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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2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진행된 영화 '미키 17' 개봉 기념 인터뷰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봉준호 감독은 전작 '기생충'(2019)으로 전 세계를 강타한 뒤 약 6년 만에 극장가의 문을 두드렸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의 황금종려상, 제92회 미국 오스카상(아카데미) 4관왕 등 세계 각국 유수 영화제 및 시상식의 트로피를 싹쓸이하고 마침내 컴백한 것.
봉 감독은 그야말로 '왕의 귀환'답게, 이에 걸맞은 초호화 스케일로 돌아오며 어김없이 흥미로운 신작을 선보였다. 8번째 장편 영화인 '미키 17'은 봉 감독이 할리우드 투자배급사 워너브러더스와 의기투합한 해외 프로젝트로, 총 제작비 1억5000만 달러(한화 약 2174억 원)가 투입됐다. 이는 봉 감독 영화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미키 17'은 2022년 발간된 에드워드 애시튼 작가의 '미키7'을 원작으로 한다.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 반스(미키17·18 역/로버트 패틴슨 분)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진입장벽이 높은 SF(공상과학) 장르이지만, 봉 감독 특유의 허를 찌르는 블랙코미디가 묻어나며 세대불문 남녀노소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한다.
실제로 '미키 17'은 2월 28일 국내 개봉한 가운데, 침체기 극장가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개봉 당일 예매율이 무려 70%에 육박, 결국 24만 명 돌파라는 압도적인 오프닝 스코어를 냈다. 이는 지난달 출격한 마블 신작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12만 명)마저 훨씬 뛰어넘은 수치로, 올해 상반기 개봉작 중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 기록이다. 천만 영화 '서울의 봄'(20만 명)보다도 높은 오프닝 관객 수로 흥행 신드롬을 알린 '미키 1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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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봉준호 감독 |
'기생충'으로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운 만큼, 전 세계적인 관심 속 '미키 17'을 작업한 것에 부담감은 없었을까. 봉준호 감독은 "다행히 제가 만 50세에 접어들었을 때 그런 사건(?)들이 터졌다. 물론, 기분 좋은 사건 말이다. 그래서 저는 비교적 침착하게, 차분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다. 얼마 전 늦둥이를 보신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형님은 상은 또 일찍 받으셨다. ('펄프 픽션'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오스카상을 모두 받으신 게 20대 후반 무렵이었다. 그런 일들을 너무 일찍 겪어서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셨다더라. 저는 이미 20년간 연출 후 50세에 이런 상황을 맞이해서, 차분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라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이어 그는 "그렇다 보니 '미키 17'을 작업할 때 특별한 프레셔(pressure, 심리적 압박)를 느낀 건 없다. 저는 그냥 하던 대로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봉준호 감독은 "다만 개봉 시기와 관련해선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할리우드 배우 파업 여파 때문"이라며 "할리우드는 배우가 파업하면 홍보 일정도 소화할 수 없어서 '미키 17'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가 개봉을 미루고 순서들이 뒤죽박죽 됐었다. 이 상황 외엔 모든 게 평소 하던 대로 쭉 이어져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영화 철학을 들려줬다. 봉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언제나 저의 가장 핵심 목표는, 관객들이 극장에 앉아있다 가정하면, 두 시간 내내 휴대전화를 절대 못 열게 만드는 거다. 출발점부터 종착역까지 관객들을 완전히 움켜잡고 영화와 같이 가는 게 늘 저의 제일 큰 목표이다. 고(故)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님도 평생의 목표가 이거였다고 하더라"라며 "실제로 저는 가끔 시사회 때 제일 뒷 줄에 앉아 누가 휴대전화를 하는지 관객들을 지켜볼 때가 있다. 그럴 때 (휴대전화) 불빛이 보이면 상처가 된다"라고 터놓았다.
이어 그는 "영화의 메시지는 둘째 문제이고, 장르적인 영화적 흥분을 통해 관객들을 (러닝타임) 끝까지 끌고 가고 싶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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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캐릭터 포스터 |
'미키 17'은 이런 봉 감독다운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사람 냄새' 나는 SF물"이라며 "SF의 탈을 썼지만 결국은 인간 이야기로 되돌아오고 싶었다"라고 내세웠다.
봉 감독은 "원작은 방대한 세계관에 과학적이고 그런 느낌이 강했는데 저는 사실 그것보다 '휴먼 프린팅'(human printing)이란 콘셉트에 가장 강력하게 집중했다. 그래서 '미키 7'이 아니라 '미키 17'로, 미키를 10번 더 죽인 거였고 시점도 2054년으로 바꿔 더 현재와 가까운 근미래로 끌어당겼다. 미키 캐릭터도 원작에선 '역사학자'인데, 저희 영화 속 미키는 완전 '노동자', 훨씬 힘든 상황의 젊은이로 묘사했다. 처지가 불쌍한 한 명한테 죽기 딱 좋은 일감을 다 몰아주는 비겁한 공동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말이다"라고 차별점을 짚었다.
이어 그는 "우리 현실 사회에서도 보면 최근 젊은 분들이 일하다가 돌아가신 산재 사망 사건이 많지 않았냐. 그럼에도 지금도 그 역할을 누가 또 하고 계실 거다. 이 영화에선 미키 혼자 하지만, 한국이든 다른 나라 어디든 위험한 일에 계속 새로운 약자들이 투입되고 있다. 이게 어떻게 보면 무섭고 서글픈 일이다. '미키 17'은 SF로 포장되어 있고 코미디처럼 그려져 있지만, 실제 이런 현실과 맞닿아 있다"라고 전했다.
결말은 이 같은 맥락을 충실히 따른 결과물이었다. 봉 감독은 "우리가 조금만 방심하면 악몽은 또 올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 잔상이 오래 남기를 바란 마음의 결말이다"라며,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는 "처음부터 '어떤 엔딩이다' 깃발을 꼽고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니다. 다만 그동안 제가 주인공들에게 가혹하게 하지 않았나.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키가 여러 차례 가혹한 상황과 극단적인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파괴되지 않는다는 거, 그게 저한테 제일 소중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파괴되지 않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미 17번 죽기도 했고(웃음). 미키 입장에서 장면을 만들고 생각들을 정리해 나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지금의 결말에 도달했다. 또 제 아들이 지금 미키 나이이기도 하다 보니 마음이 더 좀 그랬던 거 같다"라고 남다르게 이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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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미키 17' 속 마크 러팔로, 토니 콜렛 |
하지만 이에 대해 봉 감독은 "'미키 17'의 작업을 모두 마쳤을 때는 2022년이다"라고 펄쩍 뛰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내 그는 "세계 각국의 기자분들이 다들 본인들 자국의 정치적 스트레스를 다 마셜 부부에 투사해서 얘기하더라. 정말 솔직히 얘기하면, 마크 러팔로와 함께 케네스 마샬을 구축하면서 모델로 삼은 인물이 있긴 하다. 하지만 현역이 아닌 다 과거 정치인들이었다. 그런데 보시기엔 과거, 현재 여러 가지로 다 투사가 되나 보다. 그만큼 마크 러팔로가 연기를 잘해주신 게 아닐까 싶다"라고 밝혔다.
봉준호 감독은 "여러 나라, 여러 시대를 걸친 나쁜 정치인들을 보면 다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있다. 위험한 것이지만 사실 독재자들은 매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중이 끌려가고 지지를 받는 거다. 영화 속 모든 악역 역시 매력이 있어야 기억에 남는다. 그걸 러팔로 형님이 참 맛깔나게 표현해 주신 거 같다"라면서 "아무튼 참 우연이다. 과거에 있던 정치적 쓰라린 경험, 스트레스를 충실히 표현하다 보면 역사라는 게 반복되니까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현재의 모습이 담긴 거 같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봉 감독은 "어떤 외신 기자분은 제게 점쟁이들이 가진 '크리스털 볼'이 있느냐 묻더라"라고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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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