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시절의 CC 사바시아와 스즈키 이치로. /사진=뉴욕 양키스 공식 SNS |
사바시아와 이치로는 22일(한국시간) 발표된 2025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헌액 투표 결과에서 나란히 헌액 기준치(75%)를 넘겨 입성에 성공했다.
올해 총 28명의 선수가 후보에 오른 가운데, 이치로는 총 투표인단 394명 중 393명의 선택을 받아 무려 99.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역대 2번째 만장일치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데릭 지터(99.7%)에 이은 역대 타자 2위 기록을 세우게 됐다. 사바시아 역시 86.8%를 기록하며 무난하게 헌액됐다.
사바시아와 이치로는 한때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2009년 뉴욕 양키스에 사바시아가 먼저 입단했고, 3년 뒤 이치로가 시즌 중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트레이드됐다. 두 선수는 2014년까지 2년 반을 함께 뛰었다.
하지만 한때는 신인왕을 두고 경쟁하던 사이이기도 했다. 2001년 빅리그 첫 시즌 사바시아는 17승 5패 평균자책점 4.39를 기록하며 루키로서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일본에서 온 이치로가 타율(0.350)과 안타(242개), 도루(56개)에서 1위에 오르며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MVP를 싹쓸이했다. 이치로가 신인왕 1위표 28개 중 27개를 가져간 가운데, 사바시아는 남은 1표를 얻어 2위에 올랐다.
CC 사바시아가 자신의 SNS에 스즈키 이치로와 있는 사진을 공유한 후 멘트를 남겼다. /사진=CC 사바시아 SNS 갈무리 |
사바시아는 2001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후 2008년 밀워키 브루어스, 2009년 양키스를 거쳐 19년 동안 빅리그 생활을 이어갔다. 통산 561경기에서 251승 161패 평균자책점 3.74, 3577⅓이닝 3093탈삼진 1099볼넷,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 1.26을 기록했다.
첫 시즌부터 화려하게 데뷔한 사바시아는 2013년까지 1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19승 7패 평균자책점 3.21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차지했고, 이듬해에는 밀워키에서 반시즌 동안 11승 2패 평균자책점 1.65의 성적을 거두며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5위에 올랐다.
2009년 양키스 이적 후에도 첫해 19승을 거두며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0년대 초반 이후 내리막길을 걷긴 했지만, 11년 동안 134승을 거두면서 팀에 기여했다. 부침 끝에 2017년 14승을 거두며 부활한 사바시아는 2019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CC 사바시아(오른쪽)가 명예의 전당 입성 확정 후 가족들과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욕 양키스 공식 SNS |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에 따르면 사바시아는 "쿠퍼스타운(명예의 전당이 위치한 곳)에 처음 갔을 때 '명예의 전당에 너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선수 시절 땐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가보니 '멋지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한 번의 투표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하다"고 말했다.
당초 사바시아는 2017년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다. 하지만 과거 빅리거이자 MLB 네트워크의 해설자인 해럴드 레이놀즈가 "250승과 3000탈삼진을 기록한 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갈 수 있다"고 설득해 2년 더 뛰었다고 한다. 사바시아는 "그가 비시즌에 연락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을 것이다"고 했다.
사바시아의 마지막 빅리그 투구는 지난 2019년 휴스턴과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4차전이었는데, 당시 그는 어깨 부상으로 강판당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당시를 돌아본 그는 "더 이상 던질 수 없을 때까지 던졌다"며 미련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CC 사바시아가 2019 ALCS 4차전에서 마운드를 내려가며 괴로워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