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엘 후라도(가운데)./사진=키움 히어로즈 |
한국 야구뿐 아니라 한국의 따뜻한 정(情) 문화에도 스며든 모습이다. 키움 히어로즈 외국인 투수 아리엘 후라도(27)가 히어로즈 구단 버스를 10년 이상 운행한 베테랑 기사들도 처음 겪는 따뜻하고도 생소한 제안을 했다.
파나마 출신의 후라도는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 뉴욕 메츠 등을 거쳐 올 시즌을 앞두고 총액 100만 달러(약 13억 원) 계약을 맺고 키움에 합류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후라도에 대한 평가는 호평일색이었다. 마운드 위에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팀 내 유일하게 범타를 끌어낸 선수였고, 클럽하우스 내에선 조용히 동료들의 등번호와 이름을 외우며 다가가는 수줍은 신입생이었다.
기복 없이 시종일관 차분한 성격은 정규시즌에서 장점으로 발휘됐다. 7번의 퀄리티 스타트(리그 공동 2위)를 기록하면서 10경기 3승 6패, 평균자책점 2.97, 60⅔이닝 49탈삼진으로 KBO리그 연착륙 중이다. 아쉬운 점은 저조한 득점 지원(리그 5위) 탓에 좋은 성적에도 리그 최다패 투수라는 것이다. 26일 고척 롯데전에서도 7이닝 2실점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달성했음에도 시즌 6패째를 떠안았다.
하지만 본인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27일 고척서 만난 후라도는 "결과는 안 좋았지만, 이것도 야구의 일부다. 그보단 이닝을 빠르게 끝내며 많은 이닝을 끌어갈 수 있어 긍정적이었다"면서 "야수들이 내게 미안하다고 한다. 하지만 야구는 팀 스포츠고 승리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 괜찮다. 오히려 그날은 실책이 없어 고맙게 생각했다"고 최근 부진한 동료들을 감쌌다.
아리엘 후라도(왼쪽에서 두 번째)가 20일 광주 KIA전에서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이정후(왼쪽)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키움 히어로즈 |
따뜻한 마음씨는 선수단에만 향하지 않는다. 지난 주말 광주 원정에서 후라도는 구단 버스를 운행하는 3명의 기사님들에게 소고기를 대접했다. 이 자리에는 이조일 통역과 이명종(21)도 함께했다. 쾌활한 성격의 이명종은 조용한 후라도와 시종일관 붙어 다니며 찰떡궁합의 호흡을 자랑한다는 후문. 후라도도 "내 사람, 마니또"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자타공인 절친이다.
인터뷰에 응한 오병호(코치, 구단 관계자들이 타는 1호차), 안상진(투수조가 타는 3호차) 씨는 10년 이상 운행 중인 베테랑 버스 기사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가 따로 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은 2010년 입사인 오 씨, 2013년 입사인 안 씨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 씨는 "후라도가 가끔 불펜 포수들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는 이야기는 통역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5월초 대구 원정에서 후라도가 우리와 함께 식사하고 싶어 한다는 말이 처음 나왔다. 말만이라도 고맙다고 하고 말았는데 (다음 지방 원정인) 광주에서 토요일(20일)이 어떠냐고 정말 연락이 왔다. 통역의 아이디어인가 했는데 후라도가 먼저 제의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탓에 깊은 대화는 없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두 사람은 "이 일을 10년 이상 해왔지만, 외국인 선수가 우리와 밥을 먹자고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많은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농담해도 잘 받아주고 분위기는 좋았다. 후라도가 소고기와 맥주를 참 좋아했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선수단의 분위기를 알면 우리 일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도 있고 영역이 다르다 보니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후라도의 마음이 고맙고 굉장히 큰 힘이 된다. 자연스레 후라도가 안 다치고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하고 응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리엘 후라도. /사진=키움 히어로즈 |
그라운드 밖 후라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투수조 버스를 운행하는 안상진 씨는 "우리 팀 투수조는 버스 내에서 항상 절간처럼 조용한 편이다. 최근에 정찬헌이 첫 승했을 때 정도를 제외하면 경기에서 이겼다고 시끌벅적하고 그러진 않다"면서 "후라도도 마찬가지다. 나이에 안 맞게 점잖고 차분하다. 과묵한 편인데도 항상 타고 내릴 때 한국말로 인사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이에 후라도는 "기사님들은 새벽 늦게까지 버스를 운행하시는 등 선수단을 위해 항상 많은 도움을 주는 분들이다. 그런 부분에서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 이번 기회에 식사를 대접했을 뿐"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2월 스프링캠프 당시 전 동료 크리스티안 베탄코트(전 NC)로부터 들었던 한국을 구경할 생각에 들떴던 27세의 젊은 투수다. 그로부터 3달 뒤 만난 그는 한국의 치안과 문화에 감명을 받은 모습이었다. 겪어본 한국은 어떠했냐는 물음에 후라도는 "한국은 밤에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다. 길을 돌아다녀도 총기 사고가 없다"고 농담하면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문화였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주는 모습이 참 좋았다"고 웃었다.
생소했던 한국야구에도 적응하는 중이다. 후라도는 "KBO리그는 미국과 굉장히 달랐다. 미국에서는 나쁜 공에는 웬만하면 스윙을 안 하는데 한국 타자들은 나쁜 공에도 어떻게든 콘택트를 해서 파울을 만든다. 또 떨어지는 공으로 타자들을 유인하는 전략도 많이 쓴다. 이런 부분이 달라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느꼈는데 투수 코치님과 전력분석팀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건강하게 안 다치고 풀시즌을 마치는 것이 목표다.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져서 팀이 승리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아리엘 후라도(가운데)가 26일 고척 롯데전에서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며 미소짓고 있다./사진=키움 히어로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