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저 해냈습니다" 폭풍 오열한 '28세 무명투수', 인고의 1553일→좌절은 희망이 됐다

잠실=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08.25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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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상규가 24일 두산전 승리 투수가 된 뒤 중계사와 인터뷰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저 해냈습니다."

스포츠가 매력적인 이유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야구 팬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28세 무명 투수의 스토리가 심금을 울린다.


이상규(28·한화 이글스)는 2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시즌 14차전에서 양 팀이 6-6으로 맞선 9회말 구원 등판해 2이닝 동안 21구를 던져 피안타 없이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호투해 승리를 챙겼다.

LG 트윈스 시절이던 2020년 5월 24일 KT 위즈전 이후 정확히 4년 3개월, 1553일 만에 누린 승리의 기쁨이다. 그리고 파란만장했던 많은 일들이 있어 더욱 이상규에겐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1승이다.

2015년 2차 7라운드 70순위로 LG의 지명을 받았으나 2019년이 돼서야 1군에 등록됐다. 2020년 5월 고우석이 빠진 마무리 자리에 올라 2승 4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ERA) 1.46으로 아름다운 한 달을 보내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3패만 보태며 ERA도 6.68로 마쳤다.


2021년 7경기 출전에 그쳤고 2022년엔 단 한 번도 1군 콜업을 받지 못했다. 결국 2023시즌을 앞두고 육성선수로 전환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군의 부름을 받고 다시 정식 선수로 등록돼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지만 불펜진이 탄탄한 LG에서 그의 자리는 없어보였다. 8경기 출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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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가 두산전 역투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이후 LG의 35인 보호명단에서 제외돼 2차 드래프트 시장에 나오게 됐고 불펜 보강이 필요하던 한화는 보상금 4억원을 들여 그를 데려왔다. 프로 6년 차 그의 올 시즌 연봉은 4400만원. 억대 연봉 선수들이 넘쳐나고 신인 최저 연봉이 300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그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는 금액이다.

6월 김경문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야 드디어 1군에서 기회를 잡았다. 퓨처스에서도 22경기 2승 1패 3세이브 4홀드 ERA 3.28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 결국 8월 다시 콜업돼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알려가고 있다.

승리를 따내는 과정도 드라마 같았다. 2-0으로 앞서가던 한화는 2-2 동점을 허용했고 7회 다시 달아났으나 8회 4실점하며 역전을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필승 불펜 김서현과 마무리 주현상까지 모두 무너졌다. 선발까지 7명의 투수를 활용한 뒤 이상규가 9회말 두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 정수빈에게 볼넷을 허용했고 희생번트로 1사 2루에 몰렸다. 양의지와 승부를 피하며 자동 고의4구로 1루를 채웠다. 양석환을 상대로 집요하게 바깥쪽 커터 승부를 펼쳤고 포수 파울플라이를 유도했다. 김태근에게도 커터로 3루수 땅볼을 이끌어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10회초 타선이 앞서가는 1점을 낸 뒤 제 손으로 승리를 확정짓기 위해 다시 마운드에 섰다. 더욱 힘을 냈다. 강승호와 전민재를 상대로 빠른 공 위주의 승부를 펼쳤고 둘 모두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서예일과도 힘으로 맞붙었다. 이번에도 결정구는 직구. 포수 파울플라이로 팀의 2연승을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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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왼쪽)가 제 손으로 승리를 확정한 뒤 김경문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경기 후 "역전을 허용한 뒤에도 선수들이 하나가 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역전승을 일궈냈다"며 "선수들 모두 칭찬하고 싶고 오랜 만에 승리 투수가 된 이상규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중계방송사와 인터뷰 주인공으로 나선 이상규는 이상훈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질문에 눈시울을 붉어지더니 펑펑 울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관중석에선 "울지마"라는 응원의 구호가 터져나왔다.

이후 취재진과 만나 그의 입을 통해 그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이상규는 "지금 느낌이 어떤지 이상훈 위원님께서 여쭤보셔서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말했다. LG 시절 승리도, 세이브 경험도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 경기가 진행될 때였다. 그는 "당시엔 팬이 없어서 이런 걸 못 느꼈는데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이렇게 느끼게 돼 감정이 북받쳤던 것 같다"고 전했다.

쉽지 않은 시간을 거쳤다. 이상규는 "한 번 육성선수로도 내려갔었기 때문에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이 컸다. '나도 이제 잘리는 건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도 "그걸 극복하고 여기 와서 팬들도 많은 곳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색다르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화행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처음엔 많이 울었다. 어떻게 보면 LG에서 엔트리에서 제외됐기에 이쪽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이기에 많이 슬펐다"면서도 "여기 와서 좋은 분들을 만나 다시 시작하니까 괜찮았다.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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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가 경기를 끝낸 뒤 포효하고 있다.
핵심 불펜 투수들이 무너진 터였지만 이상규는 "(부담감)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다. 마운드에 올라가서 제 공을 못 던지는 날들이 더 많았기에 내 공을 던지자는 생각만 했다"며 "항상 감독님과 코치님도 '너에게 결과를 바라는 게 아니니까 자신감 있게만 던져라'라고 하셔서 그 생각만 갖고 자신감 있게 던지자는 생각으로만 올라갔다. 오늘도 '네가 공이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결과가 계속 안 좋은 것이니까 자신감 있게만 던져라'는 말을 해주셨다"고 등판 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승리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자신을 믿어주고 기회를 준 김경문 감독과 양상문 투수 코치였다. 그는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이렇게 올려주셨고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햇다. 자신감 있게 저를 기용해 주신 것도 너무 감사드리고 저번에 류현진 선수 승리를 한 번 날렸기 때문에 믿음을 드리고 싶었다"며 "'저 해냈습니다', '감독님, 코치님 사랑합니다'라고 전하고 싶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뜨거운 팬들의 성원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표현했다. "타 팀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너무 열정적이라는 걸 다시 느꼈고 팬들이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응원처럼 정말 행복하게, 강하게 응원해 주셔서 너무 설렜다"고 말했다.

어쩌면 28세 무명 투수의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되는 승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상규의 욕심은 크지 않았다. "필승조 같은 걸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마운드에 올라가서 던지라고 하면 씩씩하게 던질 것"이라며 "항상 꾸준하고 싶다. 이게 오늘만의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박한 소망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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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가 경기 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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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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