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K리그1 득점왕' 울산 HD 주민규.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주민규의 발탁은 역대 최고령 A대표팀 선발 기록이다. 주민규는 1990년 4월 13일 생이다. 33세 333일의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주민규가 오는 2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태국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홈 3차전에 출전하면 역대 최고령 A매치 데뷔전 기록(33세 343일)도 갈아치우게 된다.
기존 최고령 데뷔전 기록은 1954년 6월 20일 스위스 월드컵 튀르키예전에 나선 한창화(32세 168일)였다. 이명재(31)도 주민규와 같이 A매치 데뷔전을 치른다면 30세 128일로 역대 최고령 A매치 데뷔 역대 6위에 오르게 된다.
역대 2위는 2008년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 친선경기에 첫 출전한 송종현(32세 136일), 3위는 2015년 9월 3일 라오스와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 나선 골키퍼 권순태(30세 357일), 4위는 2005년 6월 3일 우즈베키스탄과 월드컵 예선에 첫 출격한 김한윤(30세 327일), 5위는 2001년 9월 16일 나이지리아와 친선경기에서 골문을 지킨 최은성(30세 164일)이다. 이어 현재 6위에는 2019년 12월 15일 중국과 E-1챔피언십에 나선 김인성(30세 97일)이 올라있다.
주민규는 최근 3년 동안 K리그1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공격수다. 2021년 22골을 터뜨려 생애 첫 득점왕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에도 17골을 넣어 두 번째로 득점 1위를 차지했다. 2022년에는 득점 1위 조규성과 같은 17골을 넣었지만, 더 많은 출전 시간 탓에 2위로 밀려났다. 3년 동안 56골을 폭발했다. 2022~2023년 울산의 2연속 K리그1 우승 영광도 함께 누렸다.
황선홍 임시 감독이 11일 A대표팀 및 올림픽대표팀 소집 명단을 발표한 뒤 기자둘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기자 |
주민규는 K리그1에서 최다골을 기록한 지난 3년여 동안 팬들과 미디어의 큰 관심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도 국가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벤투, 클린스만 전임 감독은 주민규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원톱'으로 자리잡은 조규성(미트윌란)을 비롯해 황의조(노팀엄 포레스트) 오현규(셀틱)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울버햄튼) 등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는 해외파 공격 자원들이 넘쳐났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주민규로서는 '국가대표 선발운'이 없는, 불운한 선수였다.
2023 K리그1 대상 시상식에서 득점상을 받은 주민규.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K리그1 역대 득점왕들의 A매치 기록과 활약상을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1983년 출범한 한국프로축구(K리그) 41년 역사에서 지난 시즌까지 득점왕에 오른 국내 선수는 모두 21명이다. 원년 박윤기(유공, 9골)를 시작으로 백종철(1984년 현대, 16골) 정해원(1986년 대우, 10골) 최상국(1987년 포항제철, 15골) 이기근(포항제철, 1988년 12골·1991년 6골) 조긍연(1989년 포항제철, 20골) 윤상철(1990년 럭키금성 12골·1994년 LG, 21골) 임근재(1992년 LG, 10골) 차상해(1993년 포항제철, 10골) 노상래(1995년 전남, 15골) 신태용(1996년 천안 일화, 18골) 김현석(1997년 울산 현대, 9골) 유상철(1998년 울산, 14골) 김도훈(2000년 전북 현대, 12골&2003년 성남 일화, 28골) 우성용(2006년 성남, 16골) 이동국(2009년 전북, 20골) 유병수(2010년 인천 유나이티드, 22골) 김신욱(2015년 울산, 18골) 정조국(2016년 광주FC, 20골)과 주민규 조규성이다.
이기근과 윤상철, 김도훈, 주민규는 두 차례 득점왕에 올랐다. 득점왕 가운데 6명은 K리그 최우수선수(MVP) 수상 경력자다. 정해원(1987년) 신태용(1995·2001년) 김현석(1996년) 김도훈(2003년) 이동국(2011·2014·2015년) 김신욱(2013년) 정조국(2016년)이 같은 해 또는 해를 달리하며 득점왕과 MVP의 영예를 모두 안은 스타플레이어다.
K리그 레전드 출신인 김현석 충남아산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박윤기는 A매치 경험이 없다. 1979년 FIFA 20세 이하(U-20)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현 U-20 월드컵)에 출전해 조별리그에서 3경기를 뛴 것이 그나마 내세울만한 태극마크 경험이다.
백종철은 1985~1990년 A매치 8경기(1골)에서 뛰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예선(1경기)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최종예선(2경기) 등에 출전했다.
정해원은 1980~1990년 A매치 65경기에서 22골을 기록했다. 1980년 쿠웨이트 아시안컵과 1982 스페인 월드컵 예선 등에서 활약했다.
최상국은 1984~1989년 18경기에서 8골을 넣었다. 1988 서울 올림픽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 등에서 뛰었다.
이기근은 1991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와 한일 정기전에서 단 2경기에 나선 것이 A매치 기록의 전부다. 두 차례 득점왕에 오른 골잡이의 면모에 비하면 초라한 국가대표 성적표다. 조긍연은 1981년에만 한일 정기전, 메르데카컵 등에서 A매치 5경기를 뛰었고, 득점은 없었다.
두 차례 득점왕에 오른 'K리그 레전드' 윤상철 역시 A매치 기록은 단 한 경기다. 1992년 10월 21일 가진 아랍에미리트(UAE)와 친선경기에 출전한 것 밖에 없다. 임근재는 A매치 기록 없이 1991년 23세 이하(U-23) 대표팀에 선발돼 3경기(3골)에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장신(190cm) 공격수 차상해는 1993년 5월에 치른 인도, 홍콩과 1994 미국 월드컵 예선에 2경기 출전한 뒤 더 이상 A매치에 나서지 못했다.
'캐논 슈터' 노상래는 1995년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부터 1996년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을 거쳐 1997년 치른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까지 A매치 25경기에서 6골을 넣었다.
신인상, 득점왕, MVP를 모두 차지한 K리그 레전드인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뉴시스 |
또 한 명의 K리그 레전드 김현석도 비슷하다. 그는 K리그와 일본 J리그에서 모두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1990~1996년 A매치 23경기(5골)에 나서면서도 월드컵, 아시안컵 등 메이저대회 본선 무대에서는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만능 플레이어' 유상철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한 레전드 선수로 긴 설명이 필요없다. 1994~2005년 A매치 124경기(18골)를 뛰어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에 가입한 한국 남자 축구선수 17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996년 UAE 아시안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방콕 아시안게임,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 2002년 북중미 골드컵과 한·일 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국제대회에 출전해 한국 축구를 대표했다.
2021년 6월 세상을 떠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 /사진=뉴시스 |
장신(193cm) 공격수 우성용은 1995~2007년 A매치 15경기(4골)에 나섰다. A대표팀보다 1994~1996년 올림픽대표(U-23)팀에서 활약(30경기 6골)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동국은 1998~2017년 20년에 걸쳐 A매치 105경기(33골)에 출전해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깜짝 스타'로 등장한 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 2002년 북중미 골드컵, 2004년 중국·2007년 동남아 4개국 아시안컵,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 출전했다. 그러나 2002 한-일 월드컵과 2004 독일 월드컵 대표팀에 연거푸 탈락하는 등 불운도 겹쳐 K리그 최다골(214골, 프로통산 228골)의 명성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A대표팀 활약상이었다.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 이란과 8강전에서 골든골을 넣고 환호하는 이동국. /사진=대한축구협회 |
김신욱은 A대표팀에서 감독의 성향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2010년~2021년 무려 22년동안 A대표팀을 드나들며 56경기에서 16골을 터뜨렸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뛰었고, 만 33세이던 2021년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 뛴 뒤 더 이상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정조국은 2006~2011년 13경기(4골)에 뛰었다. 2007년 아시안컵 예선과 친선경기에 나섰고, 메이저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득점왕과 K리그1 MVP에 오르던 2016년에는 A매치를 경험한 지 5년이나 흘렀지만 다시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바레인과 첫 경기에 출전한 조규성(가운데). /사진=뉴시스 |
조규성은 2021년 9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때부터 A대표팀에 중용돼 카타르 월드컵 본선 무대와 지난달 막을 내린 2023 카타르 아시안컵까지 주전 공격수로 나서며 2년 반 만에 A매치 37경기(9골)에 뛰었다.
K리그1 득점왕 출신 가운데 A대표팀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는 유상철이 으뜸이고 이동국이 버금이다. 김도훈과 정해원, 김신욱도 A매치 50경기 이상 출전하며 이름값을 해냈다. 그 뒤를 조규성이 잇고 있다. 그 외 선수들은 국가대표팀에서 K리그 득점왕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도를 보여줬다. 초대 득점왕 박윤기와 임근재, 가장 최근의 득점왕 주민규는 A매치 경험조차 없다.
주민규는 뒤늦게 역대 최고령으로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A매치 데뷔전을 앞두고 있다. 이 역시 K리그와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다. 이동국은 역대 A매치 최고령 출전 3위에 해당하는 38세 129일 때인 2017년 9월 5일 우즈베키스탄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마지막 A매치 출전 기록을 남겼다. 주민규가 늦깎이 대표로 발탁됐지만, 이동국의 사례에 맞춰 비교한다면 앞으로 5년을 더 국가대표로 활약할 수도 있다. 물론 최근 3년 동안 보여준 득점력과 팀 공헌도가 꾸준히 유지되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울산 주민규(가운데).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