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大盜), 하늘로 떠났다' 리키 헨더슨 향년 66세로 별세, MLB 추모 이어졌다

양정웅 기자 / 입력 : 2024.12.22 13:46
  • 글자크기조절
image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이 리키 헨더슨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MLB.com 갈무리
메이저리그(MLB) 통산 도루 1위를 지랑하는 전설적인 대도(大盜) 리키 헨더슨이 세상을 떠났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 등 미국 언론은 22일(한국시간)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였던 리키 헨더슨이 66세 생일을 앞두고 별세했다"고 전했다. 사인은 폐렴으로 알려졌다.


헨더슨은 한 시대를 풍미한 타자였다. 1979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데뷔한 그는 2년 차인 1980년 100도루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7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도루왕에 올랐다. 특히 1982년에는 빅리그 한 시즌 최고 기록인 130도루를 성공했다.

1985년 뉴욕 양키스 이적 후에도 여전한 기량을 선보인 헨더슨은 1989년 친정 오클랜드로 돌아와 우승반지를 차지했다. 이어 1990년에는 136경기에서 타율 0.325 28홈런 61타점 119득점 65도루 OPS 1.106이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아메리칸리그 MVP에 올랐다. 그는 1993년 토론토로 트레이드돼 생애 2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다.

야구선수로는 환갑에 가까운 40세를 전후로도 헨더슨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1998년에는 39세의 나이로 66도루로 아메리칸리그 1위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121경기에서 타율 0.315의 성적을 올렸다. 2003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25시즌을 뛴 그는 통산 3081경기에서 타율 0.279(10961타수 3055안타), 297홈런 1115타점 2295득점, 1406도루, 출루율 0.410 장타율 0.419, OPS 0.820의 성적을 거뒀다.


헨더슨은 완성형 리드오프로 평가받는다. 메이저리그 통산 도루 1위(1406도루)에 오를 정도로 빠른 발을 지녔고, 삼진(1694개)보다 볼넷(2190개)이 훨씬 많을 정도로 뛰어난 선구안도 가졌다. 여기에 전성기에는 한 시즌 20홈런도 세 차례 기록할 만큼 펀치력도 보유했다. 이에 그는 은퇴 후 지난 2009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94.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첫 턴에 헌액됐다.

image
리키 헨더슨이 9월 27일(한국시간) 애슬레틱스의 오클랜드 마지막 경기에서 시구를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헨더슨이 가장 많이 뛴(1704경기) 애슬레틱스 구단은 그의 업적을 기려 등번호 2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고, 홈구장이던 오클랜드 콜리세움의 명칭을 리키 헨더슨 필드로 명명하기도 했다. 헨더슨은 지난 9월 27일 에슬레틱스의 콜리세움 마지막 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서 팬들의 박수를 받았고, 시즌 마지막 게임인 시애틀 원정에서는 한때 뛰었던 두 팀의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했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한 모습이었다.

애슬레틱스는 공식 SNS를 통해 "헨더슨은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야구장에서 스스로를 증명했고, 기록은 영원히 야구 역사에 남을 것이다"고 추모했다. 이어 "그의 죽음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헨더슨의 빈자리는 애슬레틱스 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도 느껴질 것이다"고 애도를 표했다.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자 헨더슨과 오클랜드 시절 한솥밥을 먹은 데니스 애커슬리도 자신의 SNS를 통해 "나의 친구이자 팀 동료이고, 명예의 전당에 오른 헨더슨과 이별이 너무나 슬프다"며 "나와 함께 뛴 선수 중 최고였다"고 추모했다. 1989년 헨더슨의 팀 동료이자 '머니볼'로 잘 알려진 빌리 빈 애슬레틱스 수석 고문은 "헨더슨은 역대 최고의 오클랜드 선수였다. 팀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기자 프로필
양정웅 | orionbear@mtstarnews.com

안녕하세요, 양정웅 기자입니다. 현장에서 나오는 팩트만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