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한 SOL 뱅크 KBO리그' 키움-KIA전이 지난 8월 1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키움 최주환이 9회말 끝내기 역전 투런포를 날리고 홈인한 후 동료들로부터 물폭탄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
나이와 연차에 상관없이 실력만 있다면 프로 1년 차부터 주전을 차지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이유다. 강정호(37)-박병호(38·삼성)-김하성(29·샌디에이고)-이정후(26·샌프란시스코)로 이어지는 메이저리거 계보도 어린 선수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영웅 군단을 원하는 건 신인만이 아니다. 기회를 찾기 위해 나선 베테랑들에게도 키움은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팀이다. 하지만 매년 자의 혹은 타의로 구단을 떠나는 선수가 십수 명이 되는 상황에서 키움도 아무나 데려오진 않는다. 일단 현재 팀 로스터에 부족한 포지션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그 가능성을 가늠한다. 여기에 퓨처스리그에서 선수뿐 아니라 코치들의 자질과 워크에식도 확인하는 키움은 현재 팀에 조성된 분위기에 잘 녹아들거나 도움이 될 선수들을 데려와 확인한다.
이번에 영입한 김동엽(34)도 그런 케이스다. 김동엽은 2018시즌 종료 후 KBO 최초로 이뤄진 삼각 트레이드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당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소속이던 김동엽은 삼성으로, 삼성 소속이던 포수 이지영은 넥센(현 키움)으로, 넥센 소속이던 외야수 고종욱이 SK로 향했다.
키움 고형욱 단장은 최근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그때도 김동엽 선수를 원했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삼성에 가서도 원했지만, 지난해까진 트레이드 불가 자원이었다"고 떠올리면서 "장타력도 장타력이지만, 김동엽의 성격이 우리 팀과 정말 잘 맞을 것 같았다. 차분하고 내성적인 부분도 있지만, 묵묵하게 열심히 하는 선수다. 우리 팀은 기회를 줄 때 확실히 주고 더그아웃 분위기가 밝다 보니 김동엽 선수도 잘 맞을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키움 이용규(왼쪽). /사진=김진경 대기자 |
성공 사례도 여럿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이용규(39)다. 2020시즌 종료 후 한화 이글스에서 나온 그를 키움은 연봉 1억 원, 옵션 5000만 원에 영입했다. 이용규는 키움 첫해인 2021시즌 133경기 타율 0.296, 1홈런 43타점 88득점 17도루, 출루율 0.392 장타율 0.372로 펄펄 날았다. 키움도 이용규의 2022시즌 연봉을 4억 원으로 대폭 인상해 퍼포먼스에 대한 보상도 확실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2시즌 종료 후 두산에서 방출된 임창민(39)도 지난해 키움에 합류해 반등한 후 생애 첫 FA 자격을 따냈다. 51경기 2승 2패 1홀드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51을 달성했고 2년 총 8억 원의 계약을 맺고 삼성으로 떠났다.
지난 5일 키움과 2+1+1년 최대 12억 원의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한 최주환(37)도 마찬가지다. 최주환은 풀타임 1루수로 활약하면서 1027⅔이닝 동안 단 6실책만 하는 안정감 있는 수비로 어린 내야수들의 성장을 도왔다. 좋지 않던 전반기 타격 성적도 후반기에는 타율 0.300(213타수 64안타) 7홈런 4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45로 명성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내년을 기대케 했다.
계약 후 스타뉴스와 연락이 닿은 최주환에 따르면 베테랑들의 잇따른 반등에도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주환은 지난해 SSG의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후 KBO 2차 드래프트 전체 1번으로 키움으로 팀을 옮겼다. 타자 친화 구장에서 홈런이 잘 나오지 않는 구장으로 온 탓일까. 전반기에는 67경기 타율 0.223(269타수 60안타), 6홈런 43타점, OPS 0.611로 부진했다.
하지만 코치진의 믿음과 격려가 지친 베테랑도 다시 일어서게 했다. 최주환은 "그때 홍원기 감독님의 존재가 컸다. 내가 안 좋을 때 감독님은 '그러다가도 언젠간 된다. 괜찮으니까 계속해봐'라고 말씀하면서 편하게 해주셨다.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내겐 그 한마디가 참 컸다. 그래서 계약 후에도 감독님께 바로 연락을 드렸다"며 "김창현 수석코치님이나 오윤 타격코치님도 내가 힘든 상황에서 압박을 주기보단 더 긍정적인 말과 함께 나를 믿고 기다려주셨다. 그게 전반기 부진을 극복한 이유였다"고 덧붙였다.
키움 홍원기 감독. /사진=김진경 대기자 |
최주환. /사진=키움 히어로즈 제공 |
베테랑 맞춤형 지도도 빛을 발했다. 최주환은 최근 몇 년간 1루 수비에 나섰지만, 풀타임 1루 수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스프링캠프부터 1루에서 많은 펑고를 받았으나, 여름부터는 그 훈련이 뚝 끊겼다.
최주환은 "(시즌 후 스카우트로 보직 이동한) 권도영 1군 수비코치님이 체력 안배를 정말 잘해주셨다. 나에게 맞게 훈련 강도를 서서히 줄였다. 시즌 초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받다가 여름이 다가오자 일주일에 한 번만 받았다. 여름에는 아예 받지 않고 경기에 나선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펑고를 이렇게까지 안 받아본 건 처음이라 괜찮나 싶었다. 그때 권도영 코치님은 '너 같은 경우에는 체력만 잘 관리하면 괜찮다'고 믿어주셨다. 차라리 훈련 때 아낀 체력으로 경기에서 퍼포먼스를 내라고 하셨다. 어떻게 보면 나도 1루를 전문적으로 한 건 올해가 처음인데 그런 부분에서도 배려를 느꼈고 감사했다"고 진심을 전했다.
2024시즌 종료 후에도 키움은 SSG를 나온 강진성(31)과 삼성에서 제외된 김동엽을 영입했다. 강진성과 김동엽 모두 홈런 생산과 장타에 강점이 있는 선수들이지만, 전 소속팀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선수들 역시 이곳에서 또 다른 드라마를 쓸 수 있을 것으로 키움은 기대하고 있다.
고형욱 단장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선 장타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강진성, 김동엽, 최주환 모두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라 생각했다"며 "선수단에는 여러 유형의 선수가 골고루 있어야 한다. 감독이 쓰고 싶은데 못 쓰는 상황은 나와선 안 된다. 다양한 선수들을 준비해 최대한 활용 폭을 넓히고 현장에서 원활하게 투입할 수 있는 로스터를 꾸리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