜수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2003년 KBS 사극 '장희빈' 이후 근 20년 만에 출연하는 사극이라 더욱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그녀는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은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아닌가! 그런 그녀가 20년만에 출연한 사극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당연히 관심집중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상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슈룹'에서 김혜수는 중전 역할을 맡았다. 극 중 그녀에게 다섯 명의 아들이 있는데, 이 중 첫째 세자를 제외한 나며지 네 명의 아들들은 공부하고 거리가 먼 사도뭉치다. 하지만 세자가 중병에 걸리면서 왕권을 다른 왕자들에게 내어줘야 하는데, 문제는 후궁들의 아들들에 비해 네 명의 아들 실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여기서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드라마의 재미가 생긴다. 김혜수, 자신의 아들들이 아닌 후궁의 왕자들 중 한 명에게 세자직분을 넘겨주는 순간 그녀를 비롯해 나머지 네 명 왕자들의 목숨 또한 잃을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후궁의 아들들보다 못한 네 명의 아들들을 가장 똑똑한 인재로 키워내야 하니까. 그래서 김혜수는 스파르타 교육에 나설 열혈엄마가 된다.
그로다보니 '슈룹'의 중전, 김혜수는 기존의 사극에서 볼 수 없는 인물이다. 긴 한복을 입고, 온 궁전을 뛰어다니는 모습은 중전이 아니라 극성 엄마, 그 자체니 말이다. 목소리도 전혀 우아하지 않다. 우아는커녕 톤도 높고 속도도 빠르다. 표정, 또한 온와한 미소가 아니라 희노애락의 온갖 감정을 드러낸다. 자, 여기까지 보면 '아하, 김혜수는 그냥 퓨전사극의 퓨전 중전(?) 캐릭터구나.'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반전이 있다. 대배 역의 김혜숙과 왕권을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할 때는 그 어떤 정통사극보다 진지한 카라스마를 내뿜으니까 말이다.
다시 말해, '웃음'과 '진지함' 사이를 자연스러우면서도 속도감 있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대개 한 가지 색깔로 연기하는 것과 여러 색깔의 연기를 카멜레온처럼 순간적으로 변신하며 연기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운지 말이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혜수는? 그녀의 연기내공으로 이걸 해 냈다.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카리스마 넘치게! 그래서 이렇게 결론지으련다. "김혜수가 김혜수했다"라고!
* '슈룹' 김혜수의 존재감만으로도 시선을 고정시킬 수밖에 없는 드라마! 그래서 제 별점은요, ★★★★★(다섯 개).
이수연 방송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