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팀원 없는 나는 없다" 니퍼트 눈물의 은퇴식, 끝까지 특별했던 외인의 '팀 퍼스트' [잠실 현장]

잠실=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09.1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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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퍼트가 14일 KT전 이후 진행된 은퇴식에서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팬이 없는 나는 없습니다. 팀원이 없는 나는 없습니다. 가족이 없는 나는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모든 것을 빚지고 있습니다."

더스틴 니퍼트(43)는 1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KT 위즈와 시즌 최종전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경기가 모두 종료된 뒤에도 대부분의 팬들이 자리를 뜨지 않았고 니퍼트의 은퇴 행사를 함께 했다.

'특별 엔트리' 규정으로 경기 출전이 기대됐지만 시즌 막판 치열한 순위 경쟁 속에서 2-1로 승리를 거두며 니퍼트의 등판 기회는 사라졌다. 스스로도 마운드에 오르길 열망했지만 팀 승리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하던 니퍼트는 2011년 두산 유니폼을 입고 2017년까지 활약한 뒤 2018년 KT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KBO리그에서 8년을 보낸 그는 214경기에서 102승 51패 1홀드 1082탈삼진, 평균자책점(ERA) 3.59을 기록했다. 역대 최장수 외인이자 100승과 1000탈삼진을 동시에 기록한 유일한 외국인 선수다.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로 꾸준한 활약을 펼쳤고 2015년 부상으로 주춤하긴 했으나 두산의 4번째 우승을 이끈 뒤 이듬해엔 22승을 거두며 최강 선발진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아 V5를 이끈 뒤 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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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퍼트(오른쪽)가 시구 후 양의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빼어난 투구는 물론이고 모범적인 태도로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까지 담당했던 투수다. 두산 팬들은 그럴 외국인 선수 그 이상으로 여기고 뜨거운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2018년 재계약을 맺지 못하고 KT로 떠났고 그해 커리어를 마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은퇴식이 무기한 연기됐고 두산을 떠난지 무려 7년 만에 잠실에서 은퇴식을 치르게 됐다.

경기를 앞두고 70여명의 팬들과 만나 사인회에 나선 니퍼트는 시종일관 웃는 모습으로 하루를 보냈다. 시구자로 나서 공을 받은 양의지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고 5회말 종료 후엔 양 팀 선수단으로부터 특별한 의미가 담긴 액자와 유니폼 등을 받았다.

경기 종료 후 진행된 행사는 Debut(데뷔), Dedicate(헌신하다), Drama(드라마), Destiny(운명), Dear(사랑하는)이라는 테마에 맞춰 순서대로 진행됐다.

불펜에서 니퍼트가 등장(Debut)하며 시작된 행사는 2015년, 2016년 우승을 이끈 활약상에 대한 영상(Dedicate)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를 함께 한 김재호와 허경민, 정수빈은 니퍼트에게 다가가 꽃다발을 전달했다.

이어 2016년 우승을 함께 한 또 다른 동료 김재환과 함께 판타스틱4를 이뤘던 유희관까지 등장해 니퍼트와 조우했다(D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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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퍼트(왼쪽에서 3번째)가 은퇴식에서 과거 동료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수빈, 허경민, 니퍼트, 김재호. /사진=김진경 대기자
운명(Destiny)이라는 테마에는 가장 잘 어울리는 그의 영혼의 파트너 양의지가 나섰다. 이전까지 울음을 잘 참아온 니퍼트는 양의지와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남달랐던 애정을 보였다.

편지의 서두에 쓰이는 Dear에선 두산 선수단이 니퍼트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이어 니퍼트가 마이크를 잡고 끝 인사를 전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야구장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한 니퍼트는 보다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이후 영어로 인사를 남겼다.

"은퇴는 기본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거나, 직장을 떠나는 일"이라며 "저에게 야구는 직업인 동시에 언제나 제 삶의 일부일 것이다. 그래서 작별 인사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자녀들, 아내, 두산 팀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니퍼트는 "(2011년) 당시만 해도 양측 모두 우리가 어떤 일을 해낼지 전혀 몰랐지만, 8년을 함께한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었다"며 "두산에서 첫 시즌을 보낸 뒤, 저는 앞으로 다른 팀에서 뛰고 싶지 않았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다. 2011년 첫 시즌 후 13년이 지났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두산 베어스 유니폼이 마지막 유니폼이 될 것이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선수 생활을 했던 KT에도 감사 인사를 전한 니퍼트는 자신에게 큰 힘이 됐던 통역사와 팀 선수들에 대한 감사인사도 전했다. 니퍼트는 "여러분은 저의 전부"라며 "첫날부터 저를 두 팔 벌려 환영해줬고, 가족처럼 대해줘 감사하다. 제 등 뒤를 지켜주며 허슬 넘치는 플레이만을 보여준 점에 감사하다. 제가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제 투구가 여러분 모두를 자랑스럽게 만들었길 바란다. 팀원들이 없었다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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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퍼트를 헹가래 치는 동료들. /사진=김진경 대기자
이어 양의지에 대해선 "양의지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의 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단순히 감사하다는 표현으로는 제 마음을 전하기에 부족하고 또 부족할 것"이라며 "투수들은 함께 하는 포수의 능력만큼 활약한다. 양의지와 호흡을 맞춘 것은 행운이다. 양의지와 함께 상대 라인업을 분석하던 모습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추억이다. 고마워 내 형제여"라고 말했다.

끝으로 팬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니퍼트는 "여러분 모두는 우리가 사랑하는 야구를 할 수 있는 이유"라며 "경기 승패와 관계없이 언제나 꿋꿋하게 저를 응원해줬다. 저의 뒤에서 제가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매일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여러분은 제 마음 속에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고 소감을 마쳤다.

편지를 낭독하며 몇 차례나 눈시울을 붉히고 말을 이어가지 못했던 니퍼트가 낭독을 마치자 주위로 동료 선수들이 몰려들었고 기념촬영 후 헹가래 치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후 니퍼트는 가족들과 함께 오픈카에 올라 타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팬들은 연신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뜨거운 작별을 고했다.

다시 마운드로 올라선 니퍼트는 동서남북 관중석의 모든 방향을 향해 큰절을 올린 뒤 마운드에 입맞춤을 했다. 박정원 구단주도 자리를 방문해 니퍼트와 인사를 나눴고 동료들은 끝으로 니퍼트에게 물 세례를 퍼부으며 유쾌한 마무리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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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퍼트가 마운드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사진=김진경 대기자




■ 니퍼트 은퇴사 전문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야구장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요한 세부 사항을 놓치지 않도록 영어로 연설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하 영문 번역본)

은퇴는 기본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거나, 직장을 떠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야구는 직업인 동시에 언제나 제 삶의 일부일 것입니다. 그래서 작별 인사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들, 케이든, 오브리, 리바이, 오웬에게는 미안함을 전합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많은 것들을 놓쳤지만, 아이들은 저를 응원해주고 사랑을 보내줬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사랑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며, 아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만회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제 아내 선희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야구선수와 결혼하는 것과 그 결혼 생활 자체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제 아내는 저를 지지해줬습니다. 제가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지 언제나 알고 있었습니다. 여보, 고맙고 사랑해요!

두산 베어스에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2011년 계약 이전까지, 저는 KBO리그나 두산베어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양측 모두 우리가 어떤 일을 해낼지 전혀 몰랐지만, 8년을 함께한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두산에서 첫 시즌을 보낸 뒤, 저는 앞으로 다른 팀에서 뛰고 싶지 않았습니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는 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2011년 첫 시즌 후 1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두산 베어스 유니폼이 마지막 유니폼이 될 것입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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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왼쪽부터), 니퍼트, 유희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다음으로 KT 위즈 팀에도 감사합니다. 2017시즌이 끝나고 두산을 떠났을 때, 저는 좌절한 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선수로서 충분히 뛸 수 있었고, 여전히 경기에 나서고 싶었을 때 KT가 저를 도와줬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은 선수임을 알았음에도 여전히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 믿어줬습니다. KT가 없었다면 외국인선수 최초의 100승-1000탈삼진 기록도 없었을 것입니다. 함께한 시간이 1년뿐이라 아쉽지만, 제 곁에 아무도 없을 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람들은 제가 두산 2년차 때 통역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이제 '남현'과 '용환'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남현과 용환은 제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던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는 제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확신을 줬고, 제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해줬습니다. 남현과 용환을 비롯한 모든 통역분들의 우정이 제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저를 위해 해준 모든 것들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다음은 제 팀원들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전부입니다. 첫날부터 저를 두 팔 벌려 환영해줬고, 가족처럼 대해줘 감사합니다. 제 등 뒤를 지켜주며 허슬 넘치는 플레이만을 보여준 점에 감사합니다. 제가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제 투구가 여러분 모두를 자랑스럽게 만들었길 바랍니다. 팀원들이 없었다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등판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저는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양의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간단하게, 양의지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의 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감사하다는 표현으로는 제 마음을 전하기에 부족하고 또 부족할 것입니다. 투수들은 함께 하는 포수의 능력만큼 활약합니다. 양의지와 호흡을 맞춘 것은 행운입니다. 양의지와 함께 상대 라인업을 분석하던 모습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추억입니다. 고마워 내 형제여!

끝으로 팬 여러분께 진심을 담아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우리가 사랑하는 야구를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KBO리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팬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언제나 놀랍습니다. 경기 승패와 관계없이 언제나 꿋꿋하게 저를 응원해줬습니다. 저의 뒤에서 제가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매일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여러분은 제 마음 속에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팬이 없는 나는 없습니다. 팀원이 없는 나는 없습니다. 가족이 없는 나는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모든 것을 빚지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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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두산 선수들. /사진=김진경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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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스포츠의 감동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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