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호 KIA 타이거즈 신임 감독. /사진=KIA 타이거즈 |
KIA는 13일 "이범호 타격코치를 제11대 감독에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2년이며, 계약금 3억원, 연봉 3억원 등 총 9억원에 계약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달 29일 김종국 전 감독이 장정석(이상 51) 전 KIA 단장과 관련된 배임수재 혐의로 경질됐다. 호주 캔버라 스프링캠프를 떠나기 직전에 터진 충격적 뉴스에 KIA 선수단은 혼란에 빠졌다. 결국 감독 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심재학 단장도 예정과 달리 한국에 남았다. 그리고는 2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진갑용 수석과 이범호 타격코치를 위시해 훈련에 매진했지만 선수들도 하루 빨리 감독이 선임됐으면 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주장 나성범은 지난 5일 호주 캔버라 나라분다 볼파크에서 취재진과 만나 "저뿐만 아니라 베테랑 선배들은 크게 상관이 없는데 어린 선수들이 워낙 팀에 많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순간마다 잘 모르는 점이 많을 것이다. 어린 선수들이 갈피를 못 잡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신임 감독이 13일 정식 부임 후 호주 캔버라 전지훈련지 선수단 앞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KIA 타이거즈 |
새 시즌을 맞아 주장을 맡은 나성범은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을 앞두고도 취재진과 만나 "그냥 우리가 야구를 열심히 할 수 있게 많은 지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이후로도 일주일이 더 흘렀다. 팀을 이끈 경험이 있는 타이거즈 출신 인사 선동열(61) 전 감독과 또 다른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이종범(54) 전 LG 트윈스 코치부터 재야에 있는 류중일(61)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김원형(52) 전 SSG 랜더스 감독 등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KIA의 선택은 이범호 타격코치였다. 우선 현재 상황을 가장 빠르게 추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내부 인사 쪽으로 기울었다. 새 감독을 선임할 경우 사실상 일본 오키나와 2차 캠프부터 합류할 수 있고 연습경기를 치르며 실전감각을 키우고 옥석가리기에 초점을 둬야 할 때 선수단 파악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점에서 선수단을 잘 파악하고 있고 분위기를 쉽게 수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부 인사에 무게감이 실렸다.
앞서 심재학 KIA 단장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스타뉴스에 "지금 상황에서 빠르게 우리 팀을 재정비하고 성적을 낼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 최대한 우리 팀에 빠르게 녹아들면서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감독을 찾고 있다"며 "다양한 후보를 보고 있는데 (기존의) KIA를 잘 안다기보다 지금 우리 선수들을 잘 아는 사람에게 가산점이 분명 붙을 수 있다"고 전했다.
현역 시절 KIA에서 활약했던 이범호. /사진=KIA 타이거 |
2005년과 2006년 한화 시절 연속으로 3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활약하며 야구 팬들에게 '꽃범호'라는 애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NPB에 진출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그러나 KIA에서 보낸 시간도 충분히 강렬했다. 2011년 KIA 유니폼을 입고 치른 첫 시즌 타율 0.302에 17홈런 77타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이듬해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그 여파가 이어지기도 했으나 2013년 24홈런으로 반등했고 2015년엔 28홈런 79타점, 2016년엔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타율 0.310에 33홈런 108타점을 기록했다. 이듬해에도 25홈런 89타점을 올리며 KIA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2018년에도 20홈런을 날린 그는 2019년을 끝으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감독은 처음이지만 2019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 NPB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메이저리그(MLB)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고 KIA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퓨처스(2군) 팀도 이끌며 유망주 선수들에 대한 파악도 마쳤다.
지난 5일 호주 캔버라 나라분다 볼파크 실내훈련장에서 타격 훈련을 하고 있는 서건창. /사진=안호근 기자 |
이러한 면모는 지난 5일 나라분다 볼파크에서 만났을 당시에도 잘 나타났다. 당시 이 타격코치는 실내연습장에서 선수들의 훈련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한 선수에게 눈길이 꽂혀 있었다. 바로 LG 트윈스를 떠나 고향팀 유니폼을 입은 서건창이었다.
2008년 LG 육성선수로 프로에 입단한 그는 2012년 넥센 히어로즈(키움 전신)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꽃피우기 시작했다. 특히 2014년엔 타율 0.370에 201안타 135득점으로 타격 3관왕에 올랐다. 특히 201안타는 역대 단일시즌 최다안타 신기록이었다. 그해 서건창은 리그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다.
이후에도 꾸준한 커리어를 그렸으나 최근 몇 년 사이 가파른 하락세를 그렸다. 특히 지난해엔 44경기 출전에 그쳤고 타율도 0.200으로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다. 새 팀을 찾던 서건창은 KIA와 연봉 총액 1억2000만원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서건창은 누구보다 열심히 타격에 전념했다. 과거의 영광과 달리 주전은커녕 백업으로도 안정된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13일 호주 캔버라 전지훈련지에서 선수단과 상견례를 하는 이범호 감독. /사진=KIA 타이거즈 |
서건창의 타격 훈련을 지켜보던 이범호 감독은 익숙지 않은 왼손 타자 자세를 취해가면서 그 원인을 분석하려고 애썼다.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파악하고 있으나 서건창은 달랐기 때문에 더 눈길이 갔다. "치는 걸 계속 보기는 처음이니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옛날에는 이랬었는데 지금은 이렇구나'라는 걸 파악해야 한다. 아무래도 더 신경이 쓰인다. 워낙 고점을 찍었던 선수이기에 반등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선수는 스스로 멘탈의 문제라고 짚었다. 그럼에도 이 감독은 혹시나 다른 부분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세심하고 살피고 분석했다. 제자가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서건창은 "아픈 데는 없다. 야구는 멘탈 게임이다. 그런 부분에서 접근하는 방식이라든지 예전과 달라졌던 부분들에 대해서 (이범호) 코치님과 상의해서 좋은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치님도 많이 도와주시고 있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밖에도 이범호 감독 특유의 소통 능력도 혼란에 빠져 있는 선수단의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2년 연속 야구 외적인 이슈로 흔들린 KIA이기에 선수단을 잘 이끌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 감독이 높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카리스마 있는 강한 지도자도 좋지만 현재 KIA엔 이 감독 같은 유형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종국 전 감독 경질 이후 복수의 KBO리그 구단 관계자는 "스프링캠프가 이미 시작됐고 개막전이 앞당겨진 상황에서 외부 인사가 다시 선수들을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그보단 지금의 KIA를 잘 아는 이범호 코치가 나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을 포함해 KIA에서만 14년 차를 보내고 있는 타이거즈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 선수단에서 이범호 감독만큼 타이거즈 경력이 많은 사람은 양현종(36·2007년 2차 1R)과 김선빈(35·2008년 2차 6R)뿐이다. 누구보다 선수단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그에게 구단 내에서 호의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난 5일 나라분다 볼파크 실내타격장에서 최형우(왼쪽)와 이범호 당시 코치가 야간훈련을 두고 내기를 걸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
많은 비로 인해 야간이 취소돼 내기의 승자는 가리지 못했지만 이 감독이 선수들에게 얼마나 편하게 다가가고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 감독은 이날 구단을 통해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갑작스레 감독자리를 맡게 돼 걱정도 되지만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차근차근 팀을 꾸려 나가도록 하겠다"며 "선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면서,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자신들의 야구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구단과 팬이 나에게 기대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초보 감독이 아닌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 맡겨 진 임기 내 반드시 팀을 정상권으로 올려놓겠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았다.
지난 시즌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지만 올 시즌 5강을 넘어 우승 후보로까지 분류되고 있다. 양현종과 윤영철, 이의리에 외국인 선수 2명으로 구성된 선발진은 리그에서 가장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부상으로 신음했던 나성범이 돌아왔고 완전체로서의 타선은 가공할 힘을 보여줬다. 지난해 8월 24일 수원 KT전부터 9월 6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까지 78득점(26실점)으로 경기당 평균 8.6점을 뽑아내는 무서운 화력을 보여주며 9연승을 달렸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완전체 KIA가 우승 후보로 뽑히는 이유다.
새로 합류한 외국인 투수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최고 시속 153㎞의 우완 윌 크로우(30)는 뛰어난 구위로 1선발 역할이 기대되고 올해 KBO리그 외인 중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제임스 네일(31)은 준수한 제구력과 수비 그리고 땅볼 유도에 특화된 구질이 강점이다.
이의리와 윤영철, 김도영 등은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큰 선수들이고 정재훈 투수 코치는 물론이고 2017년 KIA의 통합 우승에 일조했던 나카무라 타케시(등록명 타케시) 배터리 코치도 돌아왔다. 약점으로 꼽히는 포수진에서도 전력 상승이 이뤄진다면 KIA는 빈틈을 찾기 힘든 팀이 된다.
타케시 코치는 지난 5일 캔버라 나라분다 볼파크에서 취재진과 만나 "KIA 타이거즈라는 팀은 KBO리그에서 인기가 많고 또 가장 우승을 많이 경험했기에 역사적인 팀"이라며 "그만큼 이겨야 하고 강해야 하는 팀이다. 그걸 다같이 이뤘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고 책임감을 나타냈다.
이젠 그 배턴을 이 감독이 넘겨받는다. 첫 지휘봉을 잡고도 선수단 분위기 수습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승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즐비하고 이를 잘 융화시켜 이끈다면 충분히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이기 때문이다. 이범호 감독이 이끄는 KIA의 2024년이 벌써부터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선수들을 향해 펑고를 쳐주고 있는 이범호 감독. /사진=KIA 타이거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