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멜 로하스 주니어가 1일 수원 SSG전 8회 말 무사 1, 3루에서 역전 스리런을 치고 더그아웃을 바라보고 있다. |
KT는 1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펼쳐진 2024 신한 SOL 뱅크 KBO 리그 5위 타이브레이커 게임(5위 결정전)에서 SSG 랜더스에 4-3으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다.
이보다 극적인 결과는 없었다. KT는 선발 투수 엄상백이 4⅔이닝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2실점으로 상대 선발 로에니스 엘리아스(6이닝 1실점)에 우위를 점하지 못하며 경기를 어렵게 풀어갔다. 7회까지 KT 타선이 낸 점수는 1회 초 로하스 주니어의 선제 솔로포뿐이었다.
하지만 1-3으로 끌려가던 8회 초 KT 이강철 감독의 신들린 대타 기용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선두타자 심우준이 안타를 치고 나가자, SSG는 마운드를 노경은에서 김광현으로 교체했고 KT도 3타수 무안타의 김민혁 대신 오재일을 내는 강수를 뒀다. 오재일이 안타를 쳐 무사 1, 3루가 됐고 김광현의 3구째 체인지업을 때린 로하스 주니어의 타구는 좌중간 담장을 크게 넘었다. 4-3 역전을 만드는 홈런이었다. 이후 SSG가 동점을 만들지 못하며 KT의 기적 같은 승리가 완성됐다.
이 경기 수훈 선수는 단연 로하스 주니어였다. 그는 "팀이 승리하는 데 도움이 돼 기쁘다. 홈런을 친 것도 그렇고 우리가 또 한 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 팬분들의 응원에 항상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 있어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8회 홈런은 예상된 시나리오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 결과였다. 로하스 주니어는 "올해 심우준이 출루하면 득점하는 우리만의 공식이 있어서 어떻게든 출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팀에서 제일 타격감이 좋은 김민혁을 대신해 오재일이 나가 많이 놀랐다. 감독님은 정말 천재라고 생각한다"고 떠올렸다.
이어 "김광현 선수가 등판할 거라 생각해 어떻게 대처할지 침착하게 임했다. 경기장의 함성은 하나도 안 들렸다. 투수와 승부에만 집중했고 최대한 강하게 쳐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김광현 선수가 시즌 중 내게 볼 배합을 잘 가져가서 특정 구종이 아닌 특정 로케이션을 노렸다. 그런데 내가 노린 로케이션보다 공이 조금 높게 들어왔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잘 맞은 타구가 나온 것도 같다"고 설명했다.
KT 멜 로하스 주니어가 1일 수원 SSG전 8회 말 무사 1, 3루에서 역전 스리런을 치고 홈런을 직감한 순간. |
맞은 순간 홈런을 직감할 정도의 타구였다. 그래서 타구가 아닌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그런데 확신하지 못하는 더그아웃 안 동료들에게 로하스 주니어는 약간 실망했다. 그는 "공이 맞았을 때 날아가는 걸 보지 않았다. 맞는 순간 넘어갔다고 생각했고 더그아웃을 봤는데 동료들이 반신반의하는 것 같더라"고 웃으면서 "그걸 보며 '나 로하스인데 내 힘을 못 믿나' 싶었다"고 말해 인터뷰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MVP다운 자신감이었다. 로하스 주니어는 7년 전 KT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2017년 총액 40만 달러(약 5억 원)에 KBO 리그에 첫발을 디딘 로하스 주니어는 4시즌 동안 511경기 타율 0.321, 132홈런 409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82로 신생팀 KT가 강팀으로 올라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마지막 해였던 2020년에는 142경기 타율 0.349, 47홈런 135타점 OPS 1.097로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고 KT의 창단 첫 가을야구를 이끌었다. 이때의 성적을 바탕으로 일본프로야구(NPB)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고 2년간 활약했다. 그러나 뼈아픈 실패를 맛봤고 도미니카 윈터리그와 멕시코 리그를 거쳐 올 시즌을 앞두고 총액 90만 달러(약 12억 원)에 복귀했다. 수원을 떠난 지 4년 만이었다.
돌아온 친정팀 KT는 그가 떠났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없는 동안에도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한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2021년)도 차지했다. 그래서 시즌 전 목표도 자신 있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야기했다.
로하스 주니어는 "시즌 초반부터 목표는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5위가 한국시리즈서 우승할 전례가 없기 때문에 어려운 길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우리는 시즌 중 두산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오늘 경기를 통해 선수들이 자신감도 얻었다"고 구성원을 믿었다.
KT 멜 로하스 주니어(오른쪽)가 1일 수원 SSG전 8회 말 무사 1, 3루에서 역전 스리런을 치고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
동료들을 향한 신뢰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KT가 꼴찌에서 5위까지 치고 올라오는 원동력이었다. 올 시즌 KT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4월 21일 시점에서도 10위에 머물렀다. 6월을 마칠 무렵에도 9위에 머물렀으나, 이후 차근차근 한 계단씩 뛰어올라 9월 초에는 5강권에 안정적으로 안착했다.
이 과정에 로하스의 역할이 지대했음은 분명하다. 초반 3~4월에는 10홈런 25타점을 몰아치며 꼴찌로 추락한 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하위권 탈출에 몸부림치던 7월에는 타율 0.413(80타수 33안타)으로 꾸준한 활약을 하며 타선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했다. 9월 들어 조금씩 지친 모습을 보였으나, 그동안 주춤했던 동료들이 폭발적인 기세를 보이면서 로하스 주니어의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졌다.
로하스 주니어는 그렇게 하나 된 팀의 힘을 믿는다. 그는 올해 KT의 저력을 묻는 말에 "우리가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마법을 부려서 여기까지 왔다"고 농담하면서 "우리가 슬로 스타터로 알려져 있다. 더 좋은 순위로 시즌을 마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번에도 후반기에 강한 모습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팀이 어려울 때 잘 뭉치는 강한 믿음이 후반기에 확 치고 나갈 수 있었던 이유 같다"고 힘줘 말했다.
공교롭게도 와일드카드 결정전 상대가 2020년 플레이오프에서 KT를 무너트린 두산이었다. 로하스 주니어는 "내가 그 시리즈에서 마지막 아웃을 당한 기억이 난다. 그 쓰라린 기억을 돌려주고 싶다. 그때가 우리의 첫 포스트시즌이어서 안 풀리는 것도 있었는데 그 이후 계속 가을야구에 갔다. (그렇게 경험이 쌓인 만큼) 우리가 가진 모든 실력을 보여줄 수 있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KT 멜 로하스 주니어가 1일 수원 SSG전 8회 말 무사 1, 3루에서 역전 스리런을 치고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