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9·1·2 트리오' 제대로 통했다, '달라져야 사는' 두산의 희망을 키운다 [인천 현장]

인천=안호근 기자 / 입력 : 2025.03.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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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김민석이 22일 SSG와 개막전에서 안타를 날린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두산 김민석이 22일 SSG와 개막전에서 안타를 날린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정수빈(왼쪽)이 득점 후 김재환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정수빈(왼쪽)이 득점 후 김재환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두산 베어스의 새로운 라인업이 빅히트를 예고했다. 전통적인 타순 구성에서 다소 벗어난 파격적인 시도로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개막전부터 재미를 보며 올 시즌 두산 타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두산은 22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2025 신한은행 SOL뱅크 KBO리그 원정 개막전에서 5-6으로 졌다.


기대를 모았던 외국인 선발 투수 콜 어빈이 5이닝 4실점으로 아쉬움을 남겼고 8회말 뼈아픈 역전 투런 홈런을 맞고 앞서가던 경기를 내줬지만 타선에선 분명한 소득을 발견한 경기였다.

특히 9번 타자 정수빈(35)에서 시작해 김민석(21), 김재환(37)으로 이어지는 올 시즌 두산 타선의 가장 큰 변화의 효과를 제대로 확인한 경기여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이승엽 감독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많은 변화를 예고했다. 지난 두 시즌 가을야구에 진출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연속으로 고배를 마셨고 계약 마지막 시즌을 맞이했다. 확실한 변화 없이는 나아질 수 없다고 판단했고 오명진과 김민석과 같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결심했다. 또 하나는 타순 변화를 통해 공격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우측 방면 3루타를 날리고 타구를 바라보는 김민석.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우측 방면 3루타를 날리고 타구를 바라보는 김민석.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그동안 두산의 1번 타자 자리는 정수빈의 고정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리그 톱 수준의 컨택트 능력은 아니지만 빠른 발을 활용해 상대 배터리와 수비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1번 타자로 손색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이승엽 감독은 시범경기 내내 그 자리에 김민석을 테스트했다. 김민석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정철원과 2대3 트레이드를 통해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스프링캠프를 거치며 이승엽 감독의 기대는 더 커졌다. 정수빈에 비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점도 '1번 김민석'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김민석은 시범경기 대부분을 톱 타자로 나서 타율 0.333(30타수 10안타)로 맹타를 휘둘렀다. 당연히 개막전 두산의 1번 타자도 그의 몫이었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2번 타자 자리에 홈런왕 출신 김재환(37)을 배치한 것이다. 2023년 최악의 해를 보낸 후 사비를 들여 미국에 있는 강정호 아카데미를 다녀온 뒤 반등한 김재환은 이번 겨울에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바쁘게 새 시즌을 준비했다. 이승엽 감독은 그런 김재환에게 신뢰를 나타냈고 두산의 4번 타자 역할을 주로 맡았던 그는 이승엽 감독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였던 2번 타순에 새로운 주인이 됐다. 이 타순에 많은 찬스가 몰리지만 그동안 유독 2번이 약했다는 걸 고려했고 '강한 2번'을 모토로 김재환을 전진 배치했다.

적시타를 때려내고 있는 김재환.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적시타를 때려내고 있는 김재환.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정수빈(34)은 자연스레 9번으로 내려섰다. 타점 생산 능력보다는 테이블세터 유형의 타자이기에 하위타순에서 또 다른 1번 타자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게 이승엽 감독의 생각이었고 김민석과 김재환이 제 역할을 해낸다면 셋의 시너지 효과는 훨씬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전통적인 야구관에서 벗어나 1,2번을 강한 타자들로 구성하는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키움 히어로즈는 송성문과 야시엘 푸이그, KT 위즈는 강백호, 멜 로하스 주니어로 두산보다도 더 파괴력 있는 듀오로 개막전을 치렀다. 그러나 9번 타자까지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키움은 포수 김재현을, KT는 김상수를 9번에 배치했다. 1번 타자로 뛰어도 전혀 손색이 없고 도루왕을 차지할 정도로 빠른 발을 지닌 정수빈이 9번에서 또 다른 1번 역할을 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런 짜임새 있는 조합이 개막전부터 제대로 효과를 봤다. 대부분의 득점 과정에 이들이 있었다. 선발 콜 어빈이 2회초 흔들리며 3점을 내주며 시작했지만 두산 타선이 빠르게 추격에 나섰다.

3회말 1사에서 정수빈이 SSG 선발 드류 앤더슨과 8구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나갔다. 이후 김민석이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섰지만 김재환이 우측 펜스로 향하는 대형 2루타를 때려냈고 빠르게 스타트를 끊은 정수빈이 전력질주를 해 귀중한 추격의 득점을 해냈다. 정수빈이기에 가능한 득점이었다. 더그아웃으로 향한 정수빈은 동료들의 축하를 받은 뒤에도 숨을 몰아쉴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달려 득점을 만들어냈다.

4회말 역전 과정에선 김민석의 타격이 빛을 발했다. 2사 2루에서 박준영이 1타점 적시타를 날렸고 정수빈이 볼넷을 골라냈고 김민석이 앤더슨이 몸쪽 슬라이더를 강하게 잡아당겨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역전 2타점 싹쓸이 3루타를 날렸다. 4-3으로 두산이 이날 첫 리드를 잡았다.

김민석의 2루타 때 1루 주자 정수빈이 혼심의 힘을 다해 3루를 향해 달리고 있다./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김민석의 2루타 때 1루 주자 정수빈이 혼심의 힘을 다해 3루를 향해 달리고 있다./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결국 앤더슨의 임무는 여기까지였다. 물러설 수 없는 SSG는 앤더슨을 조기 강판시켰고 한두솔을 투입했다.

5회 어빈이 다시 실점하며 동점을 허용했지만 이번엔 두산의 삼총사가 완벽히 제 할 일을 해내며 재역전을 이뤄냈다. 2사에서 타석에 선 정수빈은 철저히 바깥쪽 승부를 벌이는 바뀐 투수 김건우를 상대로 침착하게 볼넷을 골라 출루했다. 이어 등장한 김민석도 톱타자의 임무에 맞게 이번엔 섣불리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연속 볼넷.

SSG는 김재환을 상대로 좌투수 김건우를 내리고 우투수 김민을 투입했다. 1구 몸쪽 공을 지켜본 김재환은 2구 가운데로 몰린 슬라이더를 놓치지 않았고 정수빈을 홈으로 불러들이는 1타점 적시타를 터뜨렸다.

김민석은 8회 안타를 추가하며 이날 4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 김재환은 5타수 2안타 2타점, 정수빈은 1타수 3볼넷 3득점으로 셋 모두 훨훨 날았다. 무엇보다 이승엽 감독이 비시즌 기간 고민 끝에 타순을 변경한 게 옳은 선택이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각 타순에 맞는 만점 활약을 펼친 게 더욱 의미가 깊었다.

물론 타선에서도 다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3번 타자 양의지가 3타수 2안타 2볼넷으로 변함 없는 활약을 보였지만 4번 제이크 케이브, 5번 강승호, 6번 양석환이 13타수 무안타 6삼진으로 동반 부진하며 추가 득점할 수 있는 기회를 끊어버렸기 때문. 결국 조화가 중요하다. 9~2번 타순의 활약에도 중심 타선이 침묵한다면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중심 타선까지 제 역할을 해준다면 시너지 효과는 상상이상으로 더 커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정수빈(가운데)이 득점 후 이승엽 감독(왼쪽)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정수빈(가운데)이 득점 후 이승엽 감독(왼쪽)의 환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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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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