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투수가 왜?" ML 28승→'연봉 반토막'에도 두산행, 어빈은 '제2의 플렉센'을 꿈꾼다

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12.3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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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와 계약서를 쓰고 있는 콜 어빈.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이 투수가 왜?"

야구 팬들은 물론이고 야구계, 심지어 두산 베어스 관계자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메이저리그(MLB) 통산 28승에 빛나는 콜 어빈(30)의 두산행은 그만큼 깜짝 뉴스였다.


지난해 5위에서 4위로 한 계단 올라왔지만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던 한 해였다. 가장 큰 원인은 외국인 투수의 부상과 부진이었다. 대체 외국인 선수까지 총 4명이 선발 마운드를 지켰으나 그들이 남긴 건 13승에 불과했다. 10구단 중 가장 외국인 투수의 도움을 받지 못한 구단이었다.

시즌 종료 후 두산은 자유계약선수(FA) 영입보다 외국인 선수 구성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콜 어빈이라는 엄청난 커리어를 기록한 선수를 데려왔다. 토마스 해치(30)와 계약을 맺었지만 메디컬 테스트 결과 불안함이 확인됐고 발 빠르게 잭 로그(28)로 교체를 했다. 외국인 타자도 MLB에서 45홈런을 날린 제이크 케이브(32)로 대체했다. 키움과 함께 외인을 전원 교체한 구단은 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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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볼티모어에서 활약한 어빈. /AFPBBNews=뉴스1
특히나 어빈이 기대를 모은다. 1년 차 최고액인 100만 달러(14억 7500만원)를 보장받은 어빈은 신장 193㎝·체중 108㎏의 건장한 신체조건을 지닌 좌투수로 2016년 MLB 신인 드래프트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5라운드 지명을 받았고 2019년 데뷔해 6시즌 통산 134경기(선발 93경기)에 등판해 593이닝 28승 40패, 평균자책점(ERA) 4.54, 434탈삼진을 기록했다. 2024시즌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뛰며 29경기(선발 16경기) 6승 6패, 평균자책점(ERA) 5.11, 111이닝 78탈삼진을 마크한 현역 빅리거다.


두산 베어스 관계자는 "어빈은 최근 4년간 메이저리그에서 90경기를 선발 등판한 전문 선발 유형의 투수"라며 "왼손 투수임에도 최고 구속 153㎞에 달하는 직구의 위력이 빼어나고 커브와 커터, 체인지업 등 변화구도 수준급이다. ML 통산 9이닝당 볼넷이 2.16개에 불과할 만큼 준수한 제구력을 갖춘 투수로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어빈의 영입을 주도한 두산 관계자는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어빈은 모든 팀들이 위시리스트에 넣을 수밖에 없는 선수"라며 "두산 베어스라는 좋은 브랜드 때문에 이렇게 우리 팀에 오게 돼 저도 굉장히 놀라우면서 반가웠다. 운이 좋았다.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던 부분이 어필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어빈의 한국행이 더 놀라운 것은 통산 커리어는 물론이고 올 시즌까지 빅리그에서 뛰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성적이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빅리그에서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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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두산에서 활약한 크리스 플렉센.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지난해 연봉 200만 달러(29억 4800만원)를 받았던 어빈을 절반의 연봉으로 데려왔다는 것 자체부터 선뜻 납득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두산 관계자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이유다.

그 이유는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무대를 거쳐 간 외국인 선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에릭 페디(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앨버트 수아레즈(볼티모어 오리올스), 메릴 켈리(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크리스 플렉센(시카고 화이트삭스) 등 MLB에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다가 KBO리그를 거쳐 '역수출 신화'를 이뤄낸 투수들이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두산 출신 플렉센도 있다. 2017년 빅리그에서 데뷔해 3시즌 동안 3승 11패 ERA 8.07로 부진했던 플렉센은 이듬해 두산에서 21경기 8승 4패 ERA 3.01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뒤 다시 미국 무대로 향했고 2021년 14승 6패 ERA 3.61로 맹활약했다. 현재까지도 선발로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두산 관계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미국으로 계속 역수출되고 있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저희도 플렉센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타 구단에서 꾸준히 사례가 나오며 현재 KBO의 위상이 많이 높아져 있다"며 "국내에 오려는 선수들이 항상 한국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에게 KBO에 대해 물어본다. 직접적으로 몰라도 선수들 사이에 거치다보면 연결고리가 생긴다. 그러면 국내 리그를 거친 선수들은 대부분 '기회가 있을 때 가라'고 다들 추천한다고 하더라. 어빈이나 케이브도 마찬가지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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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활약한 플렉센. /AFPBBNews=뉴스1
과거엔 일본프로야구(NPB)의 부름을 받지 못한 선수들이 오는 리그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젠 오히려 한국을 더 선호하는 선수들도 나오고 있다. NPB에선 외국인 선수라고 하더라도 충분한 적응의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KBO에선 기본적으로 충분한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외국인 선수들에겐 부담감을 덜 수 있는 장점이다. 그러면서도 국내에서 충분히 좋은 성적을 냈을 때는 얼마든지 다시 빅리그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게 커다란 흥미를 끄는 요소가 되고 있다.

더구나 이전 역수출 신화 선수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자신감을 찾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기를 추가해서 빅리그에서 성공을 거두는 사례도 있다는 점에서 KBO는 단순히 돈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특유의 열정적인 응원 문화, K팝 등으로 인해 바뀐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안전한 치안 문제 등도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고도 덧붙였다.

어빈도 페디, 플렉센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남기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종의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됐다. 외국인 선수라는 구조적 한계상 잘할 경우 오랜 기간 함께 머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페디와 같이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선수와 구단 모두에게 윈윈 효과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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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NC에서 뛰던 에릭 페디는 올 시즌 빅리그에 복귀해 밀워키-세인트루이스를 거치며 활약했다.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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