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서 파이팅? 무슨 도움 되겠나" 3회부터 스윙 훈련, 간절한 오태곤의 '대타 역전포'는 예정돼 있었다

인천=안호근 기자 / 입력 : 2025.03.2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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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오태곤이 22일 두산과 개막전 8회말 대타로 나서 역전 투런 홈런을 날리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SSG 오태곤이 22일 두산과 개막전 8회말 대타로 나서 역전 투런 홈런을 날리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야구는 나가 있는 선수들이 하는데 파이팅 많이 한다고 솔직히 무슨 도움이 되겠나."

오태곤(34·SSG 랜더스)은 3회부터 타격 훈련장으로 향해 묵묵히 방망이를 돌리며 때를 기다렸다. 그렇기에 대타로서 누구보다 잘 준비가 돼 있었고 강력한 한 방으로 팀에 승리를 안길 수 있었다.


오태곤은 22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2025 신한 SOL뱅크 KBO리그 개막전에서 8회말 1사 1루에 대타로 나서 6-5로 앞서가는 역전 결승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끌려가던 SSG는 이 한 방으로 승기를 굳혔고 마무리 조병현이 8회에 이어 9회까지 틀어막으며 만원관중에게 짜릿한 개막전 역전승을 안겼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숭용 감독의 배려 속에 미국 플로리다가 아닌 일본 가고시마로 향했다. 베테랑들이 체력과 장시간 비행, 시차에 대한 부담을 감수하기 대신 가까운 퓨처스 캠프에서 자율적으로 각자의 루틴대로 몸 상태를 끌어올릴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역전 투런 홈런을 날리는 오태곤.
역전 투런 홈런을 날리는 오태곤.
비판적 시각도 많았다. 오태곤을 비롯해 최정과 한유섬, 이지영, 김민식, 김성현까지 6명의 선수들이 과연 몸 상태를 잘 끌어올릴 수 있을지 우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율엔 책임이 따른다. 최정은 앞장서서 더 열심히 몸을 만들었고 오태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일본 오키나와 2차 캠프에서 이숭용 감독은 오태곤의 몸 상태가 누구보다 가장 잘 만들어졌다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개막을 앞둔 오태곤의 자리는 벤치였다. 이숭용 감독 부임과 함께 '팀 리모델링'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1루에 고명준, 2루에 정준재가 새로운 주전으로 도약했다. 외야에도 기예르모 에레디아와 최지훈이 한 자리씩을 확실히 차지하고 있었고 부상에서 돌아와 퓨처스리그 3경기에서 3홈런을 날린 하재훈이 개막전 선발 라인업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오태곤은 벤치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후배들을 응원했다. 그러나 선발 드류 앤더슨이 4회를 채우지 못하고 무너졌고 끌려가기 시작했다.

8회말 기회가 왔다. 1사에서 박성한이 바뀐 투수 이영하를 상대로 볼넷을 얻어냈고 하재훈의 타석에 대타로 나선 오태곤이 대타로 나섰다. 볼카운트 1-1에서 시속 150㎞ 몸쪽 직구를 강타해 좌측 담장을 넘기는 역전 투런포를 쏘아 올렸다.

시즌 첫 번째 대타 홈런이자 개인 통산 5번째 대타 아치였다. 동시에 개막전에서 처음 보는 손맛이기도 했다.

홈런을 날리고 포효하는 오태곤.
홈런을 날리고 포효하는 오태곤.
경기 후 이숭용 감독은 "야수에서는 태곤이가 히어로다. 박빙승부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쳐줬다. 하위타선에서 5타점이 나왔다. 투타의 핵심 선수들이 빠져있지만 선수들이 똘똘 뭉쳐 만든 시즌 첫 승"이라고 기뻐했다.

비시즌 좋았던 감각을 대타로서 첫 경기부터 뽐냈다. 경기 후 만난 오태곤은 그 비결을 가고시마 자율 훈련에서 찾았다. "논란의 6인방이 있지 않나. 고참 6명이 안 믿기겠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괜히 미안해서 훈련양을 늘렸고 펑고도 '하나 더 받자, 더 받자'해서 하면서 열심히 준비를 잘했다"고 말했다.

대타 카드로 타석에 올라 그것도 150㎞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추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일찌감치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태곤은 "저는 항상 3회부터 연습을 한다. 항상 백업 선수들에게도 말하는 게 '너희가 밖에서 아무리 파이팅을 많이 한다고 해도 팀에 도움이 안 된다, 너희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스트레칭하고 뛰고, 부상 안 당하는 게 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원팀 정신으로 경기에 뛰는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정작 백업 선수들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오태곤은 "어쨌든 뒤에 나가서 잘해야 팀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야구는 나가 있는 선수들이 하는데 벤치에서 파이팅을 많이 한다고 솔직히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며 "선수들도 클리닝타임이 되면 벤치에서 많이 사라진다. 이렇게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 같다. (타격) 머신이 안 다치게끔 고무공이 나오긴 하지만 오타니가 던지는 것처럼 빠르다. 이영하 선수가 초구 149㎞가 찍히는데 너무 빨라보였다. 그래도 머신을 보고 나가니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대타로서 어떻게 해야 팀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도 고민했다. "타석에 들어가자마자 빠른 공을 생각했다. 그전에 (박)성한이 타석에서 너무 터무니없는 볼 4개 던지더라. 그래서 초구를 쳐서 죽으면 너무 분위기가 안 좋을 것 같아서 하나는 지켜보자고 했는데 149㎞가 한 가운데 들어왔지만 2구 빠른 공은 빠지더라"며 "어차피 직구와 슬라이더 투피치이고 슬라이더는 나가다가 걸릴 걸 생각하고 직구를 앞에다 놓고 치자고 생각했는데 잘 맞아떨어졌다"고 홈런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홈런 이후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오태곤(오른쪽)을 김광현이 격하게 반기고 있다.
홈런 이후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오태곤(오른쪽)을 김광현이 격하게 반기고 있다.
홈런을 날린 오태곤은 마치 한국시리즈에서 끝내기 홈런을 날린 것처럼 포효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오태곤은 "치자마자 갔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휘어지더라. 그 짧은 시간 동안 '들어가라, 들어가라' 외치게 돼더라. 넘어가서 너무 소름이 돋았다"며 "제가 그렇게 과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아닌데 너무 좋아서 저도 모르게 (표현이) 나왔던 것 같다.

감각이 좋은 만큼 벤치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오태곤은 "저도 사람인지라 그런(아쉬운) 생각도 든다. '팀 리모델링'이라고 하는데 벤치에서 (김)광현이 형한테 '팀이 정말 젊어졌다'고 하면서도 저에겐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지 않나"라면서도 "제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저도 롯데에서 유망주로 기회 받을 때 받을 때 다른 선배들이 제가 경기 나가는 날은 쉬는 날이었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으니 받아들이자고 생각해 오히려 파이팅을 더 많이 해준다. 후배들 가르쳐 줄 수 있으면 많이 알려주려고도 한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3시즌을 앞두고 SSG와 4년 총액 18억원 FA 계약을 체결한 오태곤은 "그 속에서 준비를 잘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며 "돈도 받았으니까 돈값도 해야 한다.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항상 믿어주시니까 감사해서 많이 도와주고 팀이 윈윈하는 게 저에게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기에 목표는 크게 잡지 않는다. 오태곤은 "결과는 하늘이 하는 것이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할 뿐이다. 준비 과정을 잘하고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하면 결과는 하늘이 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개인 욕심은 없고 팀이 잘 돼야 한다. 지금도 뒤에서 출발하지만 후배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나가야 한다. 뎁스가 두꺼워야 팀이 좋아진다. 그렇게 팀도 잘 되고 저도 팀의 인정을 받아 야구를 오래하고 싶다. 가늘더라도 좋으니 길게, 최대한 유니폼을 오래 입고 싶다"는 소망을 나타냈다.

오태곤이 경기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오태곤이 경기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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