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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 저지(왼쪽)와 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
2023년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 무대 마지막 장면이다. 미국 더그아웃은 침묵에 빠졌고 오타니는 평소와 달리 과격한 세리머니를 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WBC에 불참했던 저지는 당시를 떠올렸다. 저지는 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 조지 M.스테인브레너 필드에서 진행 중인 양키스의 스프링캠프에서 미국 매체 폭스스포츠와 인터뷰를 통해 "미국 대표팀은 결승에 진출했지만 우승하지 못했다"며 "그러니 우승해야 한다. 두고 보자, 두고 보자"고 말했다.
저지는 벌써부터 내년 열릴 2026 WBC를 기다리고 있었다. 2년 전 그날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당시 미국 대표팀은 2-3으로 석패했는데 2022시즌 62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AL)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며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한 그의 부재는 너무도 뼈아팠다.
2023시즌을 앞두고 양키스와 9년 3억 6000만 달러(5164억원)라는 천문학적 금액에 재계약한 저지는 주장 완장까지 차며 생긴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WBC 참가를 고사했다. 당시 저지는 "나라를 대표해 경기에 뛰는 건 영광"이라면서도 "하지만 내 목표는 여기 '뉴욕'에 우승을 가져 오기 위해 내 몫을 하는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꼴이 됐다. 저지 없이 나선 미국 대표팀은 오타니가 맹활약한 일본 대표팀에 무릎을 꿇었고 저지가 OPS(출루율+장타율) 1.019를 기록했지만 106경기 출전해 37홈런 75타점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고 팀도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라는 뼈아픈 결과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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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 애런 저지(오른쪽). /AFPBBNews=뉴스1 |
본인은 조심스러워했지만 지금 같은 마음이라면 부상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미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2026 WBC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2년 전 상황은 저지에게도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돌이켜봐도 선택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이언츠와 계약하든, 파드리스와 계약하든, 다른 곳과 계약하든, 내게 더 중요한 건 팀원과 코치를 알아가는 것이었다"는 저지는 "4주 동안 WBC에 참가하다가 갑자기 스프링캠프 마지막 2주 동안 나타나는 게 불편할 것 같았다. 그게 초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저지는 "하지만 지금은 꽤 오랫동안 여기 있을 것"이라며 팀 상황에 관해선 변동 될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저지의 WBC 참가에 큰 변동이 생길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년 전 WBC 결승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명장면이었다. MLB를 대표하는 두 동료가 투수와 타자로 만나 맞대결을 펼친 끝에 최종 승자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2017년엔 미국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당시 저지는 경쟁에 밀려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리그 최고의 선수로 거듭난 뒤에 열린 2023년 대회 땐 팀 사정상 참가하지 못했기에 2026년 대회에 대한 욕심이 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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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가 2023 WBC 결승에서 트라웃을 삼진으로 잡아내고 일본의 우승을 안긴 뒤 포효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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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WBC 결승 때 마이크 트라웃(오른쪽). /AFPBBNews=뉴스1 |
또 다른 흥밋거리는 오타니와 저지의 정면 대결이다. 이도류 스타로 맹활약한 오타니는 지난해 팔꿈치 수술 여파로 타자로만 나섰다. 다저스로 이적해 리그가 달랐지만 간접적인 비교가 가능했다.
승자를 가리긴 어려웠다. 저지는 158경기 타율 0.322 58홈런 144타점 122득점 133볼넷 10도루, 출루율 0.458, 장타율 0.701, OPS 1.159를, 오타니는 159경기 타율 0.310 54홈런 130ㅌ타점 134득점 81볼넷 59도루, 출루율 0.390, 장타율 0.646, OPS 1.036으로 활약했다.
타석에서의 임팩트만 놓고보면 저지가 한 수 위였다고 볼 수 있지만 오타니는 세계 야구 역사상 없었던 '50(홈런)-5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둘은 나란히 각 리그의 MVP로 선정됐다.
트라웃이 아닌 저지가 2026 WBC 결승 무대 마지막 장면에 투수 오타니와 격돌한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야구 팬들을 즐겁게 만드는 장면이다. 내년 MLB에서도 이러한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WBC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스타가 국제대회에서 만나는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를 자아낸다.
2026 WBC는 이달 열리는 예선 라운드를 거쳐 최종팀을 확정짓는다. 이미 한국을 비롯한 16개국이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고 예선을 통과하는 4개국이 본선에 합류해 5개국씩 4개 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른다.
한국은 일본, 호주, 체코와 C조에 편성됐고 내년 3월 5~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조별리그를 치른다. 풀리그 방식으로 조별리그를 치르고 조 1,2위가 8강 진출을 얻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격돌하고 4강전과 결승은 마이애미에서 펼쳐진다.
저지가 WBC 출전 의사를 내비치며 내년 마이애미에서 저지와 오타니가 만날 장면을 벌써부터 상상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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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 저지. /AFPBBNews=뉴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