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관중들이 지난해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한화전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
최근 서울 건국대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2025년 KBO 기록강습회에선 유례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지된 2021~2022년을 제외하고는 리그 원년인 1982년부터 꾸준히 개최된 기록 강습회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수강생(105명)의 수가 남성(95명)을 앞지른 것. 강습회에서 만난 한 KBO 기록위원 A는 "예전에는 남성 수강생이 80%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확실히 여성 수강생이 늘어 올해는 성비가 거의 5대5로 맞았다"고 놀라워했다.
이는 최근 한국 야구에 불어닥친 여풍(女風)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2023년 1월부터 10월까지 프로스포츠 팬 2만 5000명(프로야구 9760명), 일반 국민 1만 명 등 총 3만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 조사'에 따르면 고관여 팬(구단 유니폼 보유자)으로 분류된 여성 팬 비율이 전년(2022년) 대비 38% 늘어났다. 그 중 키움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 신규 유입 팬 중 여성 비율이 90.3%, 81.2%로 1, 2위를 다투기도 했다.
자연스레 여성 팬들 사이에서 KBO 기록위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강습회에 처음 참여했다는 롯데 팬 손은서(25)씨는 "정말 재미있다.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가고 너무 재미있어서 친구들에게도 많이 추천했다"며 "전공은 이쪽이 아니지만, 기록원에도 관심이 생겼다. 사회인 야구에서라도 기록원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200명의 수강생이 18일 2025년 KBO 기록강습회에 참여해 경청하고 있다. /사진=김동윤 기자 |
KBO 공식기록원은 빠르면 각 구단의 시즌 전 연습경기를 시작으로 한국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약 9개월의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약 6개월의 144경기 페넌트레이스 기간에 1군과 2군 지방 출장도 소화해야 한다. 또 과거에는 선수나 코치진이 기록원에게 종종 항의하는 일이 있어 여성으로서 대처하는 데 어려운 점도 있었다고 한다.
진철훈 KBO 기록위원장은 최근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기록원 지원 자격에 여성이면 안 된다는 건 없다. 그동안은 어쩌다 보니 채용 과정에서 남성분들이 더 많이 채용됐을 뿐이다. 지난해도 면접을 한 10명 중 여성 지원자가 3~4명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과거에는 선수들이 기록원에게 직접 찾아와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아니고, 이의 신청 제도가 생겨 그럴 일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KBO 인턴 기록원이었던 조수민(28)씨는 그 몇 안 되는 기회를 경험한 여성 중 하나다. 2020년 KBO 기록강습회와 전문 기록 강습회를 통해 빠르게 실력을 쌓은 그는 2020년 후반기 3개월을 인턴 기록원으로 활약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나, 지난해 피치 클록 도입을 이유로 보조 기록원을 추가 채용했을 때 잠시 복귀하기도 했다.
조수민씨는 스타뉴스와 통화에서 "당시 KBO는 무관중 경기여서 인턴들은 테이블석에서 기록원 활동을 했다. 경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집중해 우리가 판단해야 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KBO 기록위원님들이 우리의 판단 이유를 묻고 해당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등 많이 알려주셔서 정말 많이 실력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수강생들이 18일 2025년 KBO 기록강습회에 참여해 경청하고 있다. /사진=김동윤 기자 |
KBO 공식 여성기록원이 적었던 이유에는 불규칙한 채용 일정도 있다. 15명 언저리에서 수를 유지하는 KBO 기록위원은 결원이 생길 때만 채용을 진행해 준비하는 데 시운도 따라야 한다. 조수민 씨는 "여자인 걸 차치하고 실질적인 기회 자체가 적다. 채용 공고가 몇 년에 한 번씩 뜨다 보니 그 부분이 가장 어렵다"며 "KBO 공식 기록원 취직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단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취미로도 하면서 그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여자라서 안 된다거나 기회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야구 규칙은 자주 바뀌니까 계속해서 연습하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아직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도전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미 여성들의 기록원 진출은 상당 부분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사회인야구다. 아마야구 관계자에 따르면 사회인 야구 남녀 기록원 비율은 7 대 3으로 그 수가 적지 않다. 경기당 4만원 언저리의 수당도 있어서 취미 삼아 혹은 KBO 기록원 도전을 위해 활동을 이어가는 여성들이 많다.
KBO도 이러한 여성들의 열정과 끈기를 모르지 않는다. 진철훈 위원장은 "야구에 관심을 갖는 여성분들이 많아진 걸 느낀다. 따라서 여성 기록원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여성분이 실력이 더 좋다고 하면 채용하는 데 안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개인적으로 오히려 그런 문은 더 열려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