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 언니 잘가요" 막 올린 은퇴 투어, '여제'와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화성 현장]

화성=안호근 기자 / 입력 : 2025.02.17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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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김연경이 16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IBK기업은행전을 마친 뒤 진행된 은퇴 기념 행사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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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왼쪽에서 6번째)이 IBK기업은행 선수단이 준비한 친필사인 유니폼 액자를 들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3245명. 김연경(37·인천 흥국생명)을 선수로서 볼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배구 팬들은 경기장으로 몰려들었고 화성 IBK기업은행은 올 시즌 2번째 매진을 맞이했다. 김연경의 놀라운 티켓 파워다.

16일 IBK기업은행과 흥국생명의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경기가 펼쳐진 경기도 화성실내체육관.


평소에 비해 훨씬 많은 팬들이 경기장으로 운집했고 3245석의 판매 좌석이 매진됐다. 지난해 11월 2일에 이어 IBK기업은행의 시즌 2번째 홈경기 매진 사례로 당시에도 흥국생명과의 대결이었다.

김연경 효과다. 지난 13일 김연경은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GS칼텍스전 승리 후 은퇴 의사를 밝혔고 구단 유튜브를 통해 "아직 시즌이 남아 있으니 많은 분들이 와서 경기 보면서 즐기고 웃으면서 잘 마무리하면 될 것 같다. 끝까지 많이 와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곧바로 팬들은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김연경 커리어에서 화성실내체육관 마지막 경기였고 IBK기업은행도 경기 후 특별한 자리를 만들었다. IBK기업은행 유니폼에 김연경의 이름과 등번호 10번을 새기고 선수단의 친필사인을 하나하나 새긴 유니폼 액자를 선물했다. 김호철 감독이 직접 김연경에게 전달했고 이후 기념촬영까지 마쳤다.


이후엔 김연경이 직접 준비한 자신의 사인 유니폼과 사인볼 3개를 추첨을 통해 팬들에게 전달했다. 이어 직접 마이크를 잡고 경기장을 채운 팬들을 향해 인사했다. 김연경은 "이렇게 많이 오실 줄 알았다(웃음). 많은 경기가 남아 있으니 응원해주시면 좋겠다"며 "IBK기업은행 관계자분들과 선수들, 팬들께 감사드린다. 시즌 남아 있기에 큰 부상 없이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우리도 정규 시즌이 얼마 안 남았다. 우리 경기도 많이 와서 봐달라. 끝까지 응원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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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이 IBK기업은행전에서 블로킹 벽을 뚫어내는 강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사진=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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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승리 후 세리머니를 하는 김연경(가운데). /사진=KOVO 제공
마지막으로 김연경은 관중들을 바라보며 코트를 한 바퀴 돌았고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김연경, 김연경"하고 외쳤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김연경은 "다른 경기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려고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며 은퇴를 발표한 직후에도 "너무 잘 잤다. 나만 준비가 돼 있었던 것 같다. 일부러 감정적이 되지 않으려고 드라마도 봤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규리그만 7경기, 봄 배구까지 하면 10경기 이상 남겨두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은퇴 관련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했다. 김연경은 "시즌 중에 (은퇴) 발표를 하다 보니 은퇴 관련된 얘기는 오늘로서 마무리하고 싶다"며 "은퇴보다는 리그나 경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취재진만의 문제는 아니다. 팬들과 김연경을 마지막으로 상대하는 팀들 입장에선 조용히 그를 보내줄리 없다. 이날 행사는 양 팀 관계자들 사이에 대화가 오가던 중 자연스럽게 성사가 됐고 공식 은퇴 투어의 일환은 아니었다. 그러나 향후 김연경의 각 구단별 마지막 원정경기 때는 이 같은 행사가 펼쳐질 확률이 매우 크다.

그만큼 한국 배구를 위해 헌신한 슈퍼 스타이기에 팬들로서도 조용히 작별하는 걸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자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경기 전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은 "2년 전부터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결정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며 "배구판에서 이런 선수 잃는 건 큰 슬픔이다. 인생 2막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는 배구와 관련된 것이었으면 좋겠다. 갖고 있는 게 배구판에 잘 녹아들었으면 좋겠다. 이 대단한 스포츠를 더 많이 키워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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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가운데 왼쪽)이 흥국생명 선수단, 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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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감독(왼쪽)이 김연경에게 선수단이 준비한 특별한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적장인 김호철 IBK기업은행 감독 또한 "계속 여자 배구를 위해서 체육관에 남아주면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힘이 드는 모양"이라며 "지금까지 한국배구를 위해 고생해 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배구계를 떠날지는 모르지만 이후에 할 일도 잘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비공식 은퇴 투어를 마쳤음에도 팬들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도 김연경과 김수지의 취재진 인터뷰가 진행됐고 샤워 등 정비를 하기까지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많은 팬들이 김연경의 떠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야외 구단버스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김연경이 버스에 오른 뒤에도 버스가 떠나갈 때까지 발길을 돌리지 못한 채 "연경 언니 사랑해요", "연경 언니 잘가요"라는 특별한 애정을 담은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다음 경기는 오는 21일 수원 현대건설과 수원체육관에서 펼쳐진다. 마찬가지로 김연경이 현역으로서 마지막으로 수원체육관에서 나서는 경기다. 이후에도 3월 1일 대전 정관장(대전 충무체육관), 11일 광주 페퍼저축은행(광주 페퍼스타디움), 20일 서울 GS칼텍스(서울 장충체육관)에서도 김연경의 각 구장 마지막 경기가 차례로 열린다. 그때마다 특별한 마지막이 장식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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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흥국생명 구단 버스 안에 김연경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는 팬들.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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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이 몸을 실은 흥국생명 구단 버스가 떠나가자 이를 따라가고 있는 팬들.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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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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