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가 29일 삼성 이적 후 첫 경기에 선발 출전해 4회말 키움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날린 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
너무도 낯선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나선 삼성 라이온즈 데뷔전. 박병호(38)는 단 두 타석 만에 대포를 쏘아올렸다. 강렬한 타구음을 낸 공은 좌측 담장을 넘었고 아무도 잡을 수 없는 장외로 사라졌다.
박병호는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홈경기에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맹타를 휘둘렀다.
지난 28일 밤 삼성과 KT 위즈는 1대1 트레이드 소식을 전했고 박병호는 동갑내기 좌타 거포 오재일(38)과 유니폼을 바꿔입고 대구로 향했다.
2005년 LG 트윈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폭발적인 장타력을 갖췄다는 평가에도 1군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그는 2011년 트레이드로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유니폼을 입은 뒤 전성기를 맞았다.
1군에만 가면 작아지던 박병호는 당시 넥센에 안성맞춤 4번 타자감이었다. 넥센은 재정난으로 인해 많은 선수들이 이탈한 상황이었는데 당시 김시진 감독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던 박병호가 마음 놓고 자신의 기량을 뽐낼 수 있도록 무한 신뢰를 보냈다. LG 시절 1군에 올라올 때마다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과한 게 독이 됐던 박병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스윙을 펼치기 시작했고 결국 이듬해 홈런왕에 등극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거포로 자리매김했다.
경기를 앞두고 많은 취재진들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박병호. |
늘 박병호를 변화케 한 건 전폭적인 신뢰였다. KT에서 기회를 잃어가던 박병호의 가치를 이번엔 삼성이 알아봤다.
박병호는 29일 일찌감치 라이온즈파크에 도착해 선수단, 코칭스태프, 구단 관계자들과 첫 만남을 가졌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훈련에 나섰다.
그럼에도 박진만 감독은 박병호를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시켰다. 이날 경기 전까지 타율 0.198, 3홈런 10타점에 그치던 박병호에게 과감히 기회를 준 건 마치 팀이 얼마나 박병호를 신뢰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과 같았다.
박진만 감독은 "그동안에 삼성 야구에서 많이 필요했던 우타 거포다. 라인업에 좌타가 많은데 요즘 보면 상대 선발로 왼손 투수들이 많이 나온다. (우타자는) 우리가 필요했던 부분이었는데 박병호 선수가 오면서 어느 정도 좀 채워진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어 "몸 상태를 다 체크했다. 밤에 이동해 피로감은 있지만 조금 전에 수비나 타격할 때 몸 상태에 큰 문제는 없어서 바로 스타팅으로 나가기로 했다"며 "허리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전에 KT에서도 크게 몸이 안 좋았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 출전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박병호가 경기 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
기대를 키우는 건 또 하나있었다. 라이온즈파크는 홈런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잘 알려진 구장이다. 야구 전문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라이온즈파크의 홈런 파크팩터(투수·타자의 유불리를 판단할 수 있는 구장의 지표)는 1위다.
삼성은 박병호의 트레이드를 소식을 전하며 "팀에 필요한 오른손 장타자로서 팀 타선의 좌우 밸런스를 공고하게 함은 물론 월등한 홈런 생산성이라는 장점을 펜스 거리가 짧은 라이온즈 파크에서 극대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고도 전했다.
라이온즈파크에서만 40경기 15홈런을 날렸던 박병호도 "저 또한 그런 것(구장 효과)에 기대를 하고 싶다. 사실 장타력이 떨어지면 값어치가 떨어지는 유형이다. 그런 부분들이 도움이 돼 점수를 많이 내는 데 기여하는 타자가 되고 싶다"며 "(라이온즈파크에 대한) 기억은 좋다. 제가 생각해도 한 번씩 시리즈를 하면 올해 이전까지는 (홈런을) 하나씩은 쳤던 것 같다. 야구장의 집중도도 좋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 효과가 단 두 타석 만에 나타났다. 첫 타석에서도 하늘로 높게 뜬 타구가 손쉽게 뜬공으로 처리될 줄 알았지만 한참을 날아가더니 우측 담장 바로 앞 워닝트랙에서 잡혔다. 박병호의 힘과 라이온즈파크의 좁은 외야의 시너지를 체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삼성 박병호가 29일 키움전 선발 출전해 타석에 나서고 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
경기를 앞두고 박병호의 친정팀이기도 한 키움의 사령탑 홍원기 감독은 "(푸른색 유니폼이) 어색하다"고 말했다. 키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절친한 후배 김혜성도 "파란색 유니폼이 안 어울린다. 버건디(키움 유니폼색)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키움 선수단은 물론이고 모든 야구 팬들과 본인에게도 삼성 소속으로서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은 낯설기만 했다. 그럼에도 박병호는 "이번 트레이드가 각 팀에서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뤄졌다고 생각한다"며 "여기서 필요로하는 걸 해야 한다. 앞으로가 정말 중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믿어준 새 팀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겁다. 박병호는 "자신감보다는 누구보다 노력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한다는 생각으로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새로 왔으니까 이 팀에서 어떤 활약을 해야 되는지 수치로 말 안 해도 다 느끼고 있다. 제가 노력해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삼성 박병호(가운데)가 29일 키움전 선발 출전해 더그아웃에서 원태인(오른쪽)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
나아가 박진만 감독은 베테랑으로서 더그아웃 리더의 역할은 물론이고 그동안 쌓은 많은 경험을 전수해줄 수 있기를 기대했다. 박 감독은 "박병호 선수가 와서 전력적인 부분도 있지만 젊은 선수들한테 좋은 본보기가 될 걸 기대해 그런 얘기를 했다"며 "젊은 야수들이 많기 때문에 박병호에게 먼저 다가가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젊은 선수들에게 노하우 등을 알려주며 먼저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고.
박병호도 "고참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될 역할이기 때문에 저도 앞으로 선수들과 더 친해지기 위해서 다가가서 먼저 대화도 많이 걸고 도움이 될 게 있으면 얘기도 많이 나눌 것"이라며 "야구 외적으로 그런 역할들도 내가 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일단 더 많이 친해지는 게 우선일 것 같다"고 다짐했다.
첫 경기부터 기대치를 끌어 올려놓은 박병호다. 이날 마운드가 흔들리며 5-11로 패하긴 했지만 박병호의 홈런을 비롯해 4개의 아치를 쏘아 올리며 무서운 홈런 구단으로서의 변신을 기대케 한 삼성이다.
박병호가 4회말 홈런을 날린 뒤 열광하는 팬들 앞에서 베이스를 돌고 있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