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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항공사의 기존관습은 우리사회에서 뿌리깊은 고정관념으로 작용했다.
특히 객실여승무원에게 요구된 관습은 놀라우리 만치 세세하고 복잡했다. 이는 두 기존항공사가 경쟁적으로 스튜어디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아시아나항공 스튜어디스의 유니폼이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의 공식입장은 "굳이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기내에서 바지를 입은 스튜어디스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간극이 있었다.
이 같은 기존관습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2012년 6월 공공운수노조연맹 아시아나항공지부에서 치마의 길이부터 귀걸이의 크기나 재질, 매니큐어의 색상, 눈화장의 색깔까지 회사가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적이 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2013년 객실여승무원에게 바지 근무복을 지급하기에 이르렀다. 창립 25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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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국적항공사 중 객실여승무원에게 치마 유니폼만 고집하는 곳은 없어졌다. 1988년 창립이후 '아름다움', '단정함' 등을 강조하며 치마 근무복을 고집해온 아시아나항공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비로소 방침을 바꾼 것이다.
회사 설립과정에서 미국 국적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사람중심 종업원중심 경영을 교과서로 삼은 제주항공 경영진은 자사 객실승무원들의 2018년 4월1일 만우절 기내이벤트를 지켜보며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끼가 넘쳐나는 객실승무원들이 경영진의 묵인하에 신선한 반란(?)을 일으킨 이날 하루 동안 국내선과 국제선 모든 항공편에서 기존의 정형화된 모습이 아닌 한껏 개성 있는 차림새로 승객을 맞이한 것이다. 이 바람에 기내에서는 쪽머리가 아닌 머리를 풀어 헤친 스튜어디스, 검정색 선글라스를 쓴 스튜어디스, 안경을 쓴 스튜어디스가 등장해 그간 항공업계에서는 결코 용인되지 않는 파격적인 모습들이 연출되었다.
이는 새삼 스튜어디스들은 머리카락을 꽁꽁 싸매야 했고, 안경을 쓰지 못했던 것들을 역설적으로 반영한 퍼포먼스였다. 다시 말해, 2018년 3월31일까지는 국적항공기를 탄 그 어떤 승객도 기내에서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다거나 안경을 쓴 스튜어디스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아픈 현실을 의미했다.
제주항공은 만우절 기내 이벤트로부터 정확히 23일 후인 2018년 4월24일 객실승무원 서비스 규정을 변경했다. 먼저, 안경 착용과 네일케어를 허용했다. 당시에도 객실승무원이 안경을 쓰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었지만, 현장에서는 시력이 나쁜 객실승무원이 안경을 쓰지 않고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또 손톱에는 단색 매니큐어만 사용하도록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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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은 서비스 규정을 수정해 기존에 없던 안경 착용 허용을 추가하고 파손에 대비해 여분의 안경 혹은 콘택트렌즈를 소지하도록 했다. 손톱 관리에 대해서는 승객이 불편함을 느끼거나, 스쳤을 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과한 큐빅이나 스톤아트를 제외한 모든 색의 네일아트가 가능하도록 바꿨다.
이 같은 서비스 규정 변경은 객실승무원이 그간 제한사항으로 느끼던 불편을 덜어주고,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항공은 "야간비행이나 장거리비행시 눈이 충혈된 상태에서 억지로 콘택트렌즈를 끼고 비행에 나서는 객실승무원이 의외로 많다"며 "참아가며 하는 서비스보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즐겁고 행복한 상태의 서비스가 승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조치는 사실 객실여승무원에게 안경 착용을 허용한 단순한 규정 변경일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리면서 상상외로 반향이 컸다. 그리고 국내 대부분의 언론에서 의미를 더 담아 큰 뉴스로 내보냈다. 헤드라인도 자극적이었다. '안경 낀 승무원을 제주항공에서 볼 수 있다'는 제목을 붙였다. 뉴스는 대부분 "앞으로 제주항공 비행기에서 안경 쓴 승무원, 네일아트를 한 승무원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회사에서 안경을 끼지 말라는 규제는 없지만 암묵적으로 금기시하는 고정관념 탓에 안경을 착용한 여성직원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다"며 "이번에 항공사 여성의 안경 착용 규정으로 그동안 우리가 알게 모르게 관행처럼 따랐던 것에 물음표를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반응까지 더해졌다.
-양성진 항공산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