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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전성시대 부활'을 목표로 했지만 방송 첫주 1% 시청률을 기록한 KBS 수목드라마 '킥킥킥킥'. 사진=KBS |
하지만 속내를 들여보다면 상황은 다소 다르다. '자발적 제작이냐?'는 질문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드라마 시청률 하락, 이에 따른 광고 판매 부진, 상승한 제작비 등이 맞물리며 기존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궁여지책으로 이같은 선택을 한다고 보는 시선이 많기 때문이다.
KBS는 새 수목드라마로 시트콤인 '킥킥킥킥'을 편성했다. 지난해 선보인 '개소리'로 주연 배우 이순재가 연말 연기대상을 수상했던 터라 연착륙에 성공했다고 보는 이도 있다. '킥킥킥킥'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지진희 역시 지난 5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시트콤은 제가 즐겨보는 장르고, 좋아해서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면서 의지를 내보였다.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시청률 경쟁은 그리 녹록지 않다. 1회가 2.1%로 출발했으나 2회는 1.0%로 반토막 났다. 기대를 갖고 1회를 지켜본 이들이 적잖았는데, 그들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다. 새로운 시청층이 유입되지 않은 반면 기존 시청층이 이탈했다.
한 때 시트콤 전성시대가 있었다. SBS는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성공시켰다. MBC '논스톱' 시리즈는 신인들의 등용문이 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당시 신인이었던 장나라, 조인성, 양동근, 하하 등이 스타덤에 올랐다. 정점은 '하이킥' 시리즈가 찍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어 '지붕뚫고 하이킥'이 제목처럼 시청률과 화제성 하이킥을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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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시트콤 전성시대를 연 '거침없이 하이킥', 사진=MBC |
하지만 이후 시트콤은 통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결국 크리에이터의 부재다. '하이킥' 시리즈를 비롯해 SBS 시트콤의 정점을 이끈 이는 김병욱 PD다. 그는 지상파 3사의 위세가 등등하고 드라마 평균 시청률이 10%를 훌쩍 넘기던 시절에도 시트콤 제작을 고집했다. 그리고 그 뚝심은 통했다. 등떠밀려서 만든 시트콤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과 애정, 그리고 노력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김 PD의 시트콤과 드라마 수난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만드는 시트콤이 사뭇 다른 결과를 내는 건 어찌보면 필연이다.
반면 "시트콤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쇼트폼 콘텐츠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긴 호흡의 드라마는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TV로 본방을 챙겨보는 것이 아니라 OTT로 공개되면 1.5배속으로 돌려보거나 건너띄기(skip)하며 보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시트콤은 쇼트폼과 기존 드라마의 중간 단계인 '중편 드라마'로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OTT 플랫폼도 여러차례 시트콤 제작을 시도했다.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를 비롯해 웨이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2022년 공개된 쿠팡플레이 '유니콘' 등이다. 물론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가능성은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은 '완성도'가 핵심이다. '하이킥' 시리즈도 처음부터 각광받은 것은 아니었다. 신인급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처음에는 기대치가 높지 않았으나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자연스럽게 시청률이 상승했다. 그 사이 출연자들은 죄다 스타가 됐다. 이런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양질의 PD와 작가를 영입하는 등 프로그램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결국 어느 정도의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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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10%를 넘으며 뜨거운 인기를 모으는 SBS 금토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 사진=스튜디오S, 이오콘텐츠그룹 |
최근 가벼운 터치의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가 늘고 있는 것도 드라마 불황과 관계 있다. 소위 말하는 '대작' 드라마나 사극은 제작 단가가 매우 높다. 웬만큼 성공을 거두지 않고는 시청률이 높아도 적자를 보기 일쑤다. 실제로 지난해 화제를 모은 몇몇 작품들도 손해를 면치 못했다. 결국 제작비 자체를 낮춰야 한다. 이를 위해 세트 제작이나 해외 로케이션, 컴퓨터 그래픽 등 후반 작업에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드라마를 지양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지난해 비교적 낮은 제작비로 만든 '선재 업고 튀어'와 최근 SBS '나의 완벽한 비서'가 각광 받는 반면, 우주를 배경으로 삼은 tvN '별들에게 물어봐'가 철저하게 대중의 외면을 받는 상황이 그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즉 '가성비 드라마'가 드라마 업계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천정부지 치솟던 배우들의 몸값도 흔들리고 있다. 해외 판매가 보장되는 몇몇 톱A급 배우들을 기용하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신선한 마스크의 신인을 기용하면서 제작비를 낮추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판단이다. 제작비 싸움에서 지상파나 종편 등 국내 방송사들은 더 이상 넷플릭스, 디즈니+와 같은 글로벌 OTT의 경쟁 상대가 못된다. 그러니 유명 한류스타들도 TV 편성되지 않더라도 OTT로 쏠리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결국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와 신인 발굴이 필수적이다. 스타로 장사하던 시대는 지났다. 시트콤이나 로맨틱 코미디 등 저비용 고효율 콘텐츠가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있는 출구는 없다. 그 출구의 문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 과감하게 신인 작가나 배우에 투자해야 한다. 아울러 몇몇 스타가 출연하기로 결정했다는 이유로 덜컥 편성을 주는 안일한 선택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