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5관왕' 켄드릭 라마의 '험블'이 맨시티 홀란을 저격했다

박정욱 기자 / 입력 : 2025.02.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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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의 골잡이 엘링 홀란이 지난 3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널과 2024-2025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4라운드 원정경기에서 후반 10분 1-1로 균형을 이루는 헤더 동점골을 터뜨린 뒤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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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한 뒤 기뻐하는 비욘세. /AFPBBNews=뉴스1


1.

지난 3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즈(GRAMMYS Awards)에서 비욘세와 래퍼 켄드릭 라마가 다관왕에 오르며 시상식을 빛냈다.


비욘세는 정규 8집 '카우보이 카터'(COWBOY CARTER)로 올해의 앨범 상을 '4전5기' 도전 끝에 품에 안은 것을 비롯해 흑인 가수 최초로 베스트 컨트리 앨범을 수상했고, 수록곡 'II 모스트 원티드'(II MOST WANTED)로 베스트 컨트리 듀오/그룹 퍼포먼스 상도 받아 3관왕에 오르며 자신의 그래미 수상 트로피를 35개로 늘렸다.

켄드릭 라마는 레퍼 드레이크와 디스 전으로도 유명한 히트곡 '낫 라이크 어스'(Not Like Us)로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등 그동안 인연이 없던 그래미 본상(제너럴 필드)의 2개 부문을 차지한 것을 포함해 베스트 랩 퍼포먼스, 베스트 랩 송, 베스트 뮤직 비디오 상까지 5관왕에 올라 이날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 조명을 받았다.

2.


켄드릭 라마는 1주일 뒤인 지난 10일에는 단일 경기로는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히는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챔피언결정전인 제59회 슈퍼볼의 하프타임 쇼에서 주인공인 헤드 라이너로 무대에 섰다. 1991년 제25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아이돌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슈퍼스타에게만 허락되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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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5관왕에 오른 래퍼 켄드릭 라마. /AFP=뉴스1


라마는 이날 그래미 수상곡 '낫 라이크 어스'로 관중들의 떼창을 연출한 것을 비롯해 11곡을 열창했다. 여가수 시저(SZA)와 DJ 머스타드. 테니스 스타 세레나 윌리엄스, 배우 사무엘 잭슨도 이날 무대에 올랐다.

출연료가 없는 무료 공연인데도 그동안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는 마이클 잭슨, 폴 매카트니, 롤링 스톤즈, 프린스, 다이애나 로스, 제임스 브라운, 스티비 원더, 글로리아 에스테판, 브루노 마스, 마룬5,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에어로 스미스, 블랙 아이드 피스, 어셔, 케이티 페리, 레니 크레비츠, 저스틴 블레이크, 자넷 잭슨, U2, 비욘세, 레이디 가가, 샤키라, 제니퍼 로페즈, 더 위켄드, 리아나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팝·록 스타들이 대거 참여해 2월 둘째 주의 '슈퍼볼 선데이'를 화려한 퍼포먼스로 수놓았다.

라마는 이미 2022년 2월 제56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도 닥터 드레, 스눕 독, 에미넴, 메리 제이 블라이지 등 힙합 거장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합동 공연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3년 만에 다시 등장해 단독 공연을 펼쳤다. 그는 2018년 4집 정규앨범 '댐.'(DAMN.)으로 힙합 뮤지션으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음악 부문)을 받기도 한 '래퍼들의 래퍼', '힙합의 시인'으로 불리는 미국 최고의 힙합 뮤지션이다.

3.

켄드릭 라마의 노래가 또 다른 스포츠 현장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유럽 대륙의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경기장에서 그의 대표적인 인기곡 가운데 하나인 '험블'(HUMBLE.)이 스피커를 통해, 팬들의 입을 통해 널리 애청·애창되고 있다. 2017년 발표된 앨범 '댐.'에 실렸던 라마의 첫 번째 빌보드 핫100 1위곡이고, 이번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도 선보인 히트곡이다.

무슨 일일까.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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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의 엘링 홀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아스널의 가브리엘 마갈량이스(왼쪽에서 두 번째)가 2024년 9월 23일(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의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2025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5라운드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맨체스터 시티 공식 SNS


시간을 2024년 9월 23일로 일단 되돌려보자. '험블' 사건이 있던 날이다.

두 시즌 연속 EPL 우승을 다투다가 리그 4연패를 달성한 맨체스터 시티(맨시티)가 연거푸 2위에 올랐던 아스널과 이날 영국 맨체스터의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 2024-2025시즌 EPL 5라운드 첫 맞대결을 홈경기로 펼쳤다. 경기는 치열한 몸싸움과 공방전 끝에 2-2 무승부로 끝났다.

사건은 경기 종료 뒤에 터져나왔다. 맨시티의 골잡이 엘링 홀란이 아스널 선수들과 잇따라 충돌한 뒤 인사를 위해 그라운드를 찾은 미켈 아르테타 아스널 감독에게 "겸손하라"(Stay humble, eh)라는 말을 연발하며 무례하게 행동했다. 홀란은 이 때 자신의 행동을 말리던 아스널의 공격수 가브리엘 제수스에게도, 팀 동료인 잭 그릴리시 앞에서도 막말을 쏟아냈다. 제수스는 2017~2022년 맨시티에서 뛰었던 선수다. 홀란은 제수스가 아스널로 떠나던 2002년 7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에서 맨시티로 이적해 제수스의 공백을 메우며 새로운 공격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5개월 뒤인 지난 3일 아스널과 맨시티의 2024-2025 EPL 24라운드 시즌 두 번째 맞대결이 벌어졌다. 장소는 아스널의 홈구장인 영국 런던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이었다. 경기 결과는 아스널의 5-1 완승이었다. 아스널은 전반 2분 마틴 외데가르드의 선제골로 앞서가다가 후반 10분 홀란에게 헤더 동점골을 내줘 1-1 동점을 허용했지만 곧바로 1분 뒤인 후반 11분 토마스 파티의 골로 다시 앞선 뒤 후반 17분 마일스 루이스 스켈리, 후반 31분 카이 하베르츠, 후반 48분 이선 완예리의 연속골로 대승을 매조졌다. 맨시티는 겨울 이적 시장에서 영입한 오마르 마르무시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격하고도 완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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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의 마일스 루이스 스켈리(왼쪽)와 미켈 아르테타 감독이 지난 3일 맨체스터 시티와 2024-2025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4라운드 홈경기에서 5-1로 대승을 거둔 뒤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이날 경기에서는 아스널의 압승과 맨시티의 참패만큼이나 홀란을 향한 '조롱'이 눈길을 끌었다. 아스널의 '10대 유망주' 루이스 스켈리(19)는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오른발 슛을 날려 상대 골문 오른쪽을 꿰뚫는 아스널의 세 번째 골을 터뜨려 3-1로 점수 차를 벌린 뒤 '명상 세리머니'를 펼쳐 홀란을 저격했다. 홀란을 대표하는 그의 시그니처 골 세리머니였다. 지난해 9월 홀란의 도발을 저지하던 스켈리를 향해 당시 홀란은 "너는 누구냐"며 상대를 깔보는 언행을 보였다. 스켈리는 5개월 뒤 득점의 기쁨을 홀란의 저격 세리머니로 복수한 것이었다. 아스널은 이날 승리로 승점 50(14승 8무 2패)을 쌓아 선두 리버풀(승점 56·17승 5무 1패)에 6점 차로 뒤진 2위에 자리했고, 이번 시즌 고전하고 있는 맨시티는 패전과 함께 5위(승점 41·12승 5무 7패)로 한 계단 내려앉았다.

이날 관중석에는 'STAY HUMBLE EH'라는 문구와 홀란의 이름에 빨간 색의 원과 대각선을 그려 넣은 손 팻말이 여기저기 등장했고, 관중들은 "스테이 험블 에~"을 외치기도 했다. 모두 홀란을 겨냥한 시위였다. 아스널의 대승으로 경기를 마친 뒤 홈구장에는 켄드릭 라마의 '험블'이 울려 퍼졌다. 홀란을 향한 구호 '스테이 험블'과 라마의 히트곡 '험블'은 아스널 홈구장에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맨시티와 맞대결하는 상대팀의 홈구장에서는 마치 유행처럼 이 구호와 노래가 회자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을 아우르는 켄드릭 라마의 전성시대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엘링 홀란의 수난시대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고, 라이벌 서사가 완성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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